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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Feb 05. 2019

24. 모스크바 블루

러시아  모스크바-크렘린 궁전, 붉은 광장

짐을 맡기는데 2시간, 흥부가 기가 막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하여 밤새 기차를 타고 온 우리는 이른 아침 모스크바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 도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 이름이 헷갈렸다. 하늘을 바라보니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던 지난 5일 동안에도 햇빛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역사에 드리운 잿빛 하늘을 바라보니 어쩐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황당하게 느꼈던 것은 짐을 맡겨둘 라커를 찾는 일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는 모스크바에서는 하루만 있기로 하고, 오후 5시에 베를린으로 비행기 표를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원 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은 좌석을 확보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일반 승객들의 좌석을 먼저 배정하고 난 후, 남은 좌석을 배정해주기 때문이다.



큰 배낭을 라커룸에 맡겨놓고 크렘린 궁전만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도대체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없었다. 사람들을 붙들고 “라커룸”, “러기지 박스”, “세이프 박스”, “코인박스” 등 별별 단어를 다 주서 대 보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러시아어 사전을 하나 사 들고 오는 건데… 그러나 후회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라커룸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International Information Center'라는 영어로 쓰인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반가웠다. 영어로 써 놓았으니 웬만한 영어는 통할 수 있겠지. 그러나 착각은 자유였다. 머리가 하얗게 쉰 할머니 안내원은 영어를 알아듣기는커녕 괜히 큰 소리를 빵빵 치며 빗겨 서라고 손사래를 쳤다. 꼭 늙은 여우처럼 생긴 할머니는 내가 계속해서 묻자 이젠 화를 버럭 냈다. 할머니의 큰 소리에 주눅이 들린 우리는 목을 움츠러들었다. 이거야 정말, 아침부터 모스크바 여행은 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모스크바를 패스를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따르기도 했다. 


“이거야 정말… 흥부가 기가 막히네!”

“정말 너무들 하군요.”


창구에서 비껴서라고 화를 내는 할머니 등살에 할 수 없이 우리는 안내센터에서 물러 나왔다. 마침 그때 경찰 제복을 입은 나이 든 여자 경찰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이거 또 불심검문을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이 더럭 났다. 러시아 관광명소에는 경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는 자들이 불심검문을 하여 여행자들로부터 삥을 뜯어내는 경우가 있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까다로운 입국법을 악용해 체류 도장이 찍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벌금을 뜯어가기도 한다는 것. 대처방법은 한국말로 큰소리로 항의를 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거나 러시아어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경찰의 직급과 이름을 물어보고 신분증을 먼저 보여달라고 하며 역으로 선수를 치는 것이다. 아니면 러시아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면 귀찮아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단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경찰은 여자 경찰인 데다가 인상이 좋아 보였다. 허지만 그녀 역시 영어는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역으로 그 여자 경찰을 붙들고 네모난 상자를 손가락으로 그려 보이며 배낭을 집어넣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알아들었는지 빙그레 웃으며 지하실로 내려가라고 했다. 나는 단 한마디 알고 있는 러시아어 "스파 시 빠!"를 연발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녀가 알려준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로 내려갔으나 내가 기대했던 역시 라커룸은 없었다. 대신 수하물 창고 비슷한 곳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수하물 창고에 줄을 서서 짐을 맡기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군.”


어쨌든 줄의 맨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긴 줄을 한 참을 기다려 내 차례쯤 되어가고 있는 찰나에 수하물 창고의 문이 그만 철커덕 닫혀버렸다. 손짓 발짓으로 옆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 창구 담당자의 근무 시간이 끝나 다른 창구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헐~ 정말 모스크바 여행은 시작부터 망했다! 수하물 창고 창구 위에 쓰인 숫자를 보니 짐을 맡기는 시간과 찾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허허, 이렇게 황당할 일이….”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긴 공산주의 사고방식이 아직 가시지 않는 러시아다. 할 수 없이 옆 창구로 가서 다시 맨 처음보다 더 긴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려 두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나는 보관료 70 루블을 주고 겨우 큰 배낭을 맡길 수 있었다. 

 

“짐만 맡기는데 2시간이나 걸리다니….”

“정말 울화통이 터지는군요.” 


역시 공산주의는 비생산적이었다. 그러니 모든 일이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센터에 근무하는 할머니도 수하물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모두 공산당원이라고 했다. 국가에서 경영하는 시스템은 경쟁 상대가 없으니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인구 약 1천만 명에 이르는 모스크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하면 거리부터 훨씬 복잡했다. 지하철 노선도 11개나 되고, 지하철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도 페테르부르크보다 더 길고 깊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 마치 깊은 수렁 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보, 저기 삼성 마크가 보여요!"

"어디? 오, LG 마크도 보이네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한 가지 기분이 좋은 것은 역사 앞 건물 지붕에 있는 'SAMSUNG'과 ‘LG'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마크였다. 러시아에 파고든 우리나라 기업들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괜히 가슴이 우쭐해졌다. 경쟁이 치열한 해외시장에 침투하여 경제전쟁을 벌리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이야말로 애국자다. 이제 세계는 소리 없는 경제전쟁시대다. 이 침묵의 전쟁에서 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세일로 이기는 자만이 국제사회의 진정한 강자가 된다. 


러시아 국립도서관 보이는 삼성마크


메트로 카사(매표소)에서 표를 사들고 크렘린 궁으로 가는 메트로를 탔다. 크렘린 궁은 ‘비브리오쩨까 임 레니나 역(레닌도서관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안내서에 적혀 있었다. 역 이름이 어찌나 길던지 도저히 외울 수는 없고 러시아어로 포스트잇에 역 이름 그려서 적고 한글로 발음을 달았다. 그리고 몇 개의 역을 지나야 하는지 역 수를 미리 헤아려 놓았다.     


“러시아 인은 모스크바를 어머니로 느낀다.”톨스토이는 모스크바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역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맡기느라 2시간이나 허비하고, 백색의 인간 숲에 묻힌 우린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황색 이방인처럼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포스트잇에 적은 역 ‘비브리오쩨까 임 레니나’ 역에서 내리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아내와 나는 역의 수를 손가락을 꼽아가며 열심히 헤아렸다. 마침내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 도착하여 러시아 국립도서관 출구로 나갔다. 


도서관 입구에 도스토옙스키 동상이 우수에 젖은 듯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서관 안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고, 정문 앞에는 도스토엡프스키의 동상이 상호모순을 안고 서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주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비판을 하며 적대감을 드러낸 인물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처럼 가족애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는 대부분 생산수단을 소수의 자본가가 독점을 하여 이것을 사회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민중은 불행할 것이라고 보았다. 


러시아인들의 영혼이 응축된 도시, 모스크바! 레닌 도서관(현 러시아 국립도서관)은 일 년에 몇 밀리미터씩 내려앉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바로 레닌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이 너무 많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러시아 국립도서관에는 책이 많다는 것이다. 2012년 1월 1일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소책자를 포함한 서적이 약 1천7백80만 권이나 된다니 놀랍기만 하다. 생각 같아서는 도서관을 들어가 구경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었다. 육중한 레닌 도서관을 뒤로하고 크렘린 궁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드디어 공산주의 권력의 상징인 크렘린 궁전의 붉은 성벽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성벽이 어찌나 높던지 밑에서 바라보면 그 끝이 아득했다. 크고 둥근 지붕, 붉은 깃발!  크렘린 궁이 베일에 가린 채 우뚝 솟아 있었다. 붉은 광장은 러시아어 '끄라스나야'는 '붉은'이라는 뜻도 있지만 '아름다운'이라는 뜻도 있다. 붉은 광장은 빨간색 일색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나 몇 개의 탑과 벽을 제외하고는 붉지 않다. 


크렘린궁 붉은 성벽


미국의 상징이 ‘화이트 하우스’라면 러시아의 상징은 ‘크렘린 궁전’이다. ‘크렘린’은 원래 ‘성벽’을 의미하는 러시아어다. 작은 성벽에서부터 시작된 크렘린 궁전은 서서히 규모를 확장하며 막강한 권력의 상징으로 변모되어왔다. 크렘린은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 요새를 뜻한다. 


모스크바 크렘린은 1156년 모스크바 대공국 유리 돌고루키가 쌓아 올린 나무로 만든 요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4세기 중엽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크렘린 성벽을 하얀 석조 건물로 개축을 했고, 15세기에 벽돌로 된 벽, 탑, 성문 등으로 튼튼한 성채로 만들었다. 모스크바 강을 따라 1 변이 약 700m의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크렘린 성벽의 길이는 2235m, 높이 9~20m 두께 4~6m의 벽으로 20개의 성문이 있다. 견고하게 둘러싸인 크렘린 궁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모스크바가 다시 수도가 되면서부터 소련 정부의 본거지가 되었다. 우리는 붉은 성벽을 따라 걸어서 붉은 광장으로 들어가는 매표소로 갔다. 


“드디어… 크렘린 궁까지 왔군!”

“성벽이 왜 이리도 높아요?”

“그러니까 크렘린이지요.”

“왠지 으스스해요.”


페레스트로이카로 공산주의가 무너졌다고 했지만 붉은 성벽을 마주하는 느낌은 으스스했다. 페레스트로이카! 고르바초프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 이 한마디가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힘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세계를 진동시킨 페레스트로이카의 열풍과 자유를 갈망하는 러시아인들의 염원은 철의 장막을 걷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토의 세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차디찬 침묵의 성으로만 각인되어 있는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이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물결이 지나간 붉은 광장의 장막은 아직도 얼음 같은 잔해는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한동안 러시아의 평민들은 오히려 먹고 살기가 힘이 든다고 했다. 자유와 개혁을 갈구했던 러시아 서민의 대다수가 개혁의 주인공인 고르바초프를 싫어한다고 하니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모스크바 강가에 둘러쳐진 붉은 성벽은 높다. 성벽 밑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다. 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미국의 백악관과는 퍽 대조적인 모습이다. 


성벽을 따라가다가 크렘린  매표소에서 크렘린 궁 티켓을 샀다. 박물관과 종루에 올라가는 것은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박물관을 돌아볼 시간도 없지만 우리는 그냥 붉은 광장만 돌아보기로 했다. 보안 체크를 하고 소형 배낭도 탑 아래에 있는 수하물 보관소에서 맡겨야 했다. 맡기는 비용을 120 루블이나 받았다. 크렘린 안으로는 작은 가방도 들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무장 해제다. 무장해제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자기 나라를 찾아온 관광객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심한 일이지 않는가? 크렘린 궁전으로 가는 길은 육중하고 길었다. 


매표소를 지나니 긴 다리와 함께 높이가 80m나 된다는 트로이츠카야 탑(삼위일체 망루)이 나타난다. 이 탑은 붉은 광장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원래 정교회 사제들만 드나드는 문이었는데 지금은 여행객들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트로이츠카야 탑을 지나니 마침내 둥근 지붕 위에 붉은 러시아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붉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어휴~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군요."

"여긴 크렘린 궁전이지 않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궁전 위로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대통령 관저 앞에 서있는 러시아 병사의 모습이 왠지 외롭게 보였다. 대통령 관저 건너편에는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비롯하여 옛 러시아 제국의 대성당이 줄줄이 서 있다. 황금빛 지붕들이 양파를 잘 다듬어 놓은 듯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우스펜스키 사원에는 구한말 우리나라의 슬픈 흔적이 남아 있었다. 1896년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대관식이 있었다. 그때 우국 사절로 대한제국의 민영환, 윤치호 일행이 이곳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관식을 거행하는 사원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들이 쓴 우리나라 전통 갓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들은 갓을 벗기를 거부했다. 꼿꼿한 선비 정신을 가진 그들의 절개가 사원에 감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스펜스키 사원


성당에서 나와 붉은 광장으로 갔다. 붉은 광장으로 가기 전 성벽 밑에서는 망토 같은 긴 코트를 입고 집총을 한 러시아 군인들이 보였다.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교대식이라고 했다. 레닌의 묘가 있는 지역은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카메라 등 일체의 소지품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카메라를 아내에게 맡기고 내가 돌아 나온 다음 차례로 아내가 들어가기로 했다.


무명용사의 무덤


광장 멀리 양파 머리를 이고 있는 성 바실리 성당의 종루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마치 백랍 인형처럼 어두운 지하에 방부 처리된 채 누워있는 레닌의 시체를 본 순간 왠지 소름이 끼쳤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어두운 밀실에 유독 레닌의 시체 쪽에만 조명이 비추이는 시신은 충격적이었다. 레닌은 죽어서도 편하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경비들이 투명인간처럼 전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도 안되고, 소리를 내서도 안된다. 레닌은 소비에트 연방국가의 창설자이자 마르크스주의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잰걸음으로 광장을 한 바퀴 돈 후 아내에게 바통을 이어주고 나는 성 바실리 성당 출구 쪽에서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크렘린 궁 맞은편에 있는 ‘굼’ 백화점 앞길을 걸어가며 레닌 묘 쪽을 바라보니 황급히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궁둥이를 빼고 거의 달려가다시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자니 쿡쿡 웃음이 나왔다. 성 바실리 성당에 도착한 아내의 얼굴에는 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니, 천천히 오질 않고 뭐가 그리 급해서 뛰어 왔소.”

“죽어 있는 시체를 보니 무서웠어요.”

“참 당신도… 산 사람이 무섭지 죽은 사람이 뭐가 그리 무서워요.”


붉은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


성 바실리 성당에서 재회를 한 우리는 성 바실리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여덟 개의 둥근 지붕이 금빛 중앙 돔을 감싸고 있는 바실리 성당은 아무리 보아도 아름다웠다. 주변의 붉은 지붕, 붉은 성벽과는 퍽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모든 아름 것은 그 이면에 슬픔이 숨어 있는 것일까? 완성된 성당의 아름다움에 너무 놀란 이반 4세는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 포스토닉과 바르마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 한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소름이 끼쳐왔다.


붉은 광장을 나온 우리는 성벽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붉은 벽을 따라 모스크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 모스크바 강은 ‘S’ 자 형으로 모스크바 시내를 관통하다가 ‘러시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볼가 강으로 흘러간다. 


"이거, 내 마음까지 붉어지는 것 같아…."

"그래서 빨갱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글쎄…."     


비행기 날개가 얼었다고?     


한국의 10월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맑을 텐데, 잿빛 하늘에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스크바의 날씨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우린 다시 예의 ‘비브리오쩨까 임 레니니 볼로비츠카야’라는 긴 이름의 역에서 레닌그라드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회색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더니 이윽고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차가웠다. 여차하면 눈으로 변해서 쏟아질 기세였다. 뭔가 불길한 조짐이 회색 하늘에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수하물 보관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짐을 찾아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도모데도보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가까스로 갈아탔다. 


비 내리는 도모데보도 공항


우리는 도모데도보행 기차를 타고 공항에서 내려 브리티시 에어라인을 찾아갔다. 브리티시 에어라인을 타고 런던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원 월드 티켓은 정해진 에어라인만을 타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탑승을 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비행기는 이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죄송합니다. 비행기 날개가 얼어서 출발시간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날개의 얼음을 녹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약 30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좌석에 앉은 채로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여보, 지금 뭐라고 하는가요?” 

“비행기 날개가 얼어서 늦어지고 있다는 군.” 

“뭐요? 비행기 날개가 다 얼다니요?”

“글쎄 말이요?”


결국 비행기는 정한 시간보다 2시간 후에 이륙했다. 


“꼭 안갯속을 헤매다 떠나는 기분이군요.” 


러시아는 아직은 배낭여행을 하기에는 무척 힘든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시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불친절한 관리들. 이 모든 것들이 배낭 여행자에게는 힘들게 만 느껴졌다. 2시간이나 늦게 이륙한 비행기 때문에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히드로 국제공항은 대단히 복잡하다. 터미널이 무려 네 개나 있는데, 터미널 간 이동 거리가 너무 멀어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한다. 


2시간이나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며-도모데보도 공항


우리가 내린 터미널은 2 터미널이고,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는 갈아타는 곳은 3 터미널이다. 2 터미널에서 3 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가는데도 한 참을 걸어야 했다. 뛰다시피 달려가 겨우 3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베를린행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제3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10분, 탑승 시간보다 무려 10분이나 초과되고 있었다.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니 승무원이 서둘러 탑승하라고 재촉했다. 우리 두 사람 때문에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비행기 트랩으로 달려갔다. 가까스로 좌석에 앉으며 아내와 나는  동시에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비행기는 곧 이륙했다. 우리 때문에 비행기는 무려 30분을 늦게 출발한 샘이다. 당초 계획은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세계일주 항공권은 한 대륙에서 네 번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옵션을 준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차보다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는데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어쨌든 베를린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를린 공항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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