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성자였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집사. 믿음을 가지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2남2녀를 낳으셨다. 평소 아버지는 조용한 성격이다. 엄마한테 들은 얘기지만 큰 오빠가 고등학교 다닐 때 1짱을 해가 사고를 많이 쳤을 때 동네 산에 큰 오빠를 묶어놓고 '제발 인간이 되거라'하며 엄청 때리셨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그랬을까 생각도 해 본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날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강의듣고 과제를 하고 있었다. 언니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다. '봄봄아, 아빠가..........울음소리에 나는 뭔가 잘못되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머리속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버스터미널로 향한 나의 얼굴에는 울음이 흠뻑 젖어 있었다. 달리는 버스 창밖에도 슬픔의 비가 창을 때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소띠, 보통 소띠는 일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아빠는 딱 그랬다. 직업은 목수, 우리집에 있던 대부분의 것들은 아버지께서 직접 만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 밥상, 의자, 평상 등을 만드셨다. 다른 사람들 집을 지어주시고 교회에 가서도 여기저기 부서진 곳을 수선하셨다. 평생을 성실하게 열심히 사셨다.
손자들에게 아버지는 친구였다. 손자가 오는 날에는 일주일전부터 손이 바빠지셨다. 겨울에 연날리러 가기 위해 연을 만들고, 팽이치기 놀이를 위해 팽이를 만들고, 얼음 미끄럼을 타기 위해 대나무 썰매도 만들어 주셨다. 참 자상하셨다. 손녀에게는 더욱 지성이셨다. 언니가 아이를 낳고 직장에 다녀야 해서 아이는 아빠와 내가 전담이었다. 아빠는 우리를 어릴 때부터 등에 업고 일하셨듯이 손녀도 항상 안아 기르시고 이것저것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챙기셨다. 우리 아버지의 이러한 자상함을 우리 아이들은 받지 못하는게 사실 제일 안타깝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을 70세까지 목수 일을 하며 살았고 아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인생이었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농사와 목수 일을 해가며 4남매를 대학까지 보내셨으니 참 애쓰셨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는 일 안하고 편히 계시지요? 오늘은 아버지가 참 많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평생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치매증상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우리 가족에겐 큰 슬픔이었다. 큰오빠, 작은오빠, 언니, 나 또한 아버지가 베푸신 사랑안에서 자라 지금도 그 사랑이 우리 가슴속에 자리잡아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ps. 아빠 나 잘 살고 있죠? 아빠 까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