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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17. 2019


42. '발견의 탑'에서 맞이한 결혼기념일

포르투갈 - 리스본-발견의 탑

   

"여보, 오늘이 우리들의 결혼 30주년 기념일이네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글세 말이요.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흘렀다니, 정말 실감이 나지 않군요. 당신 빨리 미장원에 가야지? 웨딩드레스를 입으려면. 하하하."

"호호호, 그럼 당신은 이발소에 가야겠군요."

"나는 이발소 대신 세탁소에 다녀와야겠어요. 밀린 옷을 세탁하고 필요 없는 겨울 옷을 한국으로 부쳐서 짐을 가볍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것 참 멋진 생각이네요. 저는 미장원에 가는 대신 호스텔에서 머리단장을 할 테니 빨리 다녀오세요."


나는 배낭에서 겨울 옷을 꺼내어 챙겨 들고 호스텔 근처에 있는 세탁소로 갔다. 8유로를 주고 세탁물을 맡겼다. 모레 우리는 남미 페루 리마로 날아갈 예정이다. 남미로 가기 전에 배낭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었다. 세탁물은 드라이까지 해서 1시간 후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리스본 세탁소. 남미로 가기 전에 겨울옷을 세탁하여 한국으로 부쳤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아내가 정말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전 오늘 (11월 11일), 우리는 작은 암자에서 양가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들의 결혼식 예물은 각자 손에 든 국화꽃 일곱 송이이었다. 그날 마침 첫눈이 내려 마음이 포근했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허니문이 벌써 30년이 흘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아내와 단 둘이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 이곳 리스본에서 결혼 30주년을 맞이하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여보, 오늘은 내가 한 턱 쏠 테니 멋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어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미리 생각을 해 놓으세요."

"호호, 좋아요. 오늘은 어디로 가지요?"

"우선 발견의 탑으로!"


꽃단장(?)을 하고 호스텔을 나선 우리는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 우체국으로 갔다. 우편료는 생각보다 비쌌다. 나는 필요한 사람에게 옷을 주어버리거나 버리자고 했지만 아내는 우리가 입던 옷을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60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소포로 옷을 부쳤다. 우리는 추억의 28번 전차를 타고 벨렝 지구로 갔다.


리스본은 바다를 향한 희망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실은 낡은 전차(트램)는 항해 왕 엔히크 왕자를 기리는 ‘발견의 탑’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래된 낡은 전차를 타고 구시가지를 지나니 중세시대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트램에서 내리니 범선 모양의 발견의 탑(Padrao dos Descobrimentos, 일명 '발견기념비'라고도 함 )이 바다를 향하여 도도하게 서 있었다. 이 탑은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엔히크 왕자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1960년에 세운 것이다. 이곳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항해를 떠났다는 바로 그 자리다. 


리스본 발견의 탑에서 결혼 30주년을 맞이했다!


범선 모양의 뱃머리 맨 앞에는 항해 왕 엔히크가 두 손에 리스본의 희망을 실은 범선을 떠받쳐 들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바스코 다 가마, 서사시인 카몽이스, 그리고 항해의 일등 공신들인 기사, 천문학자, 선원, 지리학자, 선교사들이 차례로 서 있었다. 탑 아래 광장에는 험한 대양을 항해하며 발견했던 지역별로 연도가 새겨진 대형 지도가 화려했던 포르투갈의 과거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었다.


바스코 다 가마의 행로는 유럽이 중세시대를 마감하고 근대로 진입한 시발점이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를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1497년 6월 리스본(현 발견의 탑)을 출항한 바스코 다 가마는 그해 11월 희망봉을 돌아 이듬해 인도 서해안 캘리컷(지금의 코지코드-Kozhikkode)에 도착했다. 그리고 1499년 엄청난 양의 향신료와 후추 등을 싣고 리스본으로 돌아와 왕실로부터 귀족의 지위까지 부여받으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502년 15척의 함대를 인솔하고 다시 인도 캘리컷으로 간 바스코 다 가마는 무슬림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파괴하며 무력으로 현지인들을 제압했다. 때문에 바스코 다 가마는 포르투갈에서는 항해의 '영웅'으로 떠 받들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원한이 깊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상륙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인 1998년, 인도와 포르투갈에서는 각각의 기념행사가 있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바스코 다 가마를 영웅으로 떠 받들고 대대적인 축하행사가 벌어졌으나, 인도에서는 바스코 다 가마의 인형을 만들어 불태우고 검인 깃발을 올리며 항의 행진을 벌렸다. 


남인도 코친에 갔을 때 성 프란시스 교회에서 바스코 다 가마가 묻혔던 무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총 3번에 걸쳐 인도로 갔으나 과로가 겹쳐 코친에서 죽은 후 12년간 성 프란시스 교회에 묻혀 있다가 유골을 이곳 벨렘의 제로니모스 수도원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는 바스코 다 가마의 다리가 보였다. 17.2km에 달하는 바스코 다 가마의 다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장관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 다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발견의 탑에 서서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바라보았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엔히크와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일주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수도원이다.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아내와 나는 발견의 탑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남미로 날아가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세계일주를 무사히 완성을 할 것을 기원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이곳에 바스코 다 가마가 묻혀있다.


우리는 발견의 탑에서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우리는 아픈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를 무사히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드레스 자락을 늘어뜨린 것처럼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벨렝 탑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먼 옛 날 꿈을 싣고 인도와 아메리카로 떠나던 배들의 관문이었던 벨렝 탑은 푸른 파도에 부서지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는 여행이다. 우리는 살면서 좋든 싫든 필연적으로 위험과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대항해시대에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죽음을 무릅쓴 위험을 겪으며 항해를 했듯 우리들의 여행도 앞으로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일생일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위기는 기회로 연결된다!


발견의 탑에서 트램을 타고 바이샤 지역으로 돌아왔다. 결혼기념일 날 만큼은 입에 맞는 음식을 먹어보자고 했더니 아내가 중국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트램 정류장 앞에 'Grande Mundo'라는 중국집 간판이 보였다. 오랜만에 입에 녹는 음식을 시켜 먹는데 난데없이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라는 노래가 중국어로 나오질 않는가? 


“어?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네요?” 
“하하, 정말이네!” 

유럽의 땅 끝 중국집에서 주현미의 노래가 나오다니 놀라웠다. 마치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해 주듯 ‘신사동 그 사람’이 중국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현미의 노래를 들으며 포도주 한잔에 여독을 푼 우리는 로시우 거리로 나와 부적처럼 생긴 ‘행운의 닭’이란 작은 기념품을 샀다. 이 행운의 닭이 우리를 남미로 무사히 인도해 주겠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일생일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위기는 기회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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