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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13. 2019

41. 리스본! 파두와 물결무늬에 젖어

포르투갈-리스본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아, 무역풍이 불어온다! 드디어 우리는 유럽의 끝,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했다. 대서양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남한 땅과 같은 크기에 인구는 1천만 명 정도. 남북으로 길게 바다에 접해 있는 포르투갈은 일찍이 바다를 향해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좁은 땅에 바다는 절벽이나 다름없었지만, 또한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는 일찍이 바다로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포르투갈은 항해왕 엔히크(Henrique de Avis, 1394~1460) 왕자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이후, 1488년 바를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z)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도달했고, 1499년에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지나 인도 항로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대항해시대를 구축한 포르투갈은 해외에서 유입된 보를 기반으로 건축, 미술, 문학 분야에도 눈부시게 발전을 하는 게기를 마련하였다. 대륙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리스본은 15세기 대항해 시대에 이르러 식민지에서 흘러든 향신료와 귀금속 등으로 최대 번영기를 맞이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리스본의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 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오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리의 문양이다. 검은 물결무늬와 검은 닻이 보도블록에 거리 곳곳에 파도처럼 생긴 물결무늬와 닻처럼 생긴 검은 문양이 퍼즐처럼 새겨져 있다. 예부터 바다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포르투갈 인들의 정신이 그려진 문양이다. 



아폴로니아 역에서 숙소인 호스텔로 가려면 90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버스는 오질 않았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빵모자를 뒤집어쓴 남미 스타일의 가냘픈 아가씨가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배낭을 걸머지고 버스정류소에 서 있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그녀도 목적지가 우리와 같은 호스텔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소개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알리시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멕시칸이었다. 우리는 기다려도 오지 않은 90번 버스를 포기하고 알리시아와 함께 46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오르니 흐느끼는 여자 가수의 노래가 구슬픈 멜로디와 함께 흘러나왔다. '포르투갈의 목소리' 파두(Fado)란 멜로디가 빛 물처럼 슬프게 흘러내렸다. 귀를 기울이니 평소 즐겨 들었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검은 돛배(Barco Negro)'란 노래다. 


아말리오 로드리게스는 파두를 전 세계에 전파시킨 파두의 여왕이다. 1999년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르투갈은 그녀를 위해 3일간의 국장을 치를 정도로 전 국민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빈민촌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 행상과 재봉사를 전전하다가 밤무대 직업 가수로 데뷔하여 1년 만에 일약 파두의 스타가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포르투갈의 목소리가 된 이유는 노래 속에 포르투갈 서민층들의 영혼의 절규를 담았기 때문이다. 끝없는 바다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노래, 물결치는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사라져 가는듯한 서글픈 음악, 파두! 뱃사람들의 노래. 슬픔, 고독, 이별, 상실, 그리고 노스탤지어의 그리움을 노래하는 파두는 라틴어의 '운명(Fatum)'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노래로 인간의 숙명을 노래하는 포르투갈의 민중음악이다.


한 때 배를 타고 세계 정복에 나섰던 포르투갈은 이제 거의 빈손으로 유라시아의 대륙 서남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샘이다. 그러나 거기, 리스본 항구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파두의 음률에 젖게 된다. 검은 파도처럼 흐느끼는 선율, 파두를 모르고서는 포르투갈의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버스는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 대서양과 만나는 테주 강변을 지나갔다. 파두의 선율이 더욱 슬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검은 돛배'는 고기잡이를 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남편을 기다리며 수평선 너머로 흘러 보내는 아내의 눈물을 담은 노래라고 한다. 검은 돛을 단 배는 남편의 죽음을 의미한다. 파두 선율은 우리네 한(恨)을 담은 '아리랑' 정서와 비슷하다. 


파두를 듣고 있노라니 비 오는 날 기차를 타고 목포역에 도착하여 들었던 우리 가요 '목포의 눈물'이 갑자기 생각났다. 목포의 눈물은 5천만 한민족의 한을 담은 노래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고,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슬픔과 한이 맺힌 노랫가락. 파두가 그렇다. 파두와 목포의 눈물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마는 둘 다 민중의 슬픔을 담은 공통점이 있다. 버스는 파두의 탄생지 알파마 지구를 돌아갔다. 알파마 지구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덕배기가 많다. 그 언덕배기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알파마 지구는 마치 목포항의 유달산 기슭의 언덕배기와 흡사했다. 노래와 지형, 그리고 항구 도시 특유의 느낌이 서로 닮아 있었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로시우(Rossio) 광장에서 내렸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부슬부슬 내렸다. 로마풍의 분수 앞에 고풍스러운 국립극장 건물이 있고, 거리의 바닥에는 검은 파도 무늬가 물결치듯 그려져 있었다. 리스본의 중심가에는 이렇듯 검은 파도 물결무늬가 마치 파두의 멜로디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파도무늬 위를 서성거리다 45번 버스를 타고 피코아스 거리에서 내려 호스텔 리스본(Hostel Lisbon)에 여장을 풀었다.


로시우 광장. 비 내리는 날 물결무늬가 특이하다.


호스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거리 산책에 나섰다. 에두아르두 7세 공원 앞에는 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된 리스본을 다시 부활시킨 퐁발 후작의 동상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이곳에서 로시우 광장까지 곧게 뻗은 거리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연상케 한다. 낙엽이 뒹구는 거리에는 배의 돛처럼 생긴 검은 문양이 줄줄이 새겨져 있다. 검은 물결, 검은 돛, 슬픔, 그리고 파두… 리스본의 거리는 파두로 물결치고 있었다.


로시우 광장까지 걸어간 우리는 대지진에서 재건축된 바이샤 지구의 크고 작은 가게 앞을 걸어 다녔다. 흰색과 회색의 돌들에도 역시 물결무늬가 파도를 이루고 있다. ‘낮은 땅’이란 뜻을 가진 바이샤 거리는 레스토랑, 카페, 바, 상점들이 빼꼭하게 들어서 있다. 


퐁발 후작 동상


바이샤 거리에는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Santa Justa Lift )가 우뚝 서 있다. 덜커덩 거리는 구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나선형 계단을 밟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니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대의 카페에 앉아 차를 한잔 시켜놓고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둡고 슬픈 파두가 전망대의 카페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히려 슬픈 노래가 위안을 주는 그런 날씨였다.


건너편엔 ‘상 조르제 성’이 우람하게 서 있었다. 이 성은 로마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성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서민의 애환을 담은 알파마 지구 슬럼가로 이어진다. 알파마의 매력은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이다. 언덕배기에 늘어선 공동주택, 어지러이 널려진 빨래와 화분, 빛바랜 베란다… 붉은 기와로 올린 지붕 아래에는 하얀 벽으로 된 3층 내외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언덕을 올라갔다. 바이샤 거리에서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바이루알뚜 거리로 이어진다. 리스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 복잡하게 얽힌 길 사이로 낡은 트램들이 정겹게 오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오래된 카페들과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거리에 어둠이 내리자 우리는 어느 낡은 파두 클럽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포르투 와인(포르투갈 와인)을 시켰다. 다른 와인보다 달콤한 맛을 내는 포르트 와인은 알코올 함유량이 높은지 금세 취기가 돌았다. 사람들 모두가 포르투 와인을 마시며 검은 가운을 입고 파두를 부르는 삼류 파디스타의 흐느끼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와인 한잔에 밀려드는 파두의 나른한 선율이 온몸을 휘어 감았다.   

       

검은 돛배. 죽어서 검은 돛배에 영혼을 싣고 돌아오는 당신… 포르트 와인 한잔을 마시며 파두의 선율에 흠뻑 젖은 보는 밤. 돌아올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파두의 선율에 묻힌 밤, 리스본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파두는 슬프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때로는 슬픈 멜로디가 마음을 치유하고 차분하게 해주기도 한다. 오늘 밤이 그랬다. 우리는 리스본의 알파마, 바이샤, 바이루 알뚜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어슬렁거리다 숙소로 돌아왔다. 


★때로는 슬픈 멜로디가 마음을 치유하고 차분하게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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