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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09. 2019

39. 뭐? 맥주 한잔하러
뮌헨까지 간다고?

독일-뮌헨


“맥주 한잔하러 뮌헨까지 간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맥주 거품 속에서 행복을 찾고, 차가운 맥주 한 잔에 스트레스를 확 풀기 위하여 독일 뮌헨까지 가는 사람들을 당신은 이해를 해야 한다. 어쩌면 인생은 맥주 거품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맥주 거품처럼 잠시 세상에 떠 올랐다가 일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일 맥주 하고도 뮌헨의 맥주! 맥주를 한 잔쯤 마실 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뮌헨의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 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제의 하나로 꼽는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어로 옥토버(Oktober)와 축제를 뜻하는 (Fest)의 합성어로 10월의 축제를 의미한다.


뮌헨의 맥주 축제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se) 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1810년 10월 12일 작센국의 테레제 공주와 바이에른의 황태자 루트비히 1세의 결혼식이 뮌헨의 성벽 앞 잔디밭(비제, Wiese)에서 열렸는데, 옥토버페스트는 이 결혼식을 기념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이 잔디밭은 테레제 공주의 이름을 따서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라고 부르게 되었다. 


매년 9월 15일 이후에 돌아오는 토요일 정오가 되면 쇼텐하멜(Schottenhamel) 천막에서 뮌헨 시장이 맥주 통을 깨부수며 "오 차프트 이스!"(O'zapft is: 맥주통이 열렸다!)라고 외치며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된다. 그해의 새로운 맥주를 꺼내 높이 쳐드는 것으로 시작되어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16~18일간 지속된다. 축제가 시작되면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이 맥주 한잔 하러 뮌헨의 맥주 축제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매년 평균 600만 명 이상이 몰려드는 옥토버페스트는 지구촌 최대의 맥주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관람하고 퓌센을 출발하여 뮌헨 역에 저녁 7시에 도착했다. 뮌헨 역에서 내린 우린 우선 맥주 한 잔을 위하여 궁정 맥주공장인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찾아갔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10월의 맥주 축제기간이 지나간 11월 6일이지만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여전히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의 기원은 빌헬름 5세 공작이 1589년 맥주 양조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세기가 되자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생맥주집이 딸린 맥주 양조장이 되었고,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다.  ‘호프집’이란 말도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Hof'란 독일어로 궁정과  'Braeuhaus'는 양조장의 합성어로 ‘궁정 양조장’을 의미한다. 옛날엔 보통 마당이나 정원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그게 오늘날 ‘호프집’으로 발전되었다는 것.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들어서자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형 맥주홀은 빈자리가 없이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뮌헨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뮌헨에 가서 ‘호프브로이하우스’ 집을 찾지 않고 오면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2차 대전이 발생하기 전 히틀러가 그의 동지를 규합할 때 이 술집에서 명연설로 군중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히틀러는 나치의 전신인 독일 노동당 최초의 대집회를 이곳에서 가졌다. 그러나 어두운 시대의 기억은 흔적도 없고, 맥주홀은 맥주잔을 부딪치며 노래를 부르는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옛 궁정 양조장 호프브로이하우스


“프로스트!”

“건배!”


마침내 자리를 잡은 우리도 500CC 맥주를 시켜 잔을 높이 들고 축배를 외쳤다. 빈속에 맥주가 들어가니 짜릿한 느낌이 목 줄기를 타고 오장육부에 전달되며 지금까지 쌓인 여독이 맥주 한 잔에 슬슬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과연 "맥주 한잔을 마시러 독일 뮌헨까지 온다!"는 말을 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홀에는 나이가 지긋한 실버세대로 구성된 궁정 밴드에 맞추어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고객들로부터 신청곡도 받았다. 이 맥주 집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싶어 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무대로 걸어 나갔다. 


“헬로 미스터, 나는 코리아에서 온 여행자인데 아리랑을 연주해 줄 수 있겠소?”
“업 코스! 슈어.”


놀 때는 내숭은 그만! 아리랑이 연주되자 나는 큰 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거대한 맥주홀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나는 아리랑을 끝까지 부르며 어깨춤을 추었다.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며 맥주잔을 높이 쳐들었다. 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맥주 거품처럼 즐거워 보였다. 생맥주 한잔 덕분에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살아 있는 것은 참으로 경이롭게 행복한 일이다. 언젠가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어느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호프부로이하우스 밴드


“살아서 행복한 사람이 죽어서도 행복하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도 행복하다. 오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내일도 불행하다. 항상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맥주 한 잔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말 살아있음에 항상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 집에서 기분 좋게 지내다가 밤늦게 지하철을 탔다. 밤 11시가 넘어 미리 예약을 해 두었던 호스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는 26세 이상의 손님은 규정상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숙소 때문에 골탕을 먹은 경험이 있어 인스브루크, 뮌헨, 그리고 리스본의 호스텔까지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예약을 했었다. 그러나 깨알 같은 컨디션 룰을 자세히 읽지 않아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호스텔은 나이 제한 규정이 없는데 하필이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독일 호스텔에서 걸리다니 골치 아프게 생겼다. 방은 여유가 있다는 데, 통사정을 해도 통하지가 않았다. 밤은 깊어만 가고, 피곤에 지친 아내는 그만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아내의 눈물을 보고도 호스텔 직원은 규정상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되는 것이 옳다. 적당주의가 만연한 우리나라 현실과는 엄청난 차이다. 우리나라 경우라면 방을 비워두고 어찌 방이 없다고 하겠는가?  


행복과 불행은 이렇게 한 순간에 오고 간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은 행복했고, 길거리로 쫓겨난 나그네 신세는 서글프다. 이 오밤중에 어디로 간담? 호스텔 종업원의 말로는 뮌헨 외곽지역이라 근처엔 마땅한 숙소가 없다고 했다. 수첩을 꺼내어 보니 뮌헨의 민박집 ‘West end57'이라고 메모를 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화를 하니 마침 빈방이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려고 밖으로 나오니 마침 지하철 U-Bahn 막차가 있었다. U-Bahn을 타고 19번 트램으로 갈아 탄 뒤 어떤 독일 아가씨의 도움으로 겨우 민박집을 찾아갔다. 아침밥도 안 주는데 하루 저녁에 50유로를 받았다. 피곤해 지친 우리는 곧 잠에 곯아떨어졌다. 


밤새 U-Bahn, S-Bhan을 타고 뮌헨 시내를 헤매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가 맥주를 배가 터지도록 마셔야 한다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도깨비 때문에 벌떡 일어났다. 어이쿠! 정신 차리자! 맥주 한잔 하러 뮌헨까지 왔다가 사람 생사람 잡겠다. 아직 우리들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지 않은가?


★살아서 행복한 사람이 죽어서도 행복하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도 행복하다. 오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내일도 불행하다. 항상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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