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May 27. 2019

45.경찰을 불러 택시요금을 흥정하다

페루 리마-택시요금을 두배로 달라는 리마의 택시 운전사

호르헤 챠베스 국제공항 문을 나서자 호객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리마의 치안은 지구 상에서 최악이다. 나는 그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기로 했다. 호객꾼 들은 눈만 마주치기만 해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들을 무시하고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비행기에서부터 김치가 그렇게도 먹고 싶다는 아내를 위하여 나는 한국 민박집에 전화를 걸었다. 리스본 호스텔에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국인 민박집 전화번호를 메모해 두었던 곳이다. 신호가 몇 번 울리자 처음엔 스페인 말이 나왔다. 내가 한국말을 하자 곧이어 반가운 우리말이 들려왔다.


“저희는 서울에서 온 부부 여행자입니다.”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댁에서 며칠 민박을 하고 싶은데 하루 숙박요금은 얼마이지요?”

“네, 식사 포함해서 40달러랍니다.” 

“아, 그래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수화기를 손으로 가린 채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하루 밤에 40달러라고 하는 군. 아침과 저녁 식사를 포함하여.”

“그건, 너무 비싼데요?”

“그래도,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했잖소?”

“그럼 하루 밤만 머물지요.”

“알았소.”

“미안합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어떻게 찾아가면 되지요?”

“괜찮습니다. 반드시 캡이 달린 택시를 타고 미라폴로레스로 가자고 하세요. 요금은 10달러 정도 할 겁니다. 저희 집 번지수를 말해주면 우리 집 앞에 내려줄 겁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요?”

“약 1시간 정도 걸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내는 정말로 김치가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치 임산부가 입덧을 하듯 김치가 죽도록 먹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밤에 40달러라면 배낭 여행자에게는 매우 비싼 숙박비다.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호객꾼 들은 더욱 극성을 부리며 따라붙었다. 엄청나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리마의 택시 운전사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나는 정복 차림을 한 경찰에게 택시를 잡아들라는 부탁을 했다. 경찰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정복 경찰은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다는 안내서의 설명을 따르기로 했다. 그냥 아무 택시나 타는 것보다는 경찰이 잡아준 택시를 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거리에 있는 정복경찰에게 미라플로레스라고 쓴 메모지를 보여주며 택시를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내 얼굴과 메모지를 번갈아 보더니 캡이 달린 택시 한 대를 불렀다. 그리고 택시운전사에게 스페인어로 뭐라고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10달러에 그곳까지 갈 수가 있다고 흥정을 해주었다. 민박집주인이 말한 요금과 같았다. 운전수는 내가 보여준 주소를 희미한 불빛 아래 비추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액셀을 밟았다. 한 10분쯤 달렸을까? 운전사가 어느 주유소에 갑자기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투 퍼슨, 투엔티 달러(두 사람이니 20달러 줘야 해).”

“홧? 폴리스맨 톨드미 10달러(뭐라고? 경찰이 10달러라고 했는데).”


택시운전사가 갑자기 택시요금을 다시 흥정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말한 것은 1인당 10달러이며 두 사람이니 2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순간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마침 공중전화가 주유소 벽에 보였다. 나는 택시 문을 열어놓은 채 공중전화로 가서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민박집주인은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택시 안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 그가 수작을 부리는 것을 포기하고 데려다 줄 거라고 했다. 정말 믿어도 될까? 택시로 돌아온 나는 운전수에게 지금 경찰에 신고를 하고 오는 중이라고 뻥을 쳤다. 


“아이 콜 폴리스 스테이션(나 지금 경찰서에 신고를 했어).”


그러자 녀석은 "10달러 오케이, 오케이." 하며 그냥 10달러에 가자고 했다. 경찰이란 말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모양이다. 컴컴한 밤중에 으슥한 곳. 자동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거리가 다소 무섭게 느껴졌다. 녀석은 내가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고 하자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혹시 우리를 어떤 위험한 소굴로 데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우리들을 민박 집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민박집에 도착을 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운전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있는데 민박집 부부가 자동차 소리를 듣고 대문 밖으로 나오며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어져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무사히 도착을 해서 다행입니다. 2층으로 가셔서 샤워를 하고 내려오세요. 저녁을 준비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두 분을 뵈니 마치 한국에 온 기분이군요.”


불안에서 해방된 아내는 “휴우~”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2층 방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는데 김치 냄새가 났다. 입에서 저절로 침이 흘러나왔다. 김치, 김치, 김치… 우리는 별수 없는 김치 민족이다. 그 시큼하면서도 매콤하고, 담백한 김치! 아내는 빨리 내려가서 김치를 먹자고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식탁에는 김치, 김치찌개, 상추, 된장, 고추장, 그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쌀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보자 저절로 식욕이 동했다. 아내와 나는 공기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며 눈이 뻥 뚫리도록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역시 우리는 한국인이다. 김치에 쌀밥보다 더 좋은 식사가 어디 있겠는가? 식사를 한 후 차 한 잔을 마시며 민박집주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한국말이 그립기도 했지만 한국인을 만나 김치에 쌀밥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두 분이서만 이렇게 배낭여행을 다니시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허허,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거지요?”

“허지만 이곳 리마에서는 매우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밤 택시 운전수만 해도 멀쩡하게 택시요금을 두 배나 달라고 하니 황당했어요.”

“그런 건 약과지요. 레스토랑에 가서도 배낭을 다리로 감아서 안쪽에 두시고, 줄 달린 열쇠가 있으면 의자에 채워두는 것을 잊지 마세요.”

“원 그렇게까지…. 이거 겁나서 어디 여행하겠소?”

“저도 몇 개월 전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오다가 택시강도를 만나 죽을 뻔했답니다.”

"오, 저런! 그래 어떻게 하셨지요?"

"처음에는 겁이 났는데, 꽤 큰돈이어서 만약에 빼앗기면 타격이 클 뻔했지요. 그래서 눈 질끈 감고 그냥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버텼지요."

"그들이 가만 두던가요?"

"그냥 몇 시간째 꿈쩍 않고 그렇게 앉아있었더니 그들도 질렸는지 보내 주더라고요. 허허허."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몸집이 좋은 주인아저씨는 2만 달러를 찾아 나오다가 은행 바로 앞에서 택시강도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니 페루에서는 언제나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숙박비를 지불하려고 하니 하루 밤에 40달러로 알고 왔는데, 주인아주머니는 1인당 40달러라고  말했다. 2인이면 80달러다. ‘남미에서는 계산을 두당으로 하나?’ 공항에서 정복 경찰이 10달러라고 흥정을 해준 택시요금을 갑자기 20달러를 달라고 하던 운전사 생각이 났다. 분명히 공항에서 전화를 했을 때 하룻밤에 40달러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들은 아내는 그만 입이 벌어졌다. 맛있게 먹은 김치와 김치찌개를 곧 토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거야 정말! 남미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린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하룻밤을 자는데 80달러를 지출하면 우리에겐 면 너무 큰돈이다. 아내의 놀란 표정을 본 민박집주인은 20달러를 깎아주며 60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그것도 고마웠다.


“뭔가 꼬여드는 기분이군요.”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분명히 전화할 때 두 사람에 40달러라고 말하는 소리를 저도 옆에서 들었는데….”

“그래도 먹고 싶은 김치에 쌀밥을 실컷 먹었잖소.” 

“그렇긴 하지만.”

“오늘 밤만 여기서 자고 내일 다른 데로 옮겨요. 자, 그만 잡시다.”


 먹고 싶은 김치와 김치찌개, 쌀밥도 실컷 먹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청했다.     


 ★정복 경찰을 불러 택시요금을 흥정해도 안 통하는 리마의 택시 운전사들. 리마공항에서는 긴장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44. 태양의 대륙 남미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