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노학자의 철학과 통찰력으로 써 내려간 책
60년이 지나서야 아내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노학자
'나는 당신 때문에 기형이 되었소.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목이 길어졌고,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 오른팔이 길어졌소.’(p.249)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지은이 이근후-이화여대 명예교수) 이란 책을 열어본 후 몇 페이지 읽다가 나는 곧바로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85세 노학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며, 경험에서 묻어난 철학적인 통찰력으로 써 내려간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부의 날'인 5월 21일 나는 아내가 하루 종일 검사와 진료를 받는 병원으로 책을 들고 갔다. 그리고 아내가 진료를 받는 동안 병원 로비에 앉아 이 책을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갔다.
저자는 중학교 3학년 때 여동생의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나 오누이처럼 지내다가 그만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던 아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부터 선을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저자는 아내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길로 우체국으로 가서 엽서 100장을 사들고 와 매일매일 구애 편지를 썼다. 그중에 하나가 이 엽서라고 한다. 청년 저자의 달콤한 말이 통했는지 그는 지금의 아내와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허지만 달콤한 말로 시작된 저자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치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가세가 기울고, 대학교 때 4.19 혁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감옥생활을 한 후 전과자란 딱지가 붙어 취직도 쉽지가 않았다. 가난한 저자는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신혼여행은 텐트 하나 짊어지고 산으로 떠났다. 그 후 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지독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허지만 외동아들로 자란 탓에 저자는 돈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다. 저자는 늘 돈을 버는 일을 벌이기는커녕 거꾸로 돈이 들어가는 일만 벌여왔다. 네팔 의료봉사와 광명보육원 봉사일,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동안 개방 병동, 사이코드라마, 미술치료 등 돈이 안 되는 일만 시도했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재원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시간이든, 지식이든, 공간이든, 돈이든 저자가 가진 재원을 최대한 제공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돈을 버는 것 하고는 무관했다.
그 덕분에 가장 고생을 한 이가 바로 저자의 아내다. 저자가 뒷일을 신경 쓰지 않는 ‘이상주의자’라면, 저자의 아내는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며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합리주의자’다. 그런 남편을 대신해서 저자의 아내는 가정의 온갖 크고 작은 돈 문제를 홀로 해결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보필해왔다.
만약 그런 아내가 없었다면 저자는 진작 파산했을 거라고 고백한다. 저자는 이렇게 부족한 남편을 왜 60년 가까이 데리고 살아준 걸까 하고 의아해한다. 그는 60년이 지나서야 그런 아내의 심정을 조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아내 덕분이라고 고백한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학문적 동지인 아내가 있어 다행이다. 아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지금의 아내가 있다. 어쩌면 60년이 지나서야 나는 연애편지를 쓰던 그때 청년의 심정으로 돌아간 듯하다. 아내가 간직한 오래된 엽서들을 들춰 보고 싶다. 내가 마지막까지 가장 잘하고 싶은 사람, 바로 아내이기 때문에.’(p254)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곱까지 병을 안고 살아가는
85세 노학자의 여유와 삶의 지혜
저자는 당뇨, 고혈압, 허리디스크, 통풍, 담석, 관상동맥협착증, 왼쪽 눈 실명 등 일곱 가지 병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다 두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03년도에 생존율이 5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관상동맥협착증 수술을 받았고, 2013년도에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머리를 크게 다쳤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아, 내 인생도 이렇게 끝을 맺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죽음이란 단어가 생생하게 지나갔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고, 심지어 ‘아쉽다. 기왕 다칠 거라면 한 달간 말미를 주시지. 그러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 놓을 텐데’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시 깨어난다면 남은 생은 그야말로 덤이라고, 본전 생각에 아쉬워하거나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허지만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지만 저자는 여전히 죽음이 낯설고 두렵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침침해져 컴퓨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건강의 상실은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심정으로 눈을 씻고 찾아보면 좋은 점들이 있다고 역설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잠시 고(故) 신영복 선생의 말을 인용한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침통한 슬픔을 위로받기 위해서는 사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노인이 된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틈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재간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숨어있는 재간을 찾아냈으면 서두르지 말고 ‘야금야금’ 실천으로 옮기라고 충고한다.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야금야금’ 하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야금야금은 여유로운 마음에서 비롯된다. 야금야금 행동한다는 것은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다. 여유롭게 과정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눈에 띈다. 새로운 발견이 늘어날수록 즐거움이 커지고, 즐거움은 꾸준함으로 이어진다.”(p240)
작은 일을 찾아서 ‘야금야금’ 실천하는 과정을 즐겨라
저자는 정년 이후에도 실제로 ‘야금야금’ 즐기는 취미생활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는 76세에 늦깎이로 고려 사이버대학에 입학하여 4년 동안 문화 공부를 했다. 일흔이 넘어 시작한 공부가 어찌나 재미가 있었던지 2011년도에 고려 사이버대학 최고령 졸업생이자 문화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저자는 시를 너무나 좋아하여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국문인협회로부터 ‘가장 문학적인 상’이란 이상한 상을 받기도 했다. 그 상은 문학인이 아니면서 가장 문학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고 한다. 이 수상을 계기로 저자는 ‘예띠 시 낭송회’를 결성하여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20년째 좋아하는 시나 자작시를 낭송하며 야금야금 즐기고 있다.
또 다른 취미로 저자는 네팔에 드나들며 오랫동안 네팔 우표를 수집했다. 그리고 팔십이 넘은 나이에 우표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면서 네팔 우표를 주제로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중 한 권이 2018년 방콕 세계 우표전시회의 우취문헌 부문에 입선을 하기도 했다.
그저 재미있게 배우고 가진 것을 나누고자 ‘야금야금’ 시작한 취미활동이 출판과 수상까지 이어지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작은 취미를 야금야금 즐기다 보니 어느새 여든다섯 살까지 살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직업을 잃는다고 해서 인생을 잃는 게 아니다. 퇴직의 시기에 인생이 덜 휘청이려면 취미의 세계도 다채롭게 구성해야 한다. 물론 젊어서부터 취미 몇 개쯤 마련하면 좋겠지만, 퇴직 즈음에도 늦지 않다. 나도 여든이 훌쩍 넘어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니 부디 취미를 포기하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배우자를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부부의 날이 무색할 만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통계청이 공개한 2018년 우리나라 전국의 이혼 건수는 10만 8,684건으로 전년대비 2.5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 혼인기간 20년 이상인 황혼이혼이 33.4퍼센트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황혼이혼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원인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성격차이, 입장 차이, 소통 부재를 들고 있다. ‘둘이 하나’가 되라고 부부의 날을 지정하고 있지만 이혼율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저자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들여다보며 배우자를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배우자에 대한 선입견은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졌기 때문에 단번에 교정을 하기는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다음 세 가지 처방을 내린다.
첫째, 우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을 것. 배우자의 말이 납득이 안 되고 근거 없는 비난처럼 들려도, 일단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토해 낸 상대방이 한결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둘째, 배우자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권한다. 좁은 시각으로 배우자를 재단하고 낙인찍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부간 수용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를 파악한 것만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표현해 봐야 갈등만 더 깊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 말투를 조금만 바꾸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젊어서부터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먼저 말을 멈추고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존댓말을 쓰는 상대에게 막말을 퍼붓기는 어려운 법이다. 존댓말은 화나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 사태를 바라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 때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주로 쓰는 말이 “싫어”, “몰라”, “안 해” 등 이유도 달지 않고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다고 고백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남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숱하게 강조했지만, 유독 아내에게만 “싫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했음을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되었다고 실토한다.
그 후 저자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즉각 적용했다.
‘아내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자. 아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 그리고 말투를 바꿔보자. 나는 아내에게 “싫어”라는 말 대신 “안 돼요, 왜냐하면”으로 바꿔 말했다. 아내가 나를 쓱 한 번 보더니 이내 잔소리를 줄였다.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해도 안 되던 일이 존중의 태도를 보이니 수월하게 해결됐다. 부부관계는 이토록 오묘하다.’(p.163)
나는 병원 로비에 앉아 이 대목을 읽으며 혼자 쿡쿡 웃었다. 정말 부부간의 관계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이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나도 저자처럼 “싫어”, “몰라”, “안 해”라는 말을 꽤나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 다르고, ‘아’ 다른 것이 말이다. 앞으론 나도 저자처럼 아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말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밖에도 책에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50년간 15만 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토대로 노학자의 통찰력으로 꿰뚫어 본 솔직하고 유쾌한 40가지의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자는 2003년부터 3대에 걸쳐 13명의 네 가족이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사)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청소년 성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아흔을 목전에 둔 노학자는 교수도 의사도 아닌 그냥 할아버지 이근후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메시지를 유언처럼 전한다.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나,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마음껏 찾아보라고. 그리고 ‘야금야금’ 사소한 기쁨을 잃지 않는 한 절대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이것이 백 살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하나는 진짜 이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