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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29. 2018

9. 여행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베르겐

▶베르겐 울리켄 산~오슬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던지 우리는 스칸 레일 패스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했다. 5일짜리 스칸 레일 패스는 코펜하겐에서 베르겐까지 오는데 벌써 2일이나 사용해 버렸다. 밤하늘을 수놓는 빛의 향연 오로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북극으로 가는 관문인 노르웨이 최북단 트롬쇠까지 가야 한다. 노르웨이 관광청에 의하면 오로라가 활발하게 보이는 적기는 9월부터 3월까지 약 7개월 간이라고 한다.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는 시기는 10월인지라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적기다. 


오로라 여행의 첫 번째 계획은 베르겐에서 전설적인 피오르드 크루즈선인 후티루텐호를 타고 오로라를 관측하려고 했다. 나는 정말 이 전설적인 크루즈선을 타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후티루텐호를 타고 가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아내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극구 반대했다. 


여행지에서 비싸다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면 거의 영원히 가자 못한다.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지만 그런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지도 않는다. 여기까지 오는 항공료 부담과 시간을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니 나는 후회하기 전에 크루즈선을 타고 오로라를 보러 가지고 했지만 아내의 반대에 부딪쳐 포기해야 했다. 그래, 이럴 땐 아내에게 저 주어야지. 아내를 위하여 떠나온 여행이 아닌가?  


두 번째 계획은 베르겐에서 나르빅까지 직접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을 고려해 보았다. 그러나 이 역시 직선거리는 가깝지만 들쑥날쑥한 수많은 피오르드 협만 때문에 교통이 복잡했다. 오히려 오슬로를 거쳐서 나르빅으로 가는 것이 거리도 훨씬 가깝고 교통비용도 저렴했다.  


결국 우리는 오슬로로 가서 나르빅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오슬로로 가는 것도 기차로 갈 것인가 버스로 갈 것 인가를 망설이다가 값이 싼 버스를 선택했다. 기차는 두 사람에 1,300 크로네(약 21만 원)이었고, 버스는 가차보다 훨씬 싼 960 크로네(약 16만 원)였다. 


북유럽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허지만 기차는 7시간이 걸리고, 버스는 11시간 정도가 걸린다. 기차가 빠르기는 하지만 어차피 밤을 새우기는 마찬가지다. 아내는 5만 원을 절약하기 위해 버스를 타자고 우겼다. 장기 배낭여행자에게 5만 원 작은 돈이 아니다. 나는 아내의 의견대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모든 것이 비싸다. 돈을 생각하면 어서 빨리 북유럽을 벗어나고 싶었다.


오전 10시, 호스텔을 나온 우리는 버스를 타고 베르겐 중앙역으로 갔다.  그리고 아내의 의견대로 오슬로행 버스표 두 장을 샀다. 난 착한 남편이야.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 나는 버스 티켓을 들고 아내를 향하여 흔들었다. 아내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이럴 땐 웃어야 한다. 하하하. 호호호.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우리는 무거운 짐은 코인로커에 맡겨놓고 시내를 산책하기로 했다. 바다 건너로 뾰쪽뾰쪽한 뷔르겐 목조건물이 알록달록하게 수를 놓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한 독일풍의 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울리켄(Ulriken) 산을 올라가기로 했다. 베르겐을 떠나기 전에 울리켄 산에 올라 아름다운 항구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싶었다. 


▲울리켄 산으로 가는 2층 버스


7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베르겐은 아름다운 항구와 어울려 절묘한 풍경을 보여준다. 울리켄 빨간 버스를 타고  울리켄으로 가는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보는 베르겐 항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울리켄(643m)은 베르겐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올라가 시가지를 내려보다가 산 정상 주변을 하이킹을 하기도 했다. 


산정은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내리면 카페에 피해 있다가 비가 그치면 밖으로 나가 베르겐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산기슭에 구름이 베일처럼 가렸다가 벗어지는 풍경이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산등성이 위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동화나라처럼 펼쳐져 있었다. 


▲울리켄 산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 베르겐 항구


그림 같은 항구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아내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변했다.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베르겐은 우리에게 풍만한 여유와 포근함을 안겨 주었다. 모든 걸 다 보지 않아도 오롯이 마음이 머무는 도시, 결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곳,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베르겐은 은 여행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다. 맑은 공기, 여유로운 풍경이 발목을 잡고 오래도록 머물다 가라 하네! 자연은 마법사와 같다. 그 누가 이런 멋진 풍경을 연출하겠는가? 오직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자연 앞에서 더욱 겸손해졌다. 


 하이킹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은 플뢰엔 산에서 울리켄 산까지 걸어서 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비가 오락가락한 데다 바람까지 불어와 산정은 추웠다. 우리는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로 내려갔다.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거리엔 자동차도 사람의 행보도 매우 뜸하게 보였다. 시끌벅적했던 어시장도 조용했다. 뷔르겐 골목길을 걷는데 운동화 속으로 비가 더욱 많이 새어 들었다. 새 신발로 갈아 신어야 할 텐데, 노르웨이의 물가는 살인적이어서 노르웨이를 떠날 때까지 꾹 참기로 했다.     


우리는 어시장 근처에 있는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차가운 비에 몸이 젖어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카페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앳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가씨가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작고 소박했다.   

   

어두운 카페에는 촛불을 켜놓고 있었다. 벽 중간 사각형의 액자 속에 걸어놓은 그림들이 한층 카페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가방 속에서 준비해온 빵을 꺼내 들고 뜨거운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빵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벽에 기대어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다 보니 한결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6시가 되니 카페 주인이 웃으며 미안한 듯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고 했다. 허지만 문을 닫기 위해 카페를 정돈할 때까지는 있어도 좋다고 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돈을 더 벌기보다는 자기네 생활을 즐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릴레 룽에갈드스반 호수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호수 중앙에는 분수가 힘차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아트 컬렉션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이내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머무는 동안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며 내렸지만 베르겐은 우리에게 심신을 치유하는 멋진 시간 선물해 주었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베르겐 시가지

    

19시 30분, 드디어 오슬로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루가 매우 길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이제 베르겐을 떠나야 한다. 버스는 내일 아침 6시경에 오슬로에 도착을 한다니 새우잠을 자면서 밤새 달려야 할 것 같다. 달리는 버스에 등을 기대고 있다 보니 피곤해서인지 베르겐 시가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눈이 감겨왔다. 나는 두고두고 베르겐이 그리울 거야. 다시 오고 싶은 베르겐이여, 안녕!


그러나 버스 속의 꿀잠은 오래 지속되지를 못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갑자기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는 소리에 눈을 뜨니, 운전수가 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하면서 빨리 내리라고 했다. 직행으로 갈 줄 알았던 오슬로 행 버스가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만들 줄이야! 운전수를 3번이나 교대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예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기차를 탔을 걸….     

 

유럽의 북쪽 끝에 있는 노르웨이는 국토의 70% 이상이 빙하와 산, 협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버스는 길을 가다가 툭하면 피오르드를 건너야 하는데, 이 때는 버스도 사람도 함께 배를 타고 간다. 노르웨이의 배들은 버스를 뒤로 먹어치우고 앞으로 토해낸다. 뒤로 들어갔다가 뒤로 빠져나오는 우리나라의 페리호와는 근본적으로 구조부터 다르다.      


산이 많은 지형이니 길 또한 꼬불꼬불하여 시간이 더디게 걸릴 수밖에 없다. 국토의 30%가 북극권에 속하고 있다. 한때 노르웨이는 북쪽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들쑥날쑥한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길밖에 없었다. 노르웨이(Norway)라는 나라명도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5만 여개의 섬이 있는 복잡한 노르웨이의 지형은 복잡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고작 2000여 곳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으로 좁고 긴 코브라 모양을 하고 있는 국토는 가장 좁은 부분은 폭이 겨우 6.3km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노르웨이는 여름에는 해가 18시간 이상 해가지지 않는 백야 현상을 나타내고, 겨울에는 하루 종일 눈을 반쯤 뜨고 있는 게슴츠레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특이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오슬로에 도착한 시각은 어스름한 여명의 아침이 시작되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순간의 선택이 여행을 좌우한다. 여행지에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면 평생 후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베르겐에서 출발하는 전설적인 피오르드 크루즈선 후티루텐호를 타지 못한 것이 나는 아직도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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