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부동산 투자자로 산다는 것
출근하는 지하철 안,
대명씨의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발신자는 501호 세입자.
‘아침부터 또 무슨 일이지?’
- 윗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아요.
저희 집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빨리 고쳐주셔야 할 것 같아요.
‘헉! 누수? 와..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네.’
501호 세입자가 문자와 함께 보내준 동영상을 보니, 100% 누수다. 흑. 짜증이 올라왔다.
‘윗집이랑 수리업자한테 연락해서 일정 맞추고, 퇴근하면 또 가봐야 되잖아. 흑흑. 이거 한두 번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수리비도 꽤 들겠는데 에휴.’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샀던 원룸 건물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사소한 고장 즉, 전등이 나갔다거나 현관문 디지털 도어록이 안된다거나 하는 전화부터, 화장실 수리나 누수 같은 큰 일들까지 20명이나 되는 임차인이 있으니 하루 걸러 하루 전화를 받는 느낌이었다.
아니 전등도 갈 줄 몰라? 건전지만 갈아 끼면 되는 걸 왜 자꾸 전화를 하지? 하며 화를 내다가도 누수 아닌 게 어디야, 어디 동파된 게 아니어서 다행이야 하다가, 또 수리비 나갈 것을 생각하면 아우 이 돈이면 소고기를 구워 먹어도 얼마야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욱 했다가 워워 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임차인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다 보니 전화만 오면 대명씨는 무척 예민해지곤 했다.
한 번은 전세임차 계약이 끝날 시점이었는데, 다음 임차가 맞춰지지 않아서 목돈의 전세보증금을 갑자기 빼주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임차 계약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만 알았지,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 사이에 일자가 며칠이라도 비어버리면, 그 큰돈을 당장 빼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누가 임대업을 불로소득이라 했던가. 돈을 마련해 주느라 부모님께 빌리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마련해 주었더니 대명씨와 인아씨의 통장은 텅장이 되어버렸고, 빠듯하게 생활해야 하기가 일쑤였다.
‘왜 스타트업으로 이직은 해가지고! 원룸 건물은 또 왜 사 가지고 이 고생을…’
거기다가 큰 꿈을 안고 들어간 회사도 내 맘 같지 않았다. 스타트업에 이직했던 대명씨는 갖추어지지 않은 시스템, 사장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프로젝트를 엎었다 뒤집었다 하는 것이 영 맞지 않았다. 창립멤버 대우를 해주겠다던 선배는 기분이 좋거나 투자 협의가 잘 되는 날에는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공부하면 지원해 준다, 회사 복지로 아이들 교육비도 지원해 준다는 등의 허풍을 남발하더니, 알고 보니 투자금 중 상당 포션을 자신의 월급으로 책정해 매월 큰돈을 받아가면서, 프로젝트 개발비는 악착같이 아껴 쓰게 만들었다. 대명씨는 꿈꾸었던 일도, 그렇다고 이상적으로 일하는 환경도 아닌 현실에 뭐든지 내 맘 같지 않구나, 매일 고민에 빠졌다. 스트레스도 점차 심해졌다.
자신만만하게 가족들과 회사 사람들을 설득해 퇴사하고 나왔는데, 또 회사를 옮겨야겠다고 어떻게 말하지?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1년 했으면 충분히 했다. 선배한테도 할 만큼 했고, 자기도 살 길을 찾아야 했다. 하도 겪다 보니 그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 가끔은 그 선배가 일부러 회사를 그렇게 운영했다기보다, 그냥 사람이면, 나도 내 이익이 먼저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냥 그 사람이 그릇이 작은 가보다, 나도 막상 사장이 되면... 흑,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다,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토닥이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는 마음도 접었다. 역시 회사원이 제일 마음이 편한 거였다. 그렇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이다. 작은 회사는 비슷할 것 같고 시스템과 조직이 갖추어진 곳이 편했다. 다시 대기업 경력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원룸건물의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있어서 대명씨는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올려 받은 보증금과 약간의 퇴직금으로 이직을 여유롭게 준비하면서 새롭게 투자할 곳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원룸 건물은 안 할 거야, 아오 힘도 들고 이거 짜증도 나고. 관리할 일 적은 상가나 아파트 투자에 집중해야겠어. 그래도 이 건물 사 둔 덕분에 퇴사도, 이직도 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너랑 나랑은 정말 징한 애증의 관계다!’
싫다 싫다 해도 대명 씨에게는 부동산 투자가 재테크를 넘어 자신의 본업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사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연락이 오는 임차인을 상대하고, 내 기분에 관계없이 최대한 친절하게 대응해줘야 하며, 예상치 못한 수리비가 종종 들어가는 것이 문제였지만, 부동산 투자 자체는 즐거웠다. 일단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고, 눈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내 소유라는 것이 든든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 집은 자가가 아니어도 건물이 있으니 나름 꿀릴 것도 없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우리 이제 자야 되는데, 힝.”
“아빠가 미안. 일찍 왔어야 하는데 오늘도 늦었네.”
“하암 졸려~ 아빠 잘 자.”
“응 우리 산이 별이도 잘 자.”
“내일은 일찍 와서 우리랑 캐치볼 좀 해주면 좋겠다.”
“그래! 내일은 꼭 그렇게 하자.”
왜 이렇게 늘 바쁘고 정신이 없는 건지 생각해 보면, 낮에는 회사일, 퇴근 후에는 부동산으로 늘 머릿속이 꽉 차 있기 때문이었다. 가족, 아이들과 함께 이번 주말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해본 지, 아니 못해 본 지 오래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물 들어올 때다, 조금만 더 투자 잘해서 자산을 모아놓으면 앞으로 충분히 아이들과 놀 시간도, 여행 갈 시간도 많을 거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벌고 싶으니까 소중한 시간을 뒤로 미루면서도 자기변호를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누수 때문에 원룸 건물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는 대명 씨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루 종일 몸에 베인 피곤함과 찌든 기분을 샤워를 하며 말끔히 씻어 냈다. 마지막에는 냉수를 온몸에 끼얹으면서 정신도 차리고 몰려오는 잠도 내쫓는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느라 붉게 달아오른 온몸이 금세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몸에 열이 많아 시원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지금부터 부동산 투자자로 모드 변경! 해야 할 시간이기에 냉수마찰은 자발적 야근을 위한 몸과 마음의 새 단장 이기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부동산 사이트를 열었다. 맥주 한 캔을 땄다! 캬~!! 목을 타고 넘어오는 개운한 탄산을 느끼며, 지난주부터 지켜보고 있던 동네의 물건과 그 주변 매물, 시세, 혹시 근처에 경매 나온 것은 없는지 경매사이트까지 세세하게 살핀다. 가슴속이 시원해질 만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오픈카톡방, 부동산카페에도 들어간다. 1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이지만 대명씨에게는 야행성 동물처럼 눈도 초롱초롱 더 커지고, 정신도 오히려 맑아지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다. 이런 지역도 있었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는 것이 부동산 카톡방이다. 몇 번의 투자 경험을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답변도 해준 덕분에 대명씨의 닉네임을 알고 아는 체해주는 몇몇 투자자들이 있었다. ‘달밤에 체조대신 부동산’ 대명씨의 닉네임이었다.
투자자 1-달밤에 체조님 들어오셨네요!
투자자 2-오늘도 역시 야간조 출근!
대명-네, 안녕하세요. 간만에 매물 좀 보느라고요.
투자자 1-오! 어디 보세요?
대명- 서울 쪽 보고 있어요!
투자자 3-와, 드디어 서울입성인가요?
대명-살 집은 아니고, 갭투할 곳이요. 아직 서울에 집 살 만큼은 안되네요.
투자자 2-그래도 부동산의 끝은 역시 서울이죠!
투자자 1-축하합니다! 한 단계 레벨업!
대명-아직 산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노리는 중입니다, 하하
투자자 3-야간조 성실한 출석멤버신데, 달밤에 체조님 저희가 응원할게요.
투자자 1-혹시 어디 보세요?
대명-재개발 단지 시도해 보려고요!
투자자 2-대박! 한남? 노량진? 흑석?
대명-하하 그랬으면 저도 좋겠지만 그 정도는 안되고요, 강북 쪽 두루두루 살펴보는 중입니다.
성남 쪽도 같이 보고 있고요.
가끔씩 자신의 글에 완전 초보네, 어디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해 가지고 아는 체냐,라는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의 상처가 컸다. 그저 정보 공유차원에서 자기가 경험한 이야기를 썼고, 카페나 블로그에서 자신도 도움 되는 정보를 많이 얻었기에 자신과 같은 초보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남긴 글이었는데도 굳이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뭐지? 하며 스트레스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명씨는 더 이상 부린이가 아니었다. 벌써 몇 년째 여러 건의 매도와 매수를 하면서 마이너스를 만든 적은 없었다. 최근에는 주택 보유수나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세율, 취득세, 종부세, 재산세 그리고 대출금 이자와 중개 수수료까지 꼼꼼하게 공부하면서 순이익을 따져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명확히 보이는 숫자가 커질수록 대명씨의 자신감도 팍팍 올라갔고, 사소한 악플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틀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자수성가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조만간 이뤄낼 수 있을 거라는 긍정과 확신의 다짐도 잊지 않았다. ‘자금이 조금 생겼으니 이제는 재개발 매물에 도전해 봐야겠어. 투자금이 커도 이건 오를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부터 해 봐야지!’
두근두근. 괜스레 긴장되고 또 설레는 밤.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와 있는 피곤한 얼굴의 대명씨였지만 그의 눈빛은 오늘밤에도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