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챌린 Nov 12. 2024

설상가상

25. 살 수 있을까?

비가 와서였을까. 잠수교 다리에서 내려다본 한강은 평소보다 물이 꽤 높이 올라와 있었다.


새까만 물결이 끝도 없이 일렁이고 있었고, 까만 도화지 위에 점점이 찍힌 알록달록한 불빛은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였다. 짜증 나게. 


대명씨는 미치게 짜증이 났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살짝만 더 몸을 숙이면 저 거대한 검정 물결 속으로 빠져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눈물이 나온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흐흑 흐흑 흑흑흑. 


이제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겠다 싶을 만큼,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도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주저앉았다. 죽고 싶었다. 정말 어디 가서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 왔는데, 저 어둠 속으로 콱 뛰어내려 버리면 간단하겠다 싶었는데 그냥 다시 이렇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질러보자. 악!!!!!으아아아아아아악!!! 소리도 막 지르고 속 시원하게 울어버리라고, 그러면 나아질 거라고 누가 그랬어? 개뿔. 나아지긴 뭐가 나아져? 목만 아팠다.


삐리리릭


대명씨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 어둡고 조용하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아이들과 인아씨는 함께 잠들어 있었다. 재우다 같이 잠들었나 보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아이들 틈에 누워있는 인아씨를 보니 또르륵.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엄마 옆에 누워 있어도 작아 보이지 않는 두 아이를 보니 또 주르륵.


흐흐흐흑 이불속에 머리를 처박고 한참을 울었다. 인아씨가 깰까 봐. 


‘깨서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지금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날 원망하지는 않을까.’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이 머리카락을 적셨다. 퇴근 후 짧은 몇 시간 동안이지만 얼마나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던지 부르트고 빨갛게 부어오른 입술이 따끔거렸다. 차가운 물이 얼굴을 지나 아래로 아래로 흘렀다. 아주 차가웠다. 뜨겁게 붉어진 눈시울을 식혀주고, 굳어버린 심장을 더 차가운 온도로 깨워주고 있었다. 


'죽기는 왜 죽어. 정신 차려야지. 정신!'


지난 몇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죽고 싶다. 미치겠다, 아니다 정신 차리고 이 일을 수습해야겠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오락가락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집에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신의 인생이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촥 펼쳐진다고 했던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결혼을 약속했을 때, 보석 같은 눈으로 똘망똘망 대명씨를 쳐다보던 생명체. 그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기적 같던 소중한 순간들이 대명씨의 눈앞을 스쳐갔다.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는 저 아이들을 두고,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내가 어떻게 흑흑.’


지이이잉~ 전화기가 울린다.


-왜 이렇게 안 와. 어디 가서 죽은 거 아니지?

-미친. 죽기는 내가 왜 죽냐? 이동혁은?

-몰라. 아직 못 찾았나 봐. 미치겠다 진짜. 나 어쩌냐?

-내가 다시 거기 가볼 테니까 너도 집에 가서 좀 씻고 정신 차리고 와라

-집에 가다가 죽으러 갈까 봐 무서워서 아무 데도 못 간다고.

-야! 네가 왜 죽어? 나쁜 놈은 니가 아니고 이동혁이야! 정신 차려! 금방 갈게.


겨우 다잡은 마음이었다.

다시 한강에 가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상황. 대명씨는 짙은 처절함과 비참함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어서 누가 손가락으로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침대에 앉아 가쁜 호흡을 내쉬며 숨을 골라본다. 머리가 띵하다. 이 모든 것이 상상이었으면. 그냥 하룻밤 악몽이었으면 싶었다. 


‘아까 그 사무실에 다시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까? 앞으로… 앞으로… 이제부턴 그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으으흠, 여기 어디야?”


“어! 여보!!! 괜찮아? 나 알아보겠어?!!!”


“어, 나 계속 잔 거야? 얼마나 잔 거야? 근데 여기 뭐야, 병원이야?”


“어! 당신 엊그제 늦게 와서 아침 늦게까지 자나보다 하고 뒀더니 계속 안 일어났어. 깨워도 깨워도 못 일어나길래 나 당신 죽는 줄 알고 흑흑흑.”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있었다. 대명씨는 어쩌다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안. 걱정했지?”


“당연하지! 당장 부모님들께 전화해야겠다. 아마 잠도 못 주무셨을 거야.”


산이와 별이가 있었기에 인아씨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대명씨를 구급차에 태워 보내면서 시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산이와 별이를 며칠만 좀 돌봐 달라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이제 아무 소원이 없어. 세상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대명이는 괜찮은 거니?”


“네. 깨어났으니 이제 의사 선생님이랑 다시 만나보려고요. 별일 없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그래. 인아야. 미안하다. 네가 좀 더 고생해 줘. 산이랑 별이는 여기서 잘 먹고 잘 놀고 있다. 엄마도 아빠도 손자들 있어서 버티고 있으니까 네가 대명이 좀 잘 돌봐줘.”


“네. 어머님도 너무 걱정 마시고, 식사 잘 챙기세요. 이따 산이 아빠 통화할 수 있을 때 전화 한번 드릴게요.”


의식이 없는 동안 진행했던 몇 가지 검사에 대한 결과도 보고, 퇴원 여부도 확인할 겸 의사를 만났다. 


“컨디션은 좀 어떠십니까?”


“푹 자고 나서 그런지 오히려 개운한 느낌입니다. 저 별다른 이상 없죠? 그냥 기절한 거죠?”


“네 이렇게 잘 깨어나셨으니 현재로선 큰 이상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의사는 뇌 CT촬영한 사진을 한번 보라며, 한 부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위험할 뻔했어요. 초기 뇌졸중입니다. 그래도 젊은 분이니까 잘 관리하시면 큰 문제없을 겁니다. 술 담배 끊으시고,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중저음의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의사의 음성이 마치 라디오 같은 데서 들려오는 듯 현실감이 떨어졌다. 


“네? 뇌졸중 이요?”


“네 초기로 보입니다. 무슨 큰 충격을 받으셨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서 혈관이 잠시 막혔는데 간단히 뚫어주는 시술만 했고 생각보다 빨리 잘 회복되었습니다. 또 환자분께서도 잘 깨어났으니까요. 좀 전에 CT 다시 촬영한 거 보면 뇌혈류가 잘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며칠 병원에 더 계시면서 의심되는 추가 검사도 해보고 나서 퇴원하세요. 앞으로 6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받으시고요.”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뒤에 이어진 충격이어서였을까 대명씨는 뭔가 덤덤해 보였다.


휴~ 깊은숨을 내쉬며 눈물을 참고 나온 인아씨는 대명씨를 꼭 안아주었다. 


“이건 괜찮은 거야. 관리 잘하면 되는 거야.”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고 한참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미안해.”


“흑흑 흑흑. 나도.”


대명씨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어렵게 어렵게……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털어놓았다.

이전 24화 현금 20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