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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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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안정적인 수입, 그리고 스타트업

여전히 살고 있는 집은 월세였다. 투자했던 부동산의 수익금으로 요즘 대명씨가 눈독 들이고 있는 것은 실거주를 위한 아파트가 아니라, 원룸 건물이었다. 한 달 월급 정도의 든든한 임대수익을 낼 수 있는 건물.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지 한참 되었다. 대명씨 부서에서 퇴사하고 나가 스타트업을 차린 선배가 있었는데, 1~2년 만에 꽤 큰 투자를 받고 잘 나가고 있었다. 사내 밴처창업 프로그램에 나가 최종팀으로 선정되어 회사 업무와 별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대명씨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자기만의 프로그램 개발. 시켜서 하는 개발 말고, 내가 생각만 했던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현시켜 볼 수 있는 기회, 대기업의 답답한 조직문화 대신,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들과의 협업. 현실과 이상에는 언제나 그 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해 보고 싶은 스타트업이었다. 


구김 없고 적극적인 성격과 다양한 업무 경험을 높이 산 선배가 창립 멤버와 같은 수준으로 대우해 준다며 자꾸 대명씨를 설득했다. 이번에 사내 밴처창업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보고 확신을 한 모양이었다. 다만 두 아이의 아빠였고, 아내는 휴직 중이었기에 마음이 있다고 당장 대기업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스타트업에서 대우를 해 줘 봤자 대기업 과장이 받는 월급보다는 당연히 적었다. 나중에 회사가 성공해서 상장되면 싸이닝 보너스로 받은 회사 주식이 100억씩 뻥튀기될 수도 있다는 기적과 같은 아름다운 상상을 해보지만 안된다고 보는 게 이성적으로 맞았다. 대신 자기 월급만큼의 임대 수익을 만들어 놓으면 아내에게도 면이 서고, 부모님께도 당당하게 저 회사 그만둡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남주혁과 수지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스타트업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드라마를 한번 보면 푹 빠져들어서 보는 나름 감성적인 면이 있는 대명씨였다. 보통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스타트업이라는 주제가 좋아서 한 편 두 편 재미있게 보기 시작하더니, 이미 마음속에서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내가 남주혁은 아니지만, 드라마만큼 멋지게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수익률 11%. 


각 호실별 보증금과 월세가 적혀있는 매물장 맨 마지막 줄에 굵고 크게 써져 있는 빨간 글씨. 자꾸만 그 숫자가 눈에 아른거렸다. 부동산에 전화해 건물도 한번 보러 갔다. 총 20세대의 상가, 원룸, 투룸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대지는 100평 정도에 나름대로 큰 도로가에 위치해 있었다. 필로티로 지어진 건물은 주차 대수도 넉넉해 보였다. 주말 낮이나 퇴근 후에 몇 번을 더 보러 갔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없어서 그 주변에 비슷한 가격대의 건물도 여러 번 방문했고, 깜깜한 밤에 방마다 불은 다 켜지는지 확인도 했다. 


“건물 보면 아시겠지만 이건 주인이 노후자금 준비하느라고 직접 지은 건물이라 튼튼하고 자재도 좋아요. 사정이 생겨서 싸게 내놓은 거라, 임자 금방 나타날 거예요.”


“여기는 근처에 대형병원이랑 사무실도 꽤 있어서 임대 수요가 괜찮아요. 한 번도 공실난 거 못 봤어요. 전월세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요. 제가 돈이 없어서 너무 아쉽다니까요.”


평소에 귀가 얇은 편이 아닌데도, 안정된 생활비를 마련해 놓고 스타트업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는지, 이미 대명씨는 월세 수익을 내는 부동산을 사기로 마음이 홀딱 기울었다. 20억 가까이 되는 이 거래를 성사시키면 부동산 중개인은 매도자, 매수자 양쪽으로 최대 3천만 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다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월세도 받고, 스타트업 이직도 하면 회사를 두 군데 다니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며 희망적으로만 머리가 돌아갔다. 


“뭐 건물? 20억짜리 건물을 산다고?”


인아씨는 허풍같이 들리는 대명씨의 말을 여러 번 곱씹어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20억이 있어서 그 돈을 다 주고 건물을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임차인들의 전월세 보증금 빼고, 건물 담보로 잡혀 있는 은행 대출을 승계하면 아파트 판 돈 플러스, 추가 신용대출까지 더하긴 해야 하지만, 월세 수익 나는 건물을 살 수 있다고. 이해 안 돼?”


대명씨는 답답했다. 평소에는 똑 부러지는 인아씨가 이해를 못 한 건지 당황해서 그러는 건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계속하고 있자 이래저래 말을 바꿔가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알겠어. 알겠다고! 신용대출받고 아파트 판 돈 합치면 월세 나는 건물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건물을 담보로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그 말이지? 그래서 월세는 얼마나 나오는데? 신용대출하고 건물 담보대출 이자를 내고도 많이 남아?”


“남지, 많이는 아니어도 남아. 그러니까 사고 싶다는 거지. 당신도 휴직 중이고, 사실은 나도…”


“나도? 뭐?”


“나도 실은 회사 그만두고 스타트업 가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예상 못한 전개에 인아씨는 당황했다.


“스타트업? 무슨 스타트업? 어딘데? 위치는? 월급은 많이 준대? 아니, 우리 지금 엄청  빠듯한데 이직을 하려면 연봉을 더 주는 데로 가야지, 스타트업은 연봉은 적고,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거 아냐?”


질문을 쏟아냈다.


“아 전에 우리 부서 선배님이 나가서 창업한 회사야. 조그마한 회사거든. 근데 투자도 많이 받고, 개발 의뢰도 많이 받고 있어서 사람이 필요하대. 회사 나가기 전에 나를 좋게 기억하고 있어서 연락 왔더라고. 가보니까 작은 회사긴 한데, 선배 믿고 한번 해보고 싶어서. 스타트업은 약간 개발자들의 꿈이라고 해야 되나? 나도 거기서 잘 배워서 내 회사도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말이야.”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대명씨의 가치관은 결혼 후에도 여전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 10시가 다되어야 퇴근하면서도 회사 일이 재미있다고 했었다. 회사 다니면서 근무 강도와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 그리고 남들 뒷담화하는 사람들은 많이 들어봤어도, 자기 일이 재미있다는 사람은 대명 씨가 처음이었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젊을 때는 다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 피곤해도 즐겁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일을 즐기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바빠서 데이트를 자주 못해도 회사 메신저로 짧은 대화를 나누며, 자기도 덩달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고, 고맙고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대명씨였기에 인아씨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대명씨와 잘 어울린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4인가족의 가장이 갑자기 스타트업? 너무 리스크가 큰 것 아닌가?


“당신이랑 나랑 둘만 이면 뭐든지 해도 되는데, 난 휴직 중이고 우리 아이가 2명이야. 신중하게 생각해봐. 그 회사가 지금은 투자받아서 잘 나간다고 해도, 계속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있어?”


“그런 보장은 없지. 내가 가서 잘 되게 해야지.”


“당신이 가면 그 회사가 잘 된대? 대체 그런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아직 젊잖아. 뭐랄까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 주어진 일만 하는 것보다 배울 것도 많고. 일단 너무 설렌다고.”


“설렌다고 회사를 옮겨? 아저씨 정신 좀 차려봐 봐.”


“나 정신 차렸어. 그러니까 월세 받는 건물 사놓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한 그 다음에 이직한다고 하는 거지. 썩 괜찮은 생각 아니야?”


‘썩 괜찮은 생각인가?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인아씨는 자기도 모르게 반이상 설득당했다. 


“그래도 좀 천천히 생각해 봐. 급할 것 없잖아. 머리가 좀 복잡하다.”


“많이 생각하고 알아보고 이야기한 거야.”


“그래. 그렇겠지.”


일단 티 나지 않게 돌려서 대답했지만, 이정도까지 생각했으면 이직은 정해진 거였다. 마음 먹으면 대체로 해내고야마는 대명씨였기에.


그렇게 대명씨와 인아씨는 자기들이 살 집은 소유하지 못한채, 1가구 20주택의 공동 소유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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