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Recovering
-별이 엄마, 진짜 이러기야?
-언니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먼저 연락한다는 게 매번……
-흥, 자기 이사 가면서 연락 자주 한다고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뜸해? 그래 놓고 이거 뭐야, 이거?
준이 엄마였다.
인아씨는 시댁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딱 한 명, 준이 엄마에게만 사정을 털어놓았었다.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일이 잘 풀려서 얼른 다시 돌아오라고, 기도하겠다며 꼭 안아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여전히 준이가 별이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매번 먼저 연락을 준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가롭게 수다나 떨고 있을 수 없어서 거의 연락도 못했는데, 아이들 생일, 명절, 연말 연초면 늘 먼저 연락을 해주었다.
이번에도 먼저 카톡이 왔다. 인아씨의 얼굴이 대문짝 만하게 나온 어느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캡처한 사진을 같이 보내왔다.
-아, 저 운영하는 스마트스토어 때문에 알게 된 분인데 제가 판매하는 제품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 아 그 잡화점? 요즘 사이트가 좀 있어 보이게 바뀌는 것 같아서 잘 되나 보다 그랬더니 이 정도로 잘 되는 거야? 이 아줌마 팔로워만 10만 넘는 사람인 거 알아? 엄청 유명해.
-저희 제품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어요. 그런데 사진 하나 올렸더니 판매량이 급등! 아니 초초급등 해서 알았어요. 엄청 영향력 있는 사람이란 거.
-뭐야 뭐야 자기도 그럼 이 사람처럼 막 유명해지는 거 아냐?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아시면서. 이쁘지도 않아, 재미도 별로 없어, 그렇다고 소통을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하고 싶어도 못해요. 인플루언서인가 뭔가.
-암튼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는 거지 지금? 핑계는!!
-죄송해요. 매번 언니가 먼저 신경 써주시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나 봐요.
-아니 우리끼리 그런 게 어딨어? 자기 언제 시간 되는 거야? 얼굴 한번 보자! 이러다가 얘들 초등학교 졸업하겠어. 여기 동네 다른 엄마들도 다들 궁금해해. 자기 어떻게 이렇게 성공했냐고?
블로그로 유입되기 시작한 인아씨의 루트잡화점은 맘카페 사이에서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블로그 이웃이 늘면서 블로그 글을 카페로 퍼 날라 준 고마운 초기 고객들 덕분에 잡화점 매출도 서서히 늘어났고, 시기가 좋게 맞아떨어진 몇 가지 히트 상품이 생겨나면서 인플루언서들의 연락도 종종 들어왔다.
인플루언서와 진행하는 공동구매를 제안받기도 했고, 물품을 납품하고 싶어 하는 제조사에서도 좋은 조건으로 연락이 왔다. 이번에 준이 엄마가 보내준 사진도 인플루언서와 함께 제품 소개를 진행한 내용이었다.
인플루언서를 통해 공동구매를 진행했는데, 단 3일 동안의 매출이 지난 한 달간의 매출과 똑같이 나왔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기쁘고 또 어리둥절했는데 그 3일간의 매출 뒤에는 2주간의 혹독한 사후 업무처리가 인아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선 물량 입고 요청, 택배 물량 처리와 CS문의로 밤을 새워서 일을 해도 모자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플루언서와 이익을 나눠 가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처럼 막대한 수익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루트 잡화점을 알릴 수 있었다.
이제는 종종 이런 이메일도 쓰곤 했다.
-귀사의 제품이 저희 회사와 콘셉트가 맞지 않아 함께 판매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박인아 많이 컸다. 네가 뭐라고 남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제품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판다 안 판다 큰 소리야? 초심으로 돌아가. 좋은 제품 찾아 놓으면 제발 하나라도 팔려라 기도하던 마음 잊지 말라고!’
마케팅이라곤 공부해 본 적 없는 인아씨였기에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초기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사업하는 사람 중에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2년 정도 루트 잡화점을 운영한 인아씨는 블로그로 유입된 고객들의 전파력을 실감했고, 이번에 인스타그램을 통한 마케팅의 강력한 힘을 느끼게 되면서 또 하나 큰 결심을 하고 있었다. 블로그에 쓰던 글들을 인스타에도 옮기고, 유튜브로 찍어도 보겠다고.
물건 판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사업적 커리어를 잘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자신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작은 잡화점 하나 운영하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칠만한 자격은 없을지 모르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했고, 저렇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스타도 유튜브도 영상을 잘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와 조명을 일단 먼저 사야 하나?’
“총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김교수님! 이번에 우리 공학과에 새로운 교수님이 오기로 해서 소개드리려고 들렀어요.”
“안녕하세요? 허준이라고 합니다.”
“아니, 허준이 교수님이요? 필즈상 받은 교수님?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아하 네, 필즈상 받은 허준이 교수님 하고 이름만 같고요, 저는 AI 쪽 전문입니다.”
“아이코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런 오해 많이 받아서 괜찮습니다. 제가 영광이지요. 이름이 같아서.”
김교수로 불리는 대명씨, 필즈상 수상자로 유명한 허준이 교수와 동명이인의 허준이 교수, 그리고 총장 세 사람은 하하하 크게 웃었다.
“제가 올 때만 해도 곧 망할 것 같은, 아이고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요? 하하 죄송합니다. 아무튼 신규학과라 학생들이 없어서 다시 없어지는 건 아닐까 엄청 걱정했는데, 학교에서 이렇게 훌륭한 교수님들을 모셔와 주고, 재정도 빵빵하게 지원해 주시니 날로 번창하네요. 총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축하드립니다다.”
“아닙니다. 이게 제 공인가요? 다 우리 김교수님 장학금 덕분.. 앗!”
대명씨가 흠칫 놀라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암튼 다 이렇게 훌륭한 교수님들이 우리 학교에 와주시니 우수한 학생들도 많이 지원하는 것 아닐까요?”
박사과정을 마친 대명씨는 회사로 돌아갔다. 평범하게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일했다. 틈틈이 교수 채용을 대비해 논문을 썼고, 주말에는 학교 연구실에 나가 박사과정을 담당했던 교수님과 함께 자신만의 과제를 확장 수행해 나갔다. 그렇게 의무 근무기간을 꽉 채운 뒤, 대명씨는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인아씨와 가족들은 모두 그를 말렸다.
인아씨가 루트 잡화점 운영을 통해 매월 고정적 수익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넉넉하진 않았고, 교수 월급은 짜기로 유명했으니까.
“우리 돈 걱정은 하지 말자. 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심한 거야. 돈 많이 벌어 놓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려고 했는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결국엔 웬만큼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욕심부릴 수도 있어. 그렇게 살다 시간이 다 가겠더라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면서 그렇게 살고 싶더라.”
“나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일 하는 거 찬성이야. 학교 다닐 때 당신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 그런데 내가 버는 돈이랑 당신이 교수해서 버는 돈이랑 합치면 괜찮을까? 솔직히 아이들 클수록 돈 더 많이 들 텐데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 이제는 부모님 편하게 사시게 분가도 해야 할 텐데.”
“응. 무슨 말인지 이해해. 일단은 돈 걱정 빼고는 찬성하는 거지?”
“당연하지! 먹고살 걱정 없으면 당연히 하고 싶은 일, 꿈꾸는 일 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고맙긴, 반대라는 뜻인데……”
“뭐?!!”
마침 서울 근교 한 종합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신설하면서 신규 교수를 임용한다는 공고가 떴고, 소신대로 지원한 대명 씨는 정말로 교수에 임용되었다.
“나 반대했는데……그래도 축하해! 역시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인아씨가 양손 엄지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아빠 축하해요! 우리 아빠 교수님이네?”
“우리 아들 진짜 대학교수야? 야~정말 자랑스럽다!”
온 식구가 모여 축하파티를 열었다.
이때, 대명씨가 한눈에도 꽤 도톰해 보이는 봉투를 모두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현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뭐야 이게? 무슨 돈이야?”
“퇴직금 받은 걸로 투자 좀 했어. 내가 그동안 부동산을 허투루 했던 게 아니더라고. 다시는 안 해야겠다 아니,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 두려웠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부동산을 못한 건 아니었어. 잃은 돈은 잃은 돈이고, 교수하려면 당신 말대로 돈 많아야 될 것 같아서 부동산 다시 투자하고 있어. 이건 일단 축하 파티 기념으로, 모두에게 고마워서. 언젠간 이렇게 한번 선물하고 싶었어! 다들 고맙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일어나 환하게 웃는 대명 씨 두 눈에 반짝이는 것이 맺혀 있었다.
투자로 생긴 이익 중 일부는 매년 학과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물론 익명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할 기회를 놓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기 때문인데, 대명씨의 기부로 학과 발전기금 및 장학금으로 쌓인 돈이 꽤 되었고, 그 돈의 사용처 때문에 기부자를 찾아 나선 대학 총장에게 결국은 정체를 들켜 버리고 말았다.
“둘 만 아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네 그렇게 합시다. 이래저래 말 나오는 것보다는 나으니.”
학과 신설 시에 자신이 직접 임용한 초임 교수 김대명의 기부 사실을 알게 된 총장은 혹여 대명씨의 뜻이 곡해될까 봐 자신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조용히 넘어갔다.
그렇지만 학과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손수 챙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장학금 덕분에 학교에 지원하는 학생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었고,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다 보니 전체적인 학교 위상도 좋아지고 있었다.
대명씨는 어린 친구들이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20대 다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모습이 좋았다. 몇 년만 있으면 산이와 별이도 이렇게 듬직한 20대 대학생이 될 텐데, 돈 걱정 없이 공부에 매진했으면 싶었다. 그리고 그때는 자신도 더 멋진 선생님, 존경받는 학자가 될 수 있으면, 그리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멋진 50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