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 속 도훈(윤계상)의 관점으로 단편소설 쓰기
(*나는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나? 재밌게 살고 싶어서.”
“재밌게? 내가 재밌어?”
“재밌어. 나는 도훈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신기하고 재밌는 존재야~ 으이구~ 왜케 귀엽고 난리니 너는~” 엄마가 내 볼을 꼬집는다.
“아, 아파~ 하지마.”
나는 엄마의 베스트프렌드였다. 엄마도 나의 베스트프렌드였다. 사실 서로에게 친구는 둘 뿐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친구가 필요해서 나를 낳았다고도 했다. 근데 나랑 엄마가 너무 친해져서 질투한 아빠가 떠났다고 했다.)
엄마는 삶을 조금이라도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재미 중독자였다. 엄마와 단 둘이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불행한 기억은 거의 없다. 엄마는 고난을 놀이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우수수 떨어지던 날, 엄마는 벌떡 일어나 바가지 두 개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받아, 디스 이즈 컴퍼티션” “뭔데, 왜 이렇게 비장한 건데.” “가장 많이 퍼낸 사람이 이기는 거야. 일주일 설거지 내기!” “아 나 무서운데~” “그럼 설거지 고?” “… 더 싫어. 고무장갑 어딨어? 바퀴벌레 일루 와.”
“오, 강도훈 선수 초반 러시가 강합니다. 무섭다는 건 뻥이었나요~”
“김윤영 선수, 말이 많아요. 바퀴벌레는 말로 퍼내는 게 아니거든요~”
“뭐야 이짜식이?”
“심리전에 약합니다. 김윤영 선수, 손이 느리면 멘탈이라도 강해야 되는데요~ 저는 벌써 비닐 봉다리 2개가 차…”
“악! 바퀴벌레 왕이 등장한 거 같습니다. 이건 솔직히 10마리 쳐줘야 될 거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도훈 선수.”
“어림없습니다. 아 근데 정말 끝이 없네요. 온 동네 바퀴벌레가 여기 다 모인 거 같아요.”
“아마 나 때문인 거 같죠? 사람 보는 눈이 있는 바퀴벌레예요, 사람 볼 줄 알아요. 막 끌어들이는 거죠, 내가”
“됐고요, 돈이나 좀 끌어 오셨으면 좋겠네요”
“아, 이렇게 공격하기 있나요? 약간 엄마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는데요~ 내가 그래도 당신 엄마거든요~ 알고는 있는 건가요?”
“네에~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제가 이길 거 같은데요~? 이거 효도할 기회도 안 주시고, 설거지 잘 부탁드립니다~ 푸하하!” 바퀴벌레 비가 내리던 날, 정신없이 중계를 펼치며 바퀴벌레 대전을 치른 우리는 불행을 느낄 틈이 없었다.
“엄마, 짜장면 먹고 싶어.”
“그래? 그럼 먹어야 되는데. 음. 우리 살짝 운동하고 먹을까?”
“전단지 한판 고?”
“고. 목표는 곱빼기다.”
외식을 하고 싶을 때면, 근처 아파트를 돌며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엄마와 짜장면을 사 먹었다. 전단지 붙이기도 우리만의 룰이 있었다. 같은 층에 올라가서 양쪽 끝으로 흩어진 뒤, 전단지를 붙이고 가운데서 만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게 한 층을 끝내는 방식이었다. 층마다 치는 하이파이브는 미션을 클리어하고 다음 층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순간이었다. 계단 오르기, 흩어지기, 붙이면서 가운데로 모이기, 하이파이브 착! 계단, 흩어져, 가운데로, 착! 계단, 고, 가운데, 착! 층을 오를수록 동작에 리듬이 생겼고 속도가 붙었다. 착착착! 흥도 났다. 하이파이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에 사람들이 주목을 할까 봐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도훈아 이리 와봐.” 한참 신나게 아파트 복도 반대편을 돌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왜?”
엄마 앞에는 문 옆에 늘어선 알록달록 꽃이 핀 화분들이 있었다.
“이 꽃 좀 봐. 예쁘지? 색깔이 어쩜 이렇게 샛노랗고 선명할까?”
“진짜 그러네. 무슨 꽃이야?”
“그러게. 채송화인가? 물어볼까?”
“집에? 아니 괜찮아. 주인이 놀랄 거야.”
“여기에서 저 복도 끝까지 한번 봐봐 도훈아, 다 조금씩 다르다?”
“뭐가?”
“이 집은 주변이 꽃밭이야. 이 옆집은 창문에 쇠창살이 엄청 많고 거미줄이 껴있고.”
“그러네, 무서운 게 많은 가봐. 안에 금이라도 숨겼나?”
“그러게 말이야.” 엄마가 빙긋 웃었다.
“저 앞은 애기들 타는 말이랑 세발자전거가 있네. 우리 도훈이도 좋아했는데 말 타는 거.”
“아 나 기억나. 놀이터에서 안 뺏길라고 몇 시간씩 타고 그랬는데. 다리 굳어서 엄마가 나 안고 들어 왔잖아.”
“하하하. 맞아. 너 골 때렸어 아주~”
“완전 인정~”
“야,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맞춰볼까?”
“여기? 꽃 키우는 사람?”
“응, 이런 꽃밭을 꾸밀 줄 아는 사람은 분명히 마음씨 좋은 사람 일거야. 생명을 소중히 하고 키울 줄 아는 사람이니까. 머리가 약간 희끗한 인자한 할머니가 아닐까?”
“음. 나는 꽃들이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컬러풀한 거 보니까 되게 밝은 사람일 거 같아. 밝은 색 옷을 입고 있을 거 같아”
“오, 셜록인 줄~? 그럴 수 있겠네. 그럼 네가 확인해봐.”
“확인? 어떻게?”
“초인종 누르고 누가 나오는지 보자. 어때?”
“오, 스릴 있어. 약간 재밌을 듯.”
“해봐. 해봐.”
“알겠어. 튈 준비됐어, 엄마?” 엄마가 손으로 오케이를 그렸다.
“간다 그럼.”
“띵동~ 띵동 띵동” 살짝 긴장됐다.
“누구세요?” 할머니 목소리였다.
“오,” 엄마와 나는 눈을 맞추며 하나 맞췄다는 신호를 보냈다.
“택뱁니다~” “택배요~?” 신발 신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튀어!’ 엄마에게 신호를 주고 나는 뛰었다.
달칵. “택배… 기사님?” 아뿔싸, 엄마가 걸렸다. 천천히 뒤돌아보는 엄마. 전단지는 급히 가방 속에 넣었다. “아,,, 제가 잘못 찾은 거 같아요~ 하하, 죄송합니다~ 꽃이 너무 예쁘네요,,, 색깔도 많고,,, 옷도 예쁘시네요,,, 꽃처럼,,,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엄마는 뒷걸음질 치며 아무말대잔치를 쏟아 놓고 재빠르게 복도를 돌아 나왔다.
“와 대박.” 계단에서 만난 우리는 흥분했다.
“진짜 대박.”
“다 맞췄어 우리. 그치?”
“어, 할머니 소리 들릴 때부터 나 소름.”
“나도. 나 할머니가 불러서 돌아보는데, 흰머리에 분홍 꽃무늬 옷 보자마자 놀랬잖아.”
“할머니 인상도 엄청 좋으셨어, 엄마”
“맞아 맞아, 하하하 나 마지막에 걸려서 죽는 줄 알았네.”
“깔깔깔, 난 당연히 엄마도 도망친 줄 알았어.”
“아이고 재미지다, 이제 짜장면 먹으러 갈까?”
“고고!”
“아 근데 오늘 성적이 한 그릇밖에 안될 거 같은데~”
“그럼 나눠 먹지 뭐~”
“응, 어머니는 짜장면 안 싫어해……좋아해…아주. 대신 조금만 먹을게~ 내 새끼 먹고 쑥쑥 커야 되니까.”
“엄마, 짜장면 드세요. 좋아 하셨잖아요.” 나는 막 비빈 짜장면을 제사상 위에 올려 두었다. “엄마, 나 예술가 됐다? 엄마가 재밌는 거 하고 살라고 했잖아. 찾았어 재밌는 거. 나 피규어 만들어. 영화 속 캐릭터 같은 거. 옛날에 내가 막 쿠킹호일 구겨서 발레리나 만들고, 미키마우스 만들고 했을 때 엄마가 되게 잘했다고 했잖아. 집에 전시해놓고. 그게 되게 기분 좋은 기억이더라고. 그 뒤에도 지점토 사다가 만들고, 나무토막 깎아서도 인형 같은 거 만들고 그랬잖아. 그게 내가 즐기는 일이었어. 결국 그게 직업이 됐어. 신기하지? 엄마, 이건 엄마 만든 거야. 엄마가 맨날 입었던 파란색 티에 청바지. 똑같지?” 나는 피규어도 상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 보고 싶네. 나도 엄마랑 놀았던 게 제일 재밌었다는 거 이야기했나? 갑자기 가서 이야기할 틈도 없었네. 우리 너무 갑자기 헤어졌어. 거기서도 잘 지내고 있지? 엄마 우리 각자 재밌게 지내다가 꼭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