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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31. 2019

2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리나 궁전과 푸시킨 市

 세계 8대 기적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방     


예카테리나 궁전 호박방


민박집주인 나타샤는 페테르부르크에서는 3개의 궁전을 꼭 가보라고 권했다. 겨울궁전, 여름궁전, 예카테리나 궁전이 그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호박(Amber, 琥珀) 보석으로 치장한 예카테리나 궁전은 꼭 가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러시아 발레나 콘서트를 한편 정도 관람을 하는 것도 권했다. 나타샤의 권유에 따라 우리는 페테르부르크에 3일 정도 머물 예정이었는데 이틀을 더 머물기로 했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새로 단장을 해서 금년에 문을 열었는데요, 이곳에 살고 있는 나도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일일 입장객 수와 입장시간을 엄격히 제한을 하기 때문에 아침 일직 가야 해요. 페테르부르크에 와서 이 궁전을 보지 못하면 평생을 두고 후회를 하게 된답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곳에 가려면 교통은 어떻게 이용해야 하지요?”     


호박 보석으로 치장한 궁전이라는 말에 아내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역시 여자들은 보석에 관심이 많다.  

      

“프리모르스카야 지하철역에서 초록색 지하철 3번을 타고, 두 번째 역에서 내려 파란색 지하철로 갈아타서 일곱 번째 역인 마스코프스카야 역에서 내리세요. 바로 그 역 앞에 287번 마이크로버스가 있어요. 그걸 타시고 푸시킨 시(市)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꽤 복잡하군요. 러시아 말은 당체 혀가 전혀 안 돌아가요. 그러니 미안하지만 역 이름을 러시아말로 적어주시고 그 밑에 한글로 발음을 좀 적어주시겠어요?”

“그러지요.”     


나타샤는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가는 길을 러시아 말 밑에 한글로 발음을 달아주며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방향을 묻는 말도 예를 들어가며 간단하게 적어주었다. “네프스키그제(네프스키 거리로 갑시다).”, “까라블예 스트로이쩰예이 그제(나타샤의 집 주소로 갑시다).”, “스빠시바(감사합니다).” 나는 간단한 말을 포스트잇에 모스크바어로 쓰고, 한글로 발음을 달았다.  

    

“여보, 어제가 아니고 그제야.” 

“그렇지. 그제, 그제, 그제를 잊지 말아야겠군.” 


‘그제’는 방향을 묻는 러시아 말이라고 한다. 러시아 말이라고는 백지상태인 우리는 길을 묻는 꼭 필요한 말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나타샤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모바일 폰을 나에게 빌려주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전화를 하라고 하면서. 만약 나타샤가 모바일 폰을 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   

   

러시아에 와서 가장 답답한 것은 의사소통이었다. 도시의 어디를 보아도 러시아어 외에는 다른 언어로 된 이정표 표시가 없다. 다른 언어를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제 여행안내센터의 안내원들도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러시아의 자존심일까? 다른 언어로 거리 표기를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가야 했다. 모든 게 먹통으로 보이는 거리가 답답하기만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우린 포스트잇에 적은 몇 마디 러시아어를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용감한 여행자들이었다. 버스 운전사에게 포스트잇에 적힌 목적지를 보여주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나타샤가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가는 길을 적어준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가기 위해 나타샤의 집을 나섰다.      


“당신, 나타샤의 말을 잘 알아들었나요?”

“물론이지.”

“믿어도 되나요?”

“물론이지.”    

 

아내는 길치인 나를 믿지 못하는 태도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내는 나를 놓칠 새라 길치인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나타샤의 말대로 초록색 3번 지하철을 타고 다시 파란색 4번 지하철로 갈아탔다. 아내와 나는 역의 수를 손가락을 꼽아 세며 일곱 번째 역인 마스코프스카야 역에서 내려 푸시킨 고로드(市)로 가는 마이크로버스를 탔다. 갈아타는 역을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을 하며 용을 쓰다 보니 메모지를 든 손에 땀이 났다.  

    

우리를 태운 마이크로버스가 도심을 빠져나가자 러시아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들이 펼쳐졌다. 10월의 러시아는 초겨울에 해당한다. 끝없이 넓은 들판을 지나 우리는 푸시킨 고로드에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야 할 지점을 놓쳐버리고 종점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되돌아와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가는 역에서 내렸다. 버스정거장에서 내려 20여분 정도를 걸어가니 그곳에는 눈이 뒤집힐 듯 화려한 궁전이 푸른 초원에 서 있었다.      


예카테리나 궁전


‘세계 8대 기적’이라고 불리는 예카테리나 궁전은 정문에서부터 숲, 조각상, 연못 등 모든 것이 화려하게 조화를 이루며 궁전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이 궁전’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명령으로 1756년에 완성된 러시아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궁전이다.      


궁전 앞에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호박 방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였다. 이 호박 방은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페테르부르크 도시 건설 300주년을 맞이하여 24년 동안의 복원공사 끝에 62년 만에 다시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보기 위한 관람객들이 더욱 몰려들고 있었다.      


입장객을 제한한다는 정보는 나타샤의 귀띔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거의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우린 줄 속에서 한국인 유학생 세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세 번이나 왔지만 오늘도 입장을 하기는 글렀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처지가 달랐다. 오늘 보지 못하면 영원히 관람을 하지 못할 도 모른다.    

  

“여보, 저 사람들 분명히 우리 뒤에 섰던 사람들인데 새치기를 하고 있어요.”

“정말 이러다간 날 새겠는데.”     


아내가 핏대를 세우며 앞으로 지쳐 나간다. 나도 아내를 따라 밀고 들어갔다. 궁전 관리인이 러시아어로 뭐라고 말을 하며 화를 냈다. 러시아말을 못 알아듣는 나는 한국말로 "저 사람들보다 우리가 앞에 있었단 말이요. 저 사람들이 새치기를 한 거야."라고 큰 소리로 되받아쳤다. “분명히 우리보다 뒤에 섰던 사람들인데 왜 새치기를 하게 내버려 두느냐?” 아내도 새치기를 한 러시아인들을 가리키며 한국말로 핏대를 올리자 그는 우리들을 어이없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새치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한국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우리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이해를 하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 그렇게 해서 일단 우리는 궁전 입장에 성공했다. 여기까지 오기도 힘든데 입장을 하기는 더 어려운 곳이 호박 궁전이다. 더욱이 입장료는 1인당 400 루블이나 되었다. 러시아의 모든 입장료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내국인보다 10배 정도 받는 것 같았다.    

  

궁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서 신발 겉에다 일회용 덧신을 신었다. 실내 먼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길이 300여 미터에 55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궁전 내부는 장대한 계단과 금도금 세공, 거울, 보석 등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드디어 호박방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뿜어내는 황금빛 보석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가지가지 색깔의 호박 보석을 정교하게 가공한 후 큰 판으로 만들어 벽과 천장 전체에  호박 보석으로 채워 놓고 있었다. 장식장과 가구, 탁자도 모두 호박 보석 일색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방’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러시아의 호박은 발트해 연안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생산된다는데, 이 호박방에 사용된 6톤의 호박은 모두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운반한 것이다. 큰 덩어리는 1200kg이나 된다고 한다. 2차 대전 때 호박방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서진 호박방은 독일의 루르가스 회사에서 35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여 복원을 했다고 한다. 독일 총리 슈뢰더와 푸틴 대통령이 나란히 호박방의 복원 테이프를 커팅했다고 하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호박은 앰버(Amber)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마찰을 하면 전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리스어 'elecktron'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한다. 호박 보석은 3천만 년 전에서 5천만 년 전에 호박 성분이 있는 나무들의 송진이 화산활동 등으로 땅속에 묻혀 열과 압력으로 화석이 되어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최고 장신구로 사용되어온 호박은 거미, 개미, 파리 같은 곤충류와 새들의 날개 등이 들어간 것이 값이 비싸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궁전이 입장객을 제한하는 것은 호박의 성질 때문이다. 호박은 많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가스나 40도 안팎의 더위에도 파괴될 정도로 약하다 것이다.      


“정말 호박으로 도배를 해 놓았군요.”

“난 호박이 먹는 호박만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호화로운 보석이라니 놀랍기만 한데… ”

“언제 보석을 사 줘 봤어야 알지요.”

“하하, 그렇기도 하군. 그럼 저 호박 한쪽 사줄까?”

“호박 보석이 얼마나 비싼 줄 알기나 하세요?”      


궁전의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가격을 알아보니 다이아몬드 값에 버금가는 가격이었다. 호박이 그렇게 비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일이다. 새로 복원된 호박방의 가치는 무려 2억 달러(2400억 원)나 된다니 호박의 값이 얼마나 비싼지 짐작이 갔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개어 있고 햇빛이 눈부시게 초원과 호수에 부서지고 있다. 한쪽은 노랗게 단풍이 든 나무가, 다른 한쪽은 푸른 삼나무가 도열해 있는 정원이 이채롭게 보였다. 계절이 바뀌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할까? 이 신선한 공기와 물, 나무들은 호박 보석보다 귀한 존재들이다.     


“난 호박방보다 이 싱그러운 정원이 훨씬 좋아요.”

“전 호박방이 더 좋은데요?”

“하하, 여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요. 내 언젠가는 왕방울만 한 호박 보석을 그대 품에 안겨 주리라.”

“호호, 기대하겠어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천재 시인 푸시킨은 흑인 혈통을 이어받았다    

 

예카테리나 궁전 바로 그 옆에는 푸시킨이 공부했던 학습원이 붙어있었다. 이 학습원은 1811년 10월 러시아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였다. 모스크바의 오래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푸시킨은 이 ‘학습원’의 제1기생으로 졸업했다. 학습원은 1949년 푸시킨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재건되었다고 하는데, 궁전 건물에 비하면 초라한 목조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이 다녔다는 학습원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푸시킨이 있다. 푸시킨은 러시아의 국민시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나는 예카테리나 궁전보다는 푸시킨이 공부를 했다는 학습원에 관심이 더 쏠렸다. 학습원 내부를 돌아보고 뒤편으로 가니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 중앙에는 시인 푸시킨이 오른손으로 고개를 괴고 앉아 깊은 사색을 하고 동상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 예술의 원조인 푸시킨이 아프리카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곱슬머리에 두툼한 입술을 가진 동상이 그의 혈통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표트르 대제의 대개혁 시절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푸시킨의 외조부는 표트르의 총애를 입어 귀족 작위를 하사 받았다. 그리고 그의 혈통 속에서 러시아의 천재시인 푸시킨이 탄생했다.


천재시인 푸시킨은 외조부가 에티오피아 인으로 흑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푸시킨이 러시아 예술의 원조로 불리는 것은 그가 시와 소설, 희곡을 넘나들며 천재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뿐만 아니다. 푸시킨 이전의 러시아에서는 문학 언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수 없었다.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며, 하층민들의 러시아어는 유치하다고 하여 문학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한글로 시를 쓰지 않고 한문으로만 시를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푸시킨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러시아어 구어체에 기반을 둔 풍성한 러시아 문학 언어를 창조한 것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푸시킨의 동상 쪽으로 걸어가는 데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겨울비가 옷깃을 촉촉이 적셨다. 그러나 이 비는 다시 내일의 봄을 기약하는 생명의 비다. 비를 맞으며 푸시킨 동상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란 푸시킨의 시가 떠올랐다. 이 시는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낭송을 해보았음직한 시다.    

  

남자와 여자의 생각은 다르다. 여자는 저 단풍처럼 환경에 따라 수시로 색깔이 달라지는 것일까? 허지만 푸시킨의 시처럼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야 할까?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딘다고 해서 꼭 기쁨의 날이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한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니 오히려 미래를 기대하지 말고 현재 현재 찰나의 순간을  멋지게 살아가야 하지않을까? 나는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란 시를 떠올리며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 비록 비싼 호박 보석을 사 주지는 못했지만 호박 보삭 방을 돌아보며 눈요기는 실컷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푸시킨의 학습원과 정원을 산책하다가 오후 늦게 우리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푸시킨 시(市)를 뒤로 하고 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말고, 주어진 찰나의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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