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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Feb 02. 2019

22. 러시아에서는 스킨헤드를
조심하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여름궁전

정말 지독히도 열성적인 러시아인들의 독서열     


'여름궁전'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약 30km 떨어진 핀란드 만에 위치하고 있다. 공식 명칭은 '표트르의 궁전'이다. 우리는 네프스키 대로에서 출발하는 주로 내국인들이 이용하는 이층 버스를 타고 반나절 투어를 이용하여 여름궁전으로 향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 앞 선착장에서 쾌속정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는데 이미 시즌이 지나 운행을 하지 않고 있었다. 


러시아 여자 안내원이 러시아 말로 설명을 하는데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출발과 도착 시간만 정확히 알고 갔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책을 읽거나 조용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흰 노인들도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뽕짝 리듬에 하루 종일 춤을 추고 가는 우리네 관광버스와는 퍽 대조적이었다. 그만큼 러시아는 독서열이 대단했다.



이들의 독서열을 보고 있노라니 러시아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대 문호가 탄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 중에서도 페테르부르크는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도시라고 한다. 이런 독서열을 바탕으로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발전시켜 러시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과 문화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 폰의 발달로 인터넷 등 영상 매체로 눈이 쏠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에게 인쇄된 책은 여전히 가치 있게 여겨지고 있으며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영상매체보다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고요히 사유를 할 수 있으며 비평의 눈을 통해 지성을 키워갈 수 있다. 여름궁전에 도착할 때까지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대부분의 러시아 인들은 책을 손에 놓지 않고 있었다. 정말 지독히도 열성적인 독서열이었다.


나는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시내의 어디서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가방에 한 두 권쯤 미니 사이즈의 책을 넣고 다니다가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햇볕이 내리쬐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너무나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러시아인의 일주일간 평균 독서시간은 7.1시간이며, 국민의 47%가 취미생활을 독서라고 응답하는 여론 조사가 나와 있다. 독서를 하는 러시아인을 바라보며 독서 강국답게 그들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바 강을 따라 간 버스는 넓은 정원을 지나 여름궁전 안에 정차했다. 표트르 대제의 명으로 수많은 건축가, 조각가, 조경가 등을 동원하여 1000ha의 광대한 땅에 지어진 여름궁전은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대궁전을 중심으로 황금빛 나는 각종 조각상과 수많은 분수가 여름궁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황금 조각 하나하나가 다 분수였다.



대궁전 앞에서는 해군복장을 입은 궁전의 악사들이 멋들어지게 각 나라들의 민요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핀란드 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무척 차가웠다. 아무리 화려한 궁전이지만 겨울철의 궁전 길은 쓸쓸했다. 여름궁전은 핀란드 만에서부터 점점 높아지는 지형을 이용하여 ‘아래공원’과 ‘윗공원'으로 테라스 모형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러시아 예술의 진수라고 하는 아래공원은 조각상과 분수, 폭포로 꾸며져 있다. 궁전의 중심에서 흘러내리는 대폭포는 좌우로 나누어져 일단의 계단을 따라 흘러내리고, 그 앞으로 64개의 분수가 힘찬 물줄기를 뿜어낸다. 여름에는 지상에서 가장 멋진 환상의 분수 쇼를 연출한다. 


분수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빙빙 돌아가며 춤을 추는 시계분수, 밟으면 갑자기 솟아 나오는 장난분수, 체스 판으로 흘러내리는 체스분수 등. 표트르 대제 당시에는 핀란드 만에서 바다까지 연결된 운하로 궁전까지 초대 손님들이 도착했다고 한다. 


“분수는커녕 물 한 방울 도 없군요.” 

“그렇군. 분수가 나오지 않은 궁전은 어쩐지 쓸쓸하기만 해요."


겨울로 접어드는 궁전은 폭포와 분수는커녕 물 한 방울도 없었다. 겨울엔 분수가 모두 얼어 버리므로 물을 전부 빼놓는다고 한다. 한 여름, 11시가 되면 공원 안에 있는 144개의 크고 작은 모든 분수가 일제히 하늘로 물을 뿜어내어 물보라로 장관을 이루고, 그 분수의 물보라에는 7색 무지개가 동화나라를 연출한다고 하는데……. 


“여름궁전은 여름에 와야 제격이겠어요.”

“다음에 다시 한번 오라는 기회를 주는 것 아니겠소.”

“어느 세월에요.”


아내의 말처럼 어느 세월에 이곳에 다시 올 날이 있겠는가. 대궁전과 소궁전을 둘러보고 난 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더욱 차갑게 보이는 핀란드만의 바다를 뒤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보통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도시다. 이 기적 같은 도시에 우리가 도착한 것 역시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나 할까? 300년 전 네바 강의 삼각주 늪과 섬에 세워진 이 도시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페테르부르크는 북위 60도에 위치한 동토의 땅이다. 네바 강을 끼고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을 연결하여 이루어진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흘러넘치고 있다. 겨울이면 얼음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되고 마는 이 도시는 표트르 1세(1672~1725)에 의해 ‘유럽으로 열린 창’으로 다시 태어난다. 네바 강의 얼음을 쇄빙선으로 뚫고 발트해를 거쳐 북해를 경유하여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핀란드 만과 맞닿은 페테르부르크는 한 여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지속되는가 하면, 겨울이면 어두운 밤의 터널이 길게 지속되어 몽환적인 도시가 되고 만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는 아름다운만큼 우울증 환자와  변태성욕자들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이 도시의 매력은 네프스키 대로에 있다. 그곳에 가면 러시아의 위대한 예술인과 문가들의 흔적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네프스키대로는 예술의 거리이자, 사랑의 거리요, 쇼핑의 거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네프스키 대로에 볼 일이 있어서 오지만, 네프스키 대로에 들어선 순간 그 일을 잊고 만다. 그저 그 거리에 취해 거닐 뿐이다” 러시아의 사실주의 작가 고골이 그의 ‘네프스키 대로’란 작품에서 묘사한 내용이다. 그만큼 네프스키 대로는 볼거리도 많고, 할 거리도 많다. 푸시킨이 결투를 하러 가기 전에 레모네이드를 마셨다는 문학카페, 카잔성당, 피의사원, 예술광장, 국립러시아박물관, 도스토옙스키 문학기념박물관 등이 모두가 네프스키 대로와 주변에 위치해 있다.


여름궁전을 갔다가 네프스키대로에서 내린 우리는 먼저 카잔 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카잔 성당은 네프스키 대로를 향해 코린트식 기둥이 반원형으로 멋지게 늘어서 있었다. 무명의 건축가 보로니힌에 의해 설계된 이 성당을 완성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래서 성당 안에는 나폴레옹 군대에서 탈취한 몇 개의 군기가 장식되어 있다. 19세기 이후 한 때 학생들의 집회 장소로 유명했던 이 성당은 네프스키 대로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회랑 앞의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우리는 운하를 따라 ‘피의 사원’ 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보에토프 운하에 비치는 성당과 건물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가스티니 드보르 백화점 건물도 1km 이상의 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어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멀리 ‘피의 사원’이 그림처럼 보였다. 


“저건 정말 한 폭의 그림이군요! 가슴속에 영원히 담아두고 싶어요.”

“여기 카메라에 다 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운하 앞에서 흐드러지게 트럼펫을 불어대는 거리의 악사가 보였다. 우리도 쉽게 알 수 있는 ‘서머타임’이란 곡이었다. 연주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흐르는 운하 속으로 그의 트럼펫 소리가 전율하듯 스며들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멜로디였다. 


“어쩜 저렇게 잘 불지요?”

“정말 수준급인데!”


우리는 붉은 벽에 마치 양파 머리 지붕처럼 생긴 건물로 걸어갔다. ‘피의 사원’이다. 이 성당의 정식 이름은 ‘스파스 나 클라비 성당(예수부활 교회)’인데, 1881년 5월 1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피를 흘리며 암살당한 자리에 세워졌다고 하여 ‘피의 사원’으로 더 알려져 있다. 



우리는 피의 사원에서 가까운 그리바에도프 운하 거리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운하 주변에는 많은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린 그중 깃발이 휘날리는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천장엔 이상한 휘장이 둘러져 있고, 종업원 아가씨들이 매우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늘씬한 다리가 저절로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무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밤에는 공연도 하는 모양이다. 


배낭을 멘 동양의 이방인이 들어가니 종업원들이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동물원에 원숭이를 구경하듯 슬금슬금 처다 보던  아가씨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름도 맛도 모르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했다. 러시아 맥주도 한 병 주문했다. 값을 물어보니 320 루블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맛보는 레스토랑 음식이었다. 


우연히 들른 피의 사원 운하 옆 카페에서


"자, 우리들의 러시아 여행을 위하여 건배!"

"건배!"


우리가 맥주잔을 마주치며 건배를 외치자 러시아 아가씨들이 바라보며 픽 웃었다. 여행 중 우리들의 사랑은 맥주 한잔 속에 녹아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우리는 피의 사원 주변을 산책했다. 거리에는 인형을 파는 노점상이 줄이어 있었다. 아내는 요술 주머니처럼 생긴 러시아 인형을 샀다. 오뚝이처럼 생긴 인형에서는 몇 개인지 모를 인형이 수없이 나왔다. 마치 양파 껍질처럼 수 없이 많은 인형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거, 정말 무진장 쏟아져 나오네! 하하, 정말 요술 인형처럼 생겼네!”

“너무 귀엽지 않아요?”


러시아 인형을 사든 아내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트료시카(Matryoshka)라고 불리는 이 인형은 러시아어 어머니란 뜻의 '마쯔'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다산과 다복을 기원하는 이 인형은 보통 자작나무로 만들어진다. 겉으로 보면 한 개인데 중간 허리를 돌리면 양파껍질을 벗기듯 조금씩 작아지는 인형들이 자꾸만 솟아 나온다. 보통 한 인형에 열 개 정도 들어 있다.


"우리도 아이들을 좀 더 날걸 그랬지요?"

"아이고, 둘도 벅찬데 누구 죽는 꼴 보려고요?"


피의 사원 앞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한 때의 축하객들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랑 신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들러리를 서고 있는 하객들끼리 서로 부둥켜 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저들도 곧 아이들을 낳겠지. 쪽쪽, 키스를 하는 소리가 그 옆을 지나가는 우리들에게까지 들려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진풍경이었다. 이거야 정말…


“여보, 저 사람들 좀 봐요. 신랑 신부 축하는 뒷전이고 자기들끼리 키스를 하고 있어요.”

“하하, 재미있군. 자, 우리도 부둥켜안고 저들처럼 키스를 한번 해볼까?”

“아이고, 맙소사!”



네프스키 대로에서는 '스킨헤드'를 조심하라     


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에는 신랑 신부가 하객 친구들과 함께 떼 지어 몰려다니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스스럼없는 사랑의 표시는 예술적인 도시 풍경 속에 더욱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해는 매우 짧다. 3시인데도 벌써 거리가 어두워졌다. 거리는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란 소설 무대처럼 음침해졌다. 그런데 러시아 인형을 산 뒤부터 우리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죽잠바 차림의 청년들이 몇 명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이 내 배낭의 뒤를 손대는 것을 아내도 나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여보, 조심해요!”

“알고 있어. 상관 말고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자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이럴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갱들은 뒤를 돌아 얼굴을 보면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엔 힘없는 아시아인들을 골라 폭력을 휘두르는 ‘스킨헤드’(skinhead, 백인 우월주의자들, 특히 러시에서는 극우 파시스트들이 극단적인 인종차별을 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폭력을 행사하고도 경찰의 제지를 받지도 않는다고 한다. 스킨헤드라는 명칭은 피부가 드러날 정도로 빡빡 깎은 머리를 특징으로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그들은 머리를 빡빡 깎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 척하고 잰걸음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네프스키 프로스팩트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역에는 마침 퇴근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려는 승객처럼 재빨리 지하철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다다르자 그들은 입구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러시아엔 대낮에도 갱들이 동양인을 노리고 있으니 주위를 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지나 센나야 역에서 내렸다. 센나야 역에는 ‘죄와 벌’의 주인공인 리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며 대지에 입을 맞춘 광장이 있다. 바로 죄와 벌의 소설 무대에 등장하는 센나야 광장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곳에서 가까운 운하 근처 노란색 건물 하숙방에서 3년간 머무르며 ‘죄와 벌’을 썼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가의 기록을 분석하는 서클 회원이 된 그는 러시아 정부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10분 전에 황제의 칙명에 의해 극적으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에서 4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석방된 그는 존속살해를 주제로 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 한지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의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이 성경 구절에서 그는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대한 중심사상을 구상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죽는 날까지 신에 대한 믿음을 추구한 삶을 살아갔다. 즉, 사람마다 자기 마음에 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는 육체적 생활을 거부하고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범으로 몰려 사형 직전까지 갔었고, 가난한 소설가로 간질병 등 각종 병고에 시달리던 그는 죽어서 러시아의 거장 예술가들이 묻혀있는 네프스키 대로 끝에 있는 ‘타프빈 묘지’에 묻혀있다.    

  

갱을 따돌리려고 하다가 우연히 ‘죄와 벌’의 무대인 센나야 광장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네프스키 대로로 갔다. 위험을 느끼긴 했지만 여전히 네프스키 거리는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서성이고 싶은 거리였다. ‘푸시킨스카야’, ‘도스토옙스키 스카야’ 같은 지하철역이 있는가 하면, ‘무소륵스키 극장’ 등 예술인들의 이름을 딴 지명들은 네프스키 거리를 예술의 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동상 앞에는 어김없이 꽃다발로 둘러 싸여 있었다. 꽃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도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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