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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11. 2019

40.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

마드리드-리스본


유럽을 하나로 묶는 힘


유럽의 끝 이베리아 반도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앉아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는 유럽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작 지구의 6~7%에 불과한 넓이의 유럽에는 7억이 넘는 인구가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고 있다. 작은 대륙이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열강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화 수준을 자랑하면서도 행복지수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빈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족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뮌헨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유럽은 놀랍게도 수차례의 종교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6 대륙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불러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의 근대사를 들여다보면 100년 가까이 지속된 내전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처참하게 멍들고 나라는 쪼개졌다. 그들은 또 뭐가 닥쳐오려나 하는 두려움에 항상 떨어야 했고, 위대한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쟌 모리스는 ‘50년간의 유럽여행’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럽은 전쟁의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데 10년, 공산주의 충격을 버티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데 10년,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10년,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유럽으로 나아가는 데 또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그녀는 50년간의 유럽 여정에서 '공존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빌어먹을 열강들'은 아직도 제멋대로 굴지만, 옛 귀족들의 몰락을 보여 주듯이 "검으로써 얻은 지위, 검으로써 잃을 것"임을 교훈 삼아, 야만과 증오의 힘, 폭력과 지배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 국가, 민족의 틀을 가로지르는 하나 된 연방체의 힘으로 유럽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청사진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작가 생활을 하다가 나치에게 공산주의자로 몰려 1942년 미국으로 망명을 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토마스 만은 그때의 암담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를 했다.     


“이제 바람이 잠잠해지면, 유럽은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변모할 것이다. 누구도 귀향이란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최근 유럽은 하나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유럽을 하나로 묶는 힘'은 무엇일까? 일찍이 8세기 샤를마뉴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나폴레옹을 거쳐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완력으로 하나의 유럽으로 통일하고자 하였으나, 억압에 의한 강제 통일은 오래되지 않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오늘날 유럽을 하나로 엮고 있는 것은 완력이 아니라 철도, 도로, 공항과 같은 교통수단과 예술, 스포츠, 언어, 그리고 최근 들어 유로 통화의 단일화 등 접근하기 쉬운 문화와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또한 팍스 아메리카나, 중국, 러시아 등의 세력의 위기감에서 돌파하고 견제하기 위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하나로 단결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교통수단은 국가 간에 어려운 절차 없이 통과된다. 1985년 탄생한 솅겐조약은 현재 유럽 26개국이 가입하여 회원국 간의 국경을 철폐하고 출입국 수속을 비자 없이 자유롭게 하고 있다. 회원국 이외의 국민도 처음에 입국한 국가에서만 비자 심사를 받고, 일단 역내에 들어서면 6개월 이내 최대 90일까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비행기조차도 유레일과 개념이 비슷한 유로 에어라인이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동남아시아는 언제 하나의 힘으로 묶일까? 한국, 중국, 북한, 일본, 몽골, 인도차이나 반도, 멀리 네팔, 인도에 이르기까지 철도나 도로를 통해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 그래도 나는 꿈을 꾸어 본다. 일본에서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지나, 중국, 몽골, 시베리아, 유럽까지 자유롭게 왕래를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것을 … 우리가 스스로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극동아시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될 때에 비로써 우리는 유럽인들과 경쟁의 반열에 설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


오후 3시 20분. 비행기는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가볍게 착륙을 했다. 허지만 오늘 우리들의 최종 종착지는 유럽의 끝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우리는 공항에서 차마르틴 역으로 가는 메트로를 탔다. 당초에는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여 뮌헨에서 리스본까지 가려고 계획을 했으나,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이 한 대륙에서 네 번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시간도 절약할 겸 뮌헨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기로 했다.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 도착을 하여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밤 10시 30분에 있었다. 출발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기차표를 사들고 큰 배낭을 라커에 맡긴 후 밖으로 나가 거리를 산책을 나섰다. 플라자 디 카스틸라 광장까지 무작정 걸어갔다. 광장에는 쌍둥이 키오타워스(KIO Towers)가 넘어질 듯 우람하게 서 있었다. 114미터에 이르는 27층의 건물은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지게 지어져 있다.     


“저 빌딩은 곧 넘어질 것만 같은데요.”

“그러게, 현대판 피사의 사탑을 보는 것 같군.”


마드리드 키오타워스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두 개의 건물 모습이 매우 독특했다. 이 현대적인 건물은 마드리드가 얼마나 다이내믹한 곳인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 건물의 공식 명칭은 '푸에르토 데 유로파(Puerta de Europa)'로 '유럽의 관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드리드 비즈니스로 거리 들어가는 트윈 타워다.


우리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만났다. 소나기를 피해 맥도널드 가게로 들어갔다. 한 떼의 어린이들이 비를 피해 맥도널드 가게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다. 웃고 떠들고 재롱을 피우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비가 개었다.


비가 개어 차마르틴 역으로 돌아온 우리는 밤 10시 34분, 리스본행 332호 열차에 올랐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는 만원이었다. 기차에 오르고 보니 아내와 좌석이 내 좌석과 떨어져 엇갈리게 배정되어 있었다. 아내는 그것도 확인을 하지 않고 표를 샀느냐고 투정을 부렸다. 유럽 기차여행 중 어디서나 당연히 같은 자리에 나란히 좌석을 주었는데,  스페인에 들어서면서부터 다소 제멋대로다.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 


나와 함께 앉은 스페인 여자 승객에게 좌석을 좀 바꾸자고 예의를 갖추어 사정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게 “노오”이었다.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문화가 다르니까. 차장에게 통사정을 하여 몇 정거장을 지난 뒤 겨우 같은 자석에 앉을 수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차장이 코를 킁킁 거리며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래도 잊지 않고 기억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기차는 느리고 불편했다.‘리스본 특급’인 줄 알고 탔더니 이건 리스본행 거북이었다. 알랭 들롱과 까뜨린느 드뇌브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리스본 특급’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떠올랐다. 리스본 특급열차에서 펼쳐지는 교묘한 범죄와 알랭 들롱과 드뇌브와의 비밀의 사랑이 담긴 영화. 그러나 지금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는 영화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기차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 갑자기 비가 억수로 내렸다.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기차는 마치 물속을 달리는 것 같았다. 승객들은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 있는 기차에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오늘로 한국을 떠나온 지 40일째다. 내가 오직 사랑하는 단 한삶의 여인, 아내는 난치병으로 많이 아프다. 그런데도 이렇게 긴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다니 놀랍다. 


여행은 기적은 낳는다. 병상에서 생사의 기로에 허우적거리던 아내가 이렇게 잘 버티어 주다니 놀랍기만 하다. 아내는 내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여행이 어떤 알 수 없는 치유의 힘을 발휘했을까? 어떻든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떠나온 것은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창에 빗줄기가 거세게 부딪치며 흘러내렸다. 빗줄기와 곤히 잠든 아내를 바라보며 문득 '나' 자신에 대한 화두를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누구를 위한 여행인가?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그냥 지금 이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자. 


아침 7시. 먼동이 빗줄기를 헤집고 전깃줄 사이로 희미하게 밝아왔다. 칠흑 같은 빗속의 어두움도 여명의 밝음에는 견디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슬금슬금 물러가는 어두움은 빗줄기에 엉겨 붙어 아직은 여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올리브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파마를 한 여자처럼 실루엣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올리브 형 향기가 짙게 풍겨오는 풍경은 북유럽이나 동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도 사람도 나무도 가볍고 자유롭게 보였다. 드디어 날이 훤히 밝았다. 갑자기 키 작은 포도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아, 어둠이 걷히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기차도 갑자기 속력을 냈다. 리스본 특급 본떼를 보여주려나?


포르투갈 리스본 산타 아나폴리니아 역

  

기차는 밤새 달려 다음 날 아침 8시 15분에 리스본 항구의 산타 아나폴리니아 역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리스본 국제역인가? 대한민국 목포 역인가? 국제열차가 도착한 역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어는 시골의 간이역 같은 한적한 규모다. 알파마 지역 동쪽 끝의 테주 강가에 자리 잡은 리스본 국제역은 유럽의 끝처럼 한가롭다. 한가로운 역을 나와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누구를 위한 여행인가?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그냥 지금 이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자.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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