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Mar 17. 2019

43. 유럽의 땅 끝에서

포르투갈-신트라-호카 곶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바다가 시작된다."     


유럽의 땅 끝 호카 곶(Cape Roca) 돌탑에 새겨진 포르투갈 국민시인 까몽이스의 시다.  우리는 호카 곶으로 가기 위해 신트라행 기차를 탔다. 리스본 로시우 발 신트라행 기차는 미로 같은 리스본 거리를 빠져나갔다. 곧 한가로운 교외 풍경이 펼쳐졌다. 푸른 하늘로 이어지는 넓은 들판은 말 그대로 전원 풍경이었다.  

    

섹스 폰과 아코디언을 든 두 악사가 우리가 탄 열차 칸으로 들어왔다. 흐느끼듯 불어대는 섹스 폰과 가슴을 파고드는 아코디언의 음률이 열차 안에 흘러내렸다. 물결치는 파두 음악이었다! 벌판을 달리는 열차에서 때 아닌 파두 음률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들은 이어서 돌아오라 소렌토로, 엘 콘도 파사를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악사가 벌려놓은 모자에 동전이 쌓였다. 달리는 기차의 창가에 기대앉아 음악을 감상하던 아내도 동전을 털어서 모자에 집어넣었다.   

   

열차 안의 작은 음악회를 듣다 보니 기차는 어느새 신트라 역에 도착했다. 리스본에서 28km 떨어진 신트라는 일찍이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영광의 에덴동산’이라고 노래했던 곳이다. 여기서부터 기차는 더 이상 서쪽으로 가지 않는다. 신트라는 유럽 대륙의 종착역이다. 간이역처럼 생긴 기차에서 내렸다. 신트라의 풍경은 바이런의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전원풍의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카 곶 보다는 이곳 신트라를 보기 위해 리스본을 빠져나온다. 화려하고 고운 옷을 차려입은 아름다운 숲 속의 공주 같은 곳, 정말이지 신트라는 한 편의 동화 속 그림 같은 곳이다. 리스본에 가면 신트라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신트라 왕궁

     

파란 물감이 금방 떨어질 듯 하늘은 푸른 휘장을 두르고 있었다. 역에서 내려 왕궁을 향해 걸어가는데 길가에 서 있는 다양한 조각들이 아양을 떨며 반겨주었다. 아내와 나는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조각 속에 고개를 내밀고 사진을 찍으며 왕궁으로 걸어갔다. 금방이라도 손에 묻어 날 것 같은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쨍하게 눈이 부시도록 드리워진 파란 하늘이 그림 같은 왕궁의 건물 채도를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아름답다! 유라시아의 땅 끝까지 완행열차를 타고 온 것이 전혀 후회스럽지가 않았다.  

        


포르투갈 왕실은 신트라 왕궁을 500년 동안이나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다! 하얀 콘을 뒤집어쓴 듯 원뿔형의 굴뚝을 달고 있는 왕궁은 그대로 하나의 ‘마법의 성’처럼 보였다. 왕들의 여름 별장은 포르투갈 아줄레주 인테리어의 금자탑이다.      


'아줄레주(Azulejo)'란 말은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되었다. 마누엘 1세는 그라나다 아람브라 궁전을 방문한 후 이슬람에서 전해진 타일 장식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궁전을 아줄레주로 장식했는데, 이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전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누엘 1세의 지시로 만들어진 포르투갈 최초의 아줄레주가 신트라 왕궁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신트라 왕궁 아줄레주

 

왕실의 실내에 들어서자 독특한 장식과 화려한 그림에 압도가 되고 말았다. 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그려 넣은 태피스트리, 가지가지 그림으로 짜 맞춰진 아줄레주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그림 타일로 뒤덮인 식당,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된 예배당,  백조로 천장을 장식한 백조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국실, 높다란 천장을 가진 부엌… 모든 것이 너무나 독특했다.   

   

마법의 성 같은 왕궁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산책로를 따라 무어인의 성터로 올라갔다. 무어인은 동화책이나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서나 들어왔던 신비한 단어다. 오셀로와 같은 아프리카 무어인들이 이곳까지 침투하여 지배를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11월이지만 유럽의 남단에 위치한 신트라의 날씨는 작열하는 태양이 재킷을 벗기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숲 속의 요정 같은 신기한 길을 걸어갔다.      


8세기에 무어인들이 쌓아 올렸던 성터는 두 개의 원추형 굴뚝이 하늘로 솟은 왕궁과 어울려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옛 성터에 올라 신트라 시내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대서양은 하늘과 바다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푸르렀다.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습니까?”

“오케이.”     


성터의 정상에서 만난 두 청춘남녀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름다운 젊은 한 쌍의 커플이었다. 남아공에서 왔다는 여행자 커플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내가 닭살 같은 포즈를 취하자 그는 원더풀을 연발하며 카메라의 셔다를 눌렀다.     


“정말 아름다운 날씨군요!”

“네! 저희들 사진도 한 장 찍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남아공에서 온 웨인 커플


웨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카메라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도난을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없다는 것. 그는 백인이지만 무어인 오셀로처럼 용감하게 보였다. 장발에 턱을 두른 구레나룻, 건장한 체구가 장군의 체격이었다. 그녀의 애인은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처럼 아름다웠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 늘씬한 몸매,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보라색 짧은 셔츠 사이로 내민 배꼽이 섹시한 그녀의 육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사진을 찍으니 그대로 한 장의 엽서가 되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고풍스러운 무어인 성터와 그들의 포즈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제발 오셀로의 비극처럼 끝나지 말고 영원히 사랑하는 한 쌍의 원앙이 되어다오. 웨인에게 이메일 주소를 받고 영화배우 같은 아름다운 사진을 꼭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둘 다 입이 헤하고 벌어졌다.   

  

웨인과 헤어져 우리는 요술의 성 같은 무어인 성터를 무작정 오르내렸다. 이렇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마냥 걷는 여행이 좋았다. 계획이 없는 여행이 가장 좋은 여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계획이 없는 여행은 기대도 없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늘처럼 멋진 풍경을 만나면 그야말로 그 여행은 최고의 백미를 느끼게 한다. 신트라는 이렇다 할 여행안내서도 없이 소문으로만 듣고 왔기 때문에 여행의 흥미가 더해지고 있었다.    


 

마법의 성 같은 신트라 무어인 성


무어인 성터를 오르내리다가 발견한 '페나 궁전(Palacio da Pena)'은 오늘 여행의 백미를 한껏 고조시켜주고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동화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19세기 페르디난도 왕자가 낭만주의적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건축물이다. 무어인 성터의 봉우리에 올라 부서진 수도원 터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왕자는 그 자리에 왕실의 ‘여름 별궁’인 페나 궁전을 건축했다. 독일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못지않게 아름다운 성이다.     


그런데 이 성을 세운 페르디난도 왕자는 공교롭게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축한 루트비히 2세와 사촌지간이라고 한다. 그 둘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성을 짓는가를 경쟁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페나 성으로 다가가니 울뚝불뚝한 정문의 벽과 곡선이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이루며 방문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성은 마치 파란 하늘에서 녹아내리듯 서 있었다.   

   

마귀처럼 산발한 머리, 인어 모양의 비늘을 단 다리에 뱀의 형상을 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인간 부조는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지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한 건축 스타일과 장식은 상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놀라운 모습이다. 오밀조밀한 초소와 전망대, 기이하게 생긴 테라스, 온 통 타일 그림으로 장식된 하트 모양의 문들은 어떤 질서와 조화의 균형을 거부한 채 자기만의 특별한 개성을 연출해 내고 있다.     


신트라 페나 궁

 

왕정이 폐지되고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비 아멜리아가 사용했던 ‘아멜리아의 방’은 1910년에 왕비가 떠났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귀족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가구, 아름다운 그릇, 72개의 촛불을 밝혔던 샹들리에가 달린 무도회장은 화려함의 극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숲 속으로 길게 뻗어 나온 테라스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는 풍경이다. 대서양의 푸른 바다에서 해조음을 가득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스쳐 지나갔다.      


멀리 호카 곶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두의 슬픈 곡조를 싣고 왕궁의 테라스를 맴돌고 있었다. 왕과 왕비, 그리고 귀족들이 기름진 음식과 호사스러운 복장으로 72개의 촛불을 밝힌 샹들리에 불빛 아래에서 춤을 출 때, 늙은 노파는 대륙의 끝 백사장에 앉아 영영 돌아오지 못할 어부 남편을 기다리며 슬픈 파두의 가락을 읊조렸으리라. 이렇게 지구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쾌락과 슬픔이 공존한다. 이제, 파두의 슬픈 가락을 부르며 남편을 기다리는 늙은 파디스타를 만나러 가야지. 유라시아의 끝 ‘호카 곶’ 해변의 절벽에 매달려 있는 슬픈 십자가를 보러 가야지.    

      

호카 곶에 도착하자 십자가를 떠받치고 있는 돌탑에 포르투갈의 서사시인 까몽이스의 대표작 ‘우스 루지아다스(포르투갈 인을 지칭함)’에 나오는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이란 시가 한 줄 새겨져 있었다. 시인의 노래처럼 육지가 끝난 절벽에는 대양의 파도가 침식된 바위틈으로 난 악마의 숨구멍을 핥으며 포효하고 있었다.      


유럽의 끝 호카 곶


까몽이스(Luis vas de Camoes)는 포르투갈의 해양사 발달과 함께 국민시인으로 추모를 받는 대표시인이다. 그의 동상은 리스본 도처에서 볼 수 있으며 그가 죽은 날(1580. 6. 10)을 포르투갈 국민의 날로 지정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민족시인 윤동주나 만해 한용운 이상으로 포르투갈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의 죽음은 비참하다. 그는 여러 식민지를 전전하다가 가난과 기아 시달리며 죽었다.      


육지가 끝나는 곳, 웅대한 자연의 파노라마 앞에는 신대륙을 향한 십자가 하나가 우뚝 서 있고, 가장 높은 곳에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위해 등대 하나가 외로이 설치되어 있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대서양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가 더 이상 갈 곳을 잃고 하얀 거품을 물고 부서지고 있었다.      


“여보, 유럽의 서쪽 땅 끝에 서 있는 소감이 어떤가요?” 

“그저 감회가 무량하기만 해요. 저 바다를 건너가면 아메리카 신대륙에 닿겠지요?” 

“그렇소. 또 다른 시작이 우릴 기다리고 있소. 땅 끝은 또 다른 땅의 시작을 의미하듯 내일이면 우린 남미대륙의 땅을 딛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될 거요.”      


유라시아의 최서단 호카 곶. 나는 호카 곶에 서서 한국의 남녘에 있는 해남의 땅 끝을 생각했다. 해남 땅 끝 마을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걸어가는 순례자의 길이 머지않아 열리지 않을까? 이번 여정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구의 최북단 노르웨이에서 지구의 최남단 파타고니아까지 이어지는 먼 길을 나는 아내와 단 둘이서 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가장 긴 순례자의 길이다. 순례자가 되어 길을 걷는 것은 많은 것을 사유케 한다.      


이곳 이베리아 반도는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성지 순례자의 길이 있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의 땅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그것이다. 그곳은 어느 날 양치기가 들판 위에 빛나는 별을 봤다는 장소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성 야고보와 성모 마리아가 복음서를 가지고 그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별들의 들판에는 오래지 않아 모든 기독교도 국가의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세워지게 되었고, 이 길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순례자'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1123년 프랑스의 사제 에임리 피코가 순례를 다녀와 다섯 권의 책으로 안내서를 펴낸 이후, 중세기의 샤를마뉴 대제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가까이는 교황 요한 23세, 그리고 연금술사의 저자 파올로 코엘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나고 있다.    

  

만약 다음에 이베리아 반도로 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걸어보고 싶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까몽이스의 말처럼 우리는 유럽의 땅 끝에 서서 다가 올 우리들의 또 다른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 호카 곶의 절벽에 서면 나름대로 인생의 시작과 끝, 그리고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 기적이야 기적!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만도…"

"정말 그래요."     


유럽의 땅 끝에서 여행의 기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땅 끝은 또 다른 땅의 시작을 의미하듯 내일이면 우린 남미대륙의 땅을 딛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42. '발견의 탑'에서 맞이한 결혼기념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