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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Nov 14. 2024

한 페이지를 넘기며

26. 그래도 살아야지

신혼 때 살던 집은 그대로였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녔지만 다행히(?) 그때 쓰던 가구를 그대로 다 가지고 있었다. 다시 예전과 같은 구조로 채워 넣었다. 방 4개짜리 40평대 집이었으니 시부모님이 안방, 인아씨 부부가 현관 입구방을 쓰고 나머지 두 개의 방은 산이, 별이가 쓰기로 했다. 


아이들은 좋아했다. 각자의 방이 생겼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새 침대와 책상까지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살던 아파트의 보증금을 빼서 급한 대출이자를 갚았다. 다가오는 세입자 전세 만기에 맞춰 보증금을 빼줘야 하는데 다음 임차도 없고, 현금이 하나도 없어서 절대 팔고 싶지 않아 아끼고 아껴둔 서울 재개발 물건도 팔았다. 어떻게든 가지고 있으면 10억 이상 차익이 발생할 게 뻔한데, 날려버린 것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 건 이 물건뿐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팔았다. 보증금을 빼주지 않으면 전세 사기꾼이 되는 거니까. 


매매하기로 계약한 강남 건물은 도저히 잔금을 치를 수가 없었다. 재개발 물건을 팔아서 약간의 현금이 생겼지만 잔금을 치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주변에 같이 투자하던 사람,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살 생각 없냐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워낙 가격이 있는 건물이라 쉽지 않았다. 계약금까지 날리게 생겼다. 


북촌에 산 건물도 내놓았다. 최대한 빨리 팔아서 강남 건물 계약 파기를 막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건물을 담보로 추가 대출까지 받아서 이동혁에게 빌려준 대명 씨는 자신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 보려고도 했지만, 대명 씨의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들 몸을 사렸다. 이해했다. 그들을 욕할 필요가 없었다. 욕심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대명 씨는 자꾸만 자꾸만 후회가 됐다.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싶었다.


현금으로 나가야 하는 이자와 세금 납부를 줄이기 위해 팔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 팔았다. 대기업 직장인 월급만큼  비쌌던 강남집 월세는 부모님 댁에 들어와 살기로 했으니 지출할 일이 없어졌다. 크게 과소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강남에 살면서 늘어난 소비도 줄여야 했다. 아이들도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두고 왔고, 당분간 학원은 다니지 않을, 아니 정확히는 다니지 못할 예정이었다. 


대명 씨는 한 달 정도 병가를 내고, 몸도 회복하고 마음도 회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수입과 지출, 가진 부동산 중 팔 수 있는 것들을 계산해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했다. 냉정하게 마음먹고 하나씩 일을 처리해 나가면서도 자꾸만 생각나는 그 돈은 한 번씩 대명씨를 숨 막히게 했다.  


대명씨가 쓰러졌던 이틀 동안 인아씨는 남편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온 호사를 통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호사’ 익숙한 이름이었고, 같이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호사는 괜히 자기가 대명씨를 부추겨서 일이 여기까지 왔다며 미안해했다. 변호사인 사람도 당했는데 누가 알았겠냐, 그쪽도 건강 잘 챙기시라, 그렇게 덤덤하게 통화를 끝냈었다. 


남편을 살리는 게 먼저였기에, 대명씨가 살아만 난다면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기도했었다. 그렇게 이틀 만에 대명씨가 깨어났다. 대명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인아씨는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늘 잘 되기만 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 즐겁게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다 퇴사를 했고 강남에 살았고, 건물주도 되었고, 자산은 늘어만 갔고. 아이들도 잘 크고, 감사한 일뿐이었다. 


“아아악!!!!”


집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 가끔 답답해지거나 막막해지면 거울 앞에 서서 악을 쓰며 소리도 질러보았다. 속이 시원해 지지도,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저 부자가 된다는 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꿈을 금세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그렇게 좋았던 인생의 한 페이지가 허무하게 막을 내림을 온몸으로 실감할 뿐이었다.




탄천변.


“헉헉, 나 여기가 콕콕 쑤셔서 좀 천천히 가면 안 될까?”


대명씨가 왼쪽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응 천천히 가자. 무리하면 안 되니까.”


“고마워. 이거 되게 힘드네. 나 그래도 어릴 때는 이것저것 하면서 운동신경 있다는 소리 좀 들었는데.”


“운동신경이랑 체력이랑은 다른가 봐! 달리기는 기본 체력 쪽이고.”


“그동안 내가 진짜 운동을 안 하긴 했지. 어떻게 버텼나 모르겠어.”


“그나마 젊었으니까? 그동안은 그걸로 버텨졌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아니야! 나랑 같이 달리기 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거야!"


“응, 그럴게. 내가 혹시라도 지치면 지금처럼 나 좀 끌고 나와줘.”


“응! 내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할 거야, 잔소리 듣기 싫다고나 하지 마.”


바람을 맞으며 인아씨와 대명씨는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 둘을 앞질러 갔다. 헉헉, 느릿느릿하게 돌아가는 다리가 금세 멈출 것 같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등과 가슴, 땀방울이 가득한 얼굴, 붉게 달아오른 양 볼. 그렇게 달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일렁이는 윤슬에 비춰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대명씨네 회사.


“김 차장,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저요? 아시잖아요. 달리기 하면서 체력이 좋아져서 그런가 이 정도는 너끈합니다. 오히려 일이 착착 진행되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정신 건강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다니 다행이긴 한데, 자네 너무 무리하면 또 병 나!”


“아유 저 괜찮습니다. 술도 끊고, 운동도 열심히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김차장 좀 변하긴 했어. 뭐랄까 전에 비해 여유 있어 보인달까? 암튼 좋아 보여. 앞으로도 건강 관리 잘해. 일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비극적으로 끝난 재테크와는 별개로 회사 생활은 여전히 즐거웠다. 퇴근 후 시간은 주로 부동산 투자로 일하던 대명씨. 이제는 투자를 안 하니 회사일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집중할 일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성과도 금세 나왔고, 열심히 하다 보니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박사 과정에 추천도 받게 되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인아씨.


맞벌이로 일하면서 시부모님 댁에 살 때와는 달랐다. 대명씨 덕에 시부모님께 용돈도 두둑이 드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신세를 지고 살고 있었다.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괜히 속상하고 죄스러워서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나면 노트북을 챙겨, 집에서 살짝 떨어진 카페로 출근을 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삶은 사실 강남에 살 때도 누려보지 못했다. 퇴사하고 아이들 키우며 주식 조금 해보고 경매 몇 번 해 본 게 다였다. 그저 마음이 든든했고 감사한 시절이었기에 언제든 뭐든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다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하고 싶은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식과 경매는 밑천이 없으니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좀 컸으니 다시 취업을 해 볼까? 아주 오랜만에 링크드인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경력사항에 대기업 매니저 한 줄, 학사 졸업 학력 한 줄, 보유 기술 대여섯 줄. 사이트 가입 후 전혀 관리하지 않은 프로필은 너무 볼품이 없었다. 재취업이나 이직을 염두에 둔 적이 없었기에 이제 와서 무엇을 더 채워 넣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래 가지고는 어디 지원조차 하기 힘들어 보였다.


유튜브에서 스쳐 갔던 영상들이 떠올랐다. 스마트 스토어를 검색하자 셀 수 없이 많은 영상들이 검색되어 나왔다. 월 1000만 원을 번다, 500만 원을 번다, 하루 3시간으로 월수익 보장과 같은 끌리는 제목이 수두룩 했다. 


일단 보이는 대로 클릭해서 영상들을 살펴보았다. 영상 초반에 유튜버들이 강조해서 말한 대로대로 누구나 할 수 있게 쉽게 설명을 해 놓았다. 오 그래? 이 정도면 껌이지. 일단 시작부터 해볼까? 인아씨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인아씨는 스마트 스토어도 개설하고, 쿠팡에도 사업자 등록을 하면서 조금씩 기대에 부풀어 나갔다. 


‘이런 신세계가 있었구나! 역시 돈 버는 방법은 있어! 내가 노력하면 회사 다닐 때 월급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겠어. 벌어야지! 그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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