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풀마라톤!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 42.195km 도전 D-28
3월 8일 나고야 우먼스 마라톤을 앞둔 2월.
30킬로 이상 달리는 장거리 훈련을 매주 일요일에 계획하고 있다.
굿러너 시스터즈에서 코치님들까지 불러서 함께 달리는 훈련을 어레인지 해주고 급수도 마련해 주시니 이런 감사한 기회에 최대한 참석해서 함께 달려야지 싶어서다. 결국에는 혼자 달리더라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근처에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걸 알기에 약속한 일정에 맞추고 있는 중.
8시에 시작하는 일요일 시스터스 합동 훈련은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반포종합운동장에서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시, 시스터즈들이 모이는 시간에 함께 달리면 11시 예배시간에 맞출 수가 없기에 새벽 5시~6시 사이에 먼저 나가서 두 시간 정도 먼저 달리기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쯤 반포종합운동장. 조명은 아직 꺼져있다.
2월 8일은 특히 영하 11도, 체감온도는 -16도로
한파주의보가 발효 중인 날이었다.
바람도 많이 불었고 내가 도착했을 때는 주차장에도 차량이 두어 대 밖에 없었다.
(그래도 역시 운동하러 온 사람이 있긴 있다. 나도 거기 있었지만 어느 시간에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 )
사람들은 아직 운동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많이 캄캄했다.
다행히도 무서움을 별로 안타는 성격이라...
강추위 야외 러닝에 맞게 무장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으니 하긴 해야지.
슬슬 주변 눈치를 살피며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목도 풀고 손목 발목도 풀고...
와... 그런데 바람이 칼 같이 날카로웠다.
마스크에 바라클라바를 덧쓰고 장갑을 꼭 끼고 있었음에도
바람이 살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하기 싫어...으아아 ㅠㅠ
그래도 어쩌겠어? 달리다 보면 안 추워지니까
일단 고!!
트랙 위에서 달리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한 바퀴를 도는데 계속 추웠다.
주머니에 넣은 핫팩을 두 손에 꼭 쥐었다.
두세 번째 바퀴쯤 돌고 있으니
트랙 바깥쪽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군. 휴우..
탁! 번쩍!
어느 순간 조명이 환하게 운동장을 밝혔다.
'5시 55분. 아 이 시간이면 조명을 켜주는구나~.'
이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운동장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열댓 명이 넘게 모였고...
'러닝크루인가?' 달리면서 다시 보니 조기축구회 분들이었다.
'6시에 모여서 시작하나 보다.'
전 같으면 이 추운 날, 새벽같이 나가서 축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미쳤다고 했겠지만
나야말로 혼자서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짓을 하고 있었기에 속으로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함께 운동장에 존재해 줘서 얼마나 든든하던지.
겁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있으니 조심스럽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 몸 풀고 신나게 축구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 주위로
외로워 보이는 한 여자는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도 시간이 잘 안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추위에 움츠러든 몸도 풀릴 기미가 없고..
벌써부터 지루하면 안 되는데... 하며 관중석 쪽 시계를 자꾸 쳐다봤다.
축구는 어느 팀이 이기고 있나 누가 누가 잘하나
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도 들어보며 일단은 조깅을 지속한다.
슬슬 다른 러너분들이 트랙 위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주차장 방향의 테니스 장에도 이제는 불이 다 켜졌다.
가까이 가면 테니스 공 튕기는 소리도 탕! 탕! 들린다.
부지런한 사람들!
때로는 다른 사람들 뛰는 모습을 보며 달렸다.
나보다 앞서 가는 분들에 맞추어 발 내딛는 템포를 맞춰보기도 하고 짧게 따라가다 힘들면 다시 속도를 줄이고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또 페이스를 올렸다가
bpm이 낮은 노래에는 내 페이스도 낮춰가며...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가 보다.
사람들이 짐을 잔뜩 들고 단상 쪽으로 몰려들었다.
축구회 발대식?이었나? 시무식이었나?
아무튼 올 한 해의 시즌을 정식으로 시작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수막 구경, 사람구경하며 조금은 산만하게 달리다 보니 8시 즈음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난다.
"와~~~ 안녕하세요!"
"계속 달리고 계세요. 사진 찍을 때 제가 부를게요~ 같이 사진 찍어요!!"
"네!!"
신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니 왠지 달릴 맛이 났다.
"지희 님~~!!" 하고 불러주어서
달려가 시작 전 단체 사진에 한 컷! 성공적으로 낄 수 있었다.
오예!! 사진 때문에 단체 훈련에 나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단체 사진에 없으면 아쉽더라 ㅎㅎㅎ
찰칵찰칵!
이제부터는 다들 자기 페이스에 맞게 달려 나가기 시작.
코치님 두 분이 달리는 시스터즈들을 지켜보며 자세도 봐주고 속도도 봐주셨다.
"지희 님 왜 이렇게 몸이 앞으로 숙여져요? 허리를 좀 세우세요."
"아 네~!"
오늘따라 몸이 무겁게 느껴지긴 했지만
앞 두 시간은 어떻게 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하.
급히 반성을 하며, 어찌 됐든 자세를 바로 잡고 뛰려고 애썼다.
교회 가는 시간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도 같은 트랙 위를 달리는 시스터즈들이 있으니 아까 달릴 때와는 다르게 기분이 확실히 좋았다. 두 시간 넘게 뛰어서였는지 기운은 좀 빠졌지만 더 더 기운을 냈다.
만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서 9시가 되었을 때
나는 운동을 마무리하고 먼저 가보겠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 다른 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파이팅!"도 엄청 외쳤다.
(물론 다들 나보다 훨씬 잘 달리는 분들이라 걱정 같은 건 전혀 안 했지만)
세 시간 넘는 장거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기분이...
끝내주게 좋았다 ㅎㅎㅎ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는 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을 정도니까.
깜깜한 새벽에 혼자 시작하는 것이
살짝 무서운 듯했지만 정말 뿌듯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 조용히 달리는 시간도 겨울이면 끝난다. 해 뜨는 시간이 빨라지는 봄, 여름이면
다섯 시 반에도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할 걸 알고 있기에 ㅎㅎ
조금 무서운 듯해도
조금 외로운 듯해도
혼자인 것 같아도
뿌듯하고, 즐겁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달릴 수 있는 시간을 즐겨보자 그렇게 다짐해 본다.
결국엔 무섭지도 않고
결국엔 외롭지도 않고
또 결국엔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서로를 응원하며 달려 나가고 있을 거니까 말이다.
어떤 시간에고 여자 혼자 달려도 안전한 우리나라 치안 상태에 고맙고 매서운 강추위에도 새벽같이 나타나준 건강한 에너지의 조기축구회 분들도 감사하고 장거리 합동 훈련을 계획해 준 굿러너에도 진심으로 고맙고 기쁜 날.
이제는 새벽 5시에 혼자 반포종합운동장에 가도 무섭지 않다. 조만간 누군가가 분명히 등장할 것이므로 ㅎㅎ
그래서
그 시간에도
그 날씨에도
나는 그냥 달린 거고 앞으로도 그냥 달리지 않을까?
@challen_cherryche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