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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챌린 Nov 19. 2024

달라진 일상

27. Something New

이 매장 직원들은 얼굴에 피어싱 한 두 개가 기본이었다. 주로 검은색을 입고 있었지만 그 까만색 옷의 스타일이 다 달랐고, 헤어 스타일이나 화장으로 자기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직원 중에 서너 명은 문신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이나 보통 옷가게 직원과는 많이 다르다. 기본 표정은 무관심. 말 붙이기 어려운 딱딱한 표정과 걸음걸이로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에게 눈길 한번 주었다가는 금세 쿨하게 시선을 거둔다. 그렇게 매장 안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처음 이 매장에 방문했던 날, 마치 물 좋은 클럽 입구에서 사람을 골라서 들여보낼 때처럼 위아래로 사람을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져 불편했었다. 인아씨한테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어쩌나 살짝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매장 입구에 줄을 서 있었다. 다행히 별 말없이 차례대로 매장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둘러보며 이런 것은 이 가격이구나, 인터넷에서 미리 찜해 놓고 온 인기 있는 아이템은 매장에도 몇 개 없구나, 반은 긴장하며 또 반은 두근거리며 살펴보았던 기억이 났다.


맨투맨을 색깔별로 두루 살피고, 로고가 박힌 것 외에 특별한 점은 없어 보이지만 인기가 많다는 캡 모자와 가방 등 소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우터 코너 쪽으로 가면 눈에 확 띄는 컬러, 흔치 않은 디자인의 재킷과 하의들도 제법 있었다. 


맨투맨이나 티셔츠 같은 아이템은 매장에서 사서 리셀 사이트에서 되팔면 10만 원, 인기 있는 한정판 제품은 약 20만 원 정도의 차익이 생긴다. 그런 물건을 사러 지하철을 타고 신사동까지 갔다. 오전 몇 시간 일당으로 꽤 쏠쏠한 수입이니까. 


기본 아이템인 맨투맨과 캡모자, 운 좋아야 남아있다는 가방, 그리고 한정판 재킷까지 살 수 있다면 한번 발걸음으로 5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 


입고 간 인아씨 평소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옷을 보고 있으니 매장 직원의 의아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도 몇 번 왔었다고 인아씨는 나름 능숙한 척을 하며 리셀 사이트에서 제일 잘 팔리는 옷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아 헷갈리네. 이번 시즌 신상 프린트가 아니라 따로 나온 프린트였는데. 이거랑 비슷도 하고 다른 것도 같고. 분명히 기억해 두었는데.’


밖에 나가서 다시 찾아보고 오려니 한참 동안 입장줄을 다시 서야 하고, 안에서 사이트 접속을 다시 하자니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검은 옷의 매장 직원들 눈이 무섭고… 한참을 망설이다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하며 리셀사이트 어플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저기요, 리셀 보시면서 저희 매장에서 쇼핑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지금 고르신 것 다 두고 나가주세요.”


“네? 핸드폰 보면 안 된다고요? 리셀사이트요?”


짐짓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하며, 순간을 모면해 보려고 했으나, 피어싱에 문신에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의 눈빛이 제법 날카로웠다.


“네, 쇼핑하러 오는 다른 고객분들께 피해가 돼서요. 죄송하지만 나가주세요.”


“아니, 저도 옷 사러 온 건데…”


“죄송합니다.”


하면서 살짝 문쪽으로 돌려세우니 인아씨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쫓겨난 것이었다. 


‘세상에!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진짜로 쫓아내다니! 내가?! 내가 쫓겨났어?! 소문만 들었지 그럴 줄 몰랐네. 아 그냥 찾아놓은 것만 사서 나올걸. 괜히 하나 더 사려다가 쫓겨나다니. 흐으윽 쪽팔려. 오늘은 다 망했다!’


빈손으로 매장 밖으로 쫓겨난 인아씨였다. 우리나라 전국에 정식 매장이 하나밖에 없는 이 브랜드는 젊은이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고, 이곳 매장 아니면, 해외 직구 혹은 리셀로 사는 것 밖에 정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늘 리셀사이트에서 그 수요가 높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리셀을 위해 구매하러 오는 장사꾼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매장 안에서의 리셀사이트 접속은 금지 사항이었고, 그 장사꾼들 중 하나였던 인아씨도 그래서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스마트 스토어를 열고, 도매 사이트에서 계졀별 인기 상품들을 모아서 팔아온 지 벌써 몇 달 째였지만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도 생각보다 메인 사이트 노출이 쉽지 않았다. 검색 첫 화면에 노출이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상품이 팔릴 확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광고비를 쓰기도 하고 몇 달은 마케팅 회사를 고용하기도 했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최저가 전략으로 상품 가격을 가장 싸게 내놓으면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도매업체나 공장에서 자기네 물건을 도매가격이라고 스마트 스토어하는 사람에게도 팔지만, 그 비슷한 가격으로 직접 소매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량으로도, 가격으로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게 명품과 인기 브랜드 리셀 판매였는데,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쇼핑 자체를 즐기지 않았고, 딱히 소질도 없는 분야였기에 인아씨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흥미도 점점 떨어졌다. 게다가 일하는 시간 대비 이익이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이익이라 아무리 매출이 지속적으로 있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카페 알바를 하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었다. 자신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만든 매출일 뿐, 이익도 성장도 없어 지속할 명분과 흥미가 떨어지는 날들이었다.  


‘누가 쉽다고 했어? 월 500, 1000만 원? 그래 나도 쉬워 보였지. 그런데 성공한 케이스만 자꾸 얘기하고, 실패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으니 다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거야. 에이 정말 짜증!’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너무 답답해서 일하기가 싫어졌다. 그냥 머릿속이나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회사 다닐 때 습관처럼 써오던 업무 일지도 쓰고, 어떤 과정을 통해, 왜 이 물건을 소싱했는지, 판매 전략은 무엇이었고, 왜 실패했는지, 유사 상품 중 잘 팔리는 상품과 스토어의 특징은 무엇인지 스토어 홍보를 위해 만든 블로그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끄적거리다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급히 시댁으로 퇴근을 했다.


저녁이 되니 네이버 알람이 자꾸 울렸다. 대부분은 찜해 놓은 물건이나 브랜드의 라이브 쇼핑 광고, 혹은 할인 이벤트 알람이었기에 인아씨는 무시하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 본격적으로 추위에 접어들기 전인 지금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 팔릴 물건들을 검색해서 남들과 다르면서, 눈길을 끄는 상세 설명 페이지를 만들어야 했다. 손난로, 털장갑과 털실내화, 스카프, 비니모자, 크리스마스 카드 등 가격이 저렴해서 가볍게 선물로 구매하기 좋은 물건부터, 빈티지 명품과 고가의 겨울 패딩점퍼 등도 소량 구매해 놓을 생각이었다. 


광고가 아니라 댓글, 좋아요 알람이었다. 인아씨가 써 놓은 블로그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와와!! 이건 극공감!!!! 저도 40대 주부. 스마트 스토어 하고 있어요. 수십만 원짜리 강의도 많이 듣고 그대로 했는데 왜 안될까 좌절하던 중이었거든요!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혼자 많이 힘들었는데 루트잡화점님 그동안 어떻게 일하셨는지 고민하며 써 놓은 글 우연히 보고 정말 공감돼서 저 눈물이 났어요. 제 얘기랑 비슷해서 ㅠ


'뭐지 내가 뭐라고 썼지?'


 인아씨는 블로그에 들어가 지난번에 두서없이 써 두었던 글을 읽었다. 이웃수도 조회수도 별로 없는 블로그라 자기만 볼 거라고 생각해서 짜증이 잔뜩 섞인 말투로, 나는 왜 안 되는 거냐,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말이야 등등 일기 쓰듯 검열 없이 써 놓은 글에 누군가 공감을 해준 것이다. 댓글을 보고 인아씨도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대명씨는 오전 업무를 급히 끝내놓고 부랴부랴 차를 몰고 학교로 향했다. 회사에서 추천해 준 박사과정에 합격해, 매주 금요일 오후 대학교 연구실로 출근을 했다.


 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부동산으로 돈을 더 벌지 무슨 공부야 했겠지만, 마음을 비우니 그 힘들다는 박사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전공 공부에, 실험에, 논문 준비까지 쉽지는 않았지만 이 기회가 주어진 것부터 해 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감사할 따름이었다. 갑자기 병으로 그만두게 된 시간 강사를 대신하여 학부생 전공 강의까지 맡게 되었지만 대명 씨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돈을 잃고 자기 자신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견디기 너무 힘들었었다. 하느님이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을 살려주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집중하고 시간을 쏟아내니 차츰 마음도 편안해지는 듯했다.


전공 수업을 듣고, 연구실 자리에 돌아왔다. 나이 들어서 공부하려니 역시 쉽지는 않았다. 


‘교수님 나이도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너무 깐깐하게 하시네. 아휴.

그래도 나이 들어 공부하는 설움보다는 기쁨을 생각해야지! 

나는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있는데 저쪽 석사과정 대학원생 후배들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늘 어느 대기업의 신입 사원 합격자 발표가 있다고 했었다. 하루 종일 합격자 발표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후배들이었는데 표정을 보니 불합격인가. 


학부 4년, 군대 2년, 석사 과정 2년까지 대학교 생활만 벌써 8년 차인 후배들이었는데,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취업을 못하고 있었으니 그 불안한 마음이 어떨지, 자괴감은 얼마나 클지 대명 씨는 자신의 대학원 시절 생각이 났다.


돈 아낀다고 회사 밖에서 커피 한잔도 안 사 먹는 대명씨였지만 밥이라도, 술이라도 사주며 위로하고 싶었다. 


“너네 저녁에 약속 있니?”


“아뇨 교수님이 시키신 과제가 있어서 그거 보고해야 됩니다.”


“아, 그럼 이따 교수님 하고 미팅 끝나면 나랑 같이 밥 먹으러 갈래?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요… 박사님 시간이 괜찮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아직 박사 졸업도 못했는데 다 늙은 아저씨를  박사님이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는 착한 후배들이었다. 


“어 기다릴게. 나도 논문 좀 찾아볼 거 있어서.”


학교 앞 중국집.


“자 많이 먹어. 배고플 텐데  얼른 먹자!

이런 라떼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하겠지만…”


자신의 대학교 생활, 겨우 합격한 대기업 입사 이야기, 회사 생활의 희로애락, 그리고 재테크 이야기까지.


20대 후반 후배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으며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쭙잖은 아재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게. 

다 예전 이야기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니라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그냥 매일매일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네 박사님. 다른 회사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먹고 싶은 거 있음 더 시키고 힘내자!”


“오 그럼 저 크림새우 하나 더 시켜도 될까요? 새우 좋아해서요.”


“하하, 그래 하나 더 시키자. 우리 아이들도 크림 새우 좋아하더라. 많이 먹어!”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MZ들에 대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런데 학교에 와서 보니 MZ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대명씨 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살았으면 살았지, 자기만 알고 개념 없다는 학생들은 의외로 보이지 않았다. 현실 직시와 자기 객관화가 철저해 조금 정이 없고, 계산적으로 보일 뿐. 그런 친구들과 대학교 캠퍼스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항상 기분이 좋았다. 젊음, 꿈, 희망, 미래, 순수함, 배움과 앎의 기쁨. 그런 단어들이 비눗방울처럼 머릿속에 퐁퐁 떠올랐다.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벅차올랐고, 싱그러워졌고, 상쾌해졌다. 이곳에서 오래오래 공부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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