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돌 Oct 23. 2020

시험관 시술이 미뤄졌다

난임 극복은 부부 공동의 몫

<밉지않은 관종언니> 라는 타이틀로 유튜브를 진행하고 있는 샾 출신 가수 이지혜가 최근 둘째 임신과 관련한 콘텐츠를 올렸다. 몇 개월 전 안타깝게 아이를 유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전에 얼려 둔 냉동 난자로 시험관 시술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예쁘고 건강한 딸을 기르고 있지만, 둘째에 대한 생각이 큰 듯하다. 시술 도전기라는 이름으로 차분하게 진행된 콘텐츠에서 이지혜는 이식을 앞두고 먹은 약을 설명하며, 이식 날에도 일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모든 정성을 쏟는 예비 엄마들에 비해 교만한 건 아닌가 걱정이지만 자신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라며 복잡한 마음을 밝혔다.

화면에 함께 등장한 남편은 남성 검사에 관한 이야기를 수줍게 전했다. 아무래도 시술은 여성 위주로 돌아가고 실질적으로 남편은 약이나 주사, 시술과는 관련이 없다. 몸 상태를 좋게 만드는 것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편은 이지혜가 먹는 약이나 시술 진행과정을 자세히 공유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혜는 여자들이 고생이 많다,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이면 슬프고 서운하다고 말했다. 난임의 원인과 상관없이 시술 과정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래도 함께 시술에 대해 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난임 극복은 부부 공동의 몫임을 잘 보여 준 영상이었다. 




이번 주,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좋은 수치는 아니지만 안정권이었던 남편의 검사 결과가 일 년 새 더 나빠진 것이다. 아침 일찍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남편을 기분 좋게 보내고 방심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의사는 재검을 권했다. 거기에 나 또한 40일은 넘기지 않던 생리가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 부부가 짜기라도 한 듯 문제가 생기며 시술 시기가 미뤄졌다. 요이~땅! 하면 달리려고 준비를 마쳤는데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고장 나서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소식을 듣고 한동안 무력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가득 찼다.


아프면 아프다 얘기하고 엄살도 잘 부리는 나에 비해, 남편은 참을성이 많다. 조용한 성격에 장남으로 자라서인지 매사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버릇이다. 대신 호오가 분명해서 취향이 아닌 일은 시작하지 않고, 가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남편이 싫어하는 부분만 건드리지 않으면 대체로 무난한 성격이다. 덕분에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사는 나는 남편과의 생활이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결혼 후 성격이 부드러워진 것도 남편 덕이다.


그런 남편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하니 시술이 미뤄진 것과 별개로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몇 번 몸살감기를 겪으면서도 괜찮다고 넘겨왔다. 좋은 영양제에 보식을 챙겨주니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난임으로 고생하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에 나에게만 집중하느라, 남편의 스트레스는 나 몰라라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코로나 사태로 회사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방팔방 바빴던 남편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체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체력을 쌓는 동안 남편은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부부가 아이를 갖는 일에 어려움을 겪으면 아내도 힘들지만 남편도 힘들다.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 결혼했는데,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서로를 원망하는 건 옳지 않다. 서로를 믿고 보듬어주려는 노력 없이는 행복을 바라기 어려울 테다. 시술에 대한 동의가 원만했기에 잊고 지냈다. 난임 스트레스는 아내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예상치 못한 변수에 힘이 빠진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어려움이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우리 부부를 위한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육아와 마찬가지로 난임 극복 역시 부부 공동의 몫이다. 아내에게 남편이 유일하듯, 남편에게 아내도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손만 잡으면 애가 탄생하는 게 아님을 안지는 오래지만, 이렇게 빡센 길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아이 이전에 남편이다. 아이는 부부로서 바로 선 후의 일이다. 하루 이틀 건강하고 말 일이 아니니, 건강 부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계획을 다시 짜 봐야겠다. 시험관 시술은 조금 미뤄졌지만 괜찮다. 8년을 기다렸는데, 몇 주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에는 잘해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