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의 인생을 대하는 자세
인생을 살다보면 나보다 지위나 위치가 높은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굴복을 하는 경우가 있다. 높은 지위나 위치에 있는 권위있는 사람은 그 권위를 즐기기도 한다. 왜 우리는 내가 동의하지 않은 권위에 굴복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번째 권위에 무조건적인 복종과 굴복하는 나를 생각해보자.
나는 언제부터 권위에 억눌려왔는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어릴적 어머니와 어른들의 권위에 복종하며 착한 나를 칭찬의 구덩이에 빠뜨리며 살았다. 어른들의 생각은 언제나 옳다. 내 생각은 어른들의 틈에 끼지 못한다는 권위적인 사회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말엔 그저 네와 예스로 반응하고 내 생각은 전혀 말하지 않을 뿐더러 그저 어른들의 권위에 맞춰 살아온 나이다. 아이고 착하다. 그럼 못써. 어디 어른앞에서....이런 말들은 우리를 권위앞에 고개 숙이게 했다.
간혹 나와 친구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물론 그 선생님은 그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다. 권위가 있지만 나와 친구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우리와 함께 권위를 공유하고 나누셨다. 이는 선생님이 가진 권위를 내세움이 아니고 우리들한테 권위를 인정받으신 경우이다. 이러한 선생님이 극소수였기에 우리들은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에 의해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복종과 굴복이 일상화 된 것이다.
두번째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직장과 학교, 가정 사회 전반에 걸쳐 내가 이대 나온 여자야, 우리 조카는 서울대 다녀, 서울대, 이대, 판사, 의사 이 지위를 들으면 사람들은 언제든 고개를 돌려 한번 이상을 쳐다보고 우러러보게 된다. 갑자기 내 고개는 땅으로 떨어지고 그 권위있는 사람들은 뭐든 잘할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권위를 가진 이들이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 스스로 복종과 굴복을 해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밴 우리도 문제가 있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타인의 삶을 복종과 굴욕으로 무너뜨리려는 의지가 있다. 이는 권위를 악용한 사례이다. 내가 회장이니까 회사를 나가서도 일반 사원에게 내 개인적인 일을 시킨다든지, 내가 회장이니까 사석에서도 너는 나를 존경해야해. 인사도 꾸벅하고 너의 부인과 가족들도 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권위적인 사회에 살고 있었던 걸까?
한국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상하 관계의 존중·복종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위계질서가 팽배해지고, 불안한 사회에서 안정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권력의 집중·통제와 민주적 절차의 약화가 반복적으로 강화되는 역사적 경험에서 권위주의가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권위로, 사회에서 대통령 권한이 강화되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체계화 된 것이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사회 구조는 권위를 가진 자에게는 강한 권력을 쥐어주고 그 외 사람들에게는 복종과 굴복을 강요했다.
이러한 수십년의 권위주의 사회적 구조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MZ세대들이 기성세대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MZ세대들의 부모 세대가 권위주의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직도 권위주의는 잔존해있다.
아마 그 부모세대가 나일것이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권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권위주의자들이 얘기하는 불합리한 권위에 올바른 나의 입장을 계속 이야기 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권위주의자들의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동의하지 않은 권위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복종과 굴복에 길들여진 나는 과연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인가. 오늘 깊은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