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인공수정 시작
신기한 일이다. 늦어지는 생리 날짜가 신경 쓰여 대충 날짜를 잡았더니 그날에 맞춰 생리를 시작했다. 게다가 당연히 시험관 시술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사가 인공수정도 가능할 것 같다며 선택의 여지를 주었다. 내려놓으면 얻는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의사 선생님도 '포기하면 오히려 잘 되는 경우가 꽤 있죠'라며 기운을 돋아준다. 그리하여 드디어 예정보다 한 달 늦게, 시험관 시술이 아닌 세 번째 인공수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 과배란으로 시작되는 시술이지만 이번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두 번에 걸쳐 과배란 부작용을 겪으며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일 년간 열심히 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호르몬에 취약한 몸뚱이는, 누군가에겐 통증도 없었다는 과배란 주사에도 극심한 두통과 요통을 느꼈다. 생리통에 배란통까지 심하게 겪는 편이라 예상은 했지만 과배란 과정은 생각보다 아팠다. 유연해지기 위해 땀 흘린 지난 일 년이 이번 시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배란 부작용은 조금 줄여주지 않을까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주사실. 부디 지난번 같은 통증은 없기를 바라며 무심한 간호사 언니 앞에서 당당하게 배를 깠다. 하지만 당당한 표정과 달리 배에는 힘이 너무 들어간 모양이다. '힘 빼세요'라는 말에 슬그머니 힘을 빼니 얇은 주삿바늘이 잡힌 배에 쑥 꽂힌다. '나머지는 직접 놓으실 거죠?' 2번의 경험이 있으니 당연히 자가주사를 놓을 거라 생각했는지, 간호사는 대답도 하기 전에 주사기를 챙겨 내게 건넸다. 기계적인 주의사항을 듣고, 어리바리 감사인사를 남기며, 주섬주섬 주사실에서 나왔다.
역시. 일 년의 운동 덕분인지 첫날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 통증이 없었다. 긴장한 탓에 피곤하기는 했지만 지난번 같은 두통도 거의 없었다. 역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스스로를 칭찬하며 일상생활을 했다. 약과 주사를 정리하고 보건소에 가져갈 서류를 챙겼다. 시험관이 아닌 인공수정을 할 수 있게 된 점에도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시험관을 권하지 않는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 케이스도 많다고 들었지만, 나의 경우 호르몬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임신하는 것이 목표다. 그 점 때문에,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큰 고민 없이 인공수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예사롭지 않은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머리가 조금 아픈가 싶어 바로 스트레칭 매트를 폈다. 살짝 무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괜찮겠지, 하며 평소처럼 아침을 먹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가볍게 산책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우웩
하고 욕지기가 났다. 순간 드라만 줄. '아가, 너 혹시 임신이니?' 할 정도의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와. 이것이 말로만 듣던 토덧의 느낌인가. 평소 위 건강이 좋지 않아 메슥거리는 느낌에 익숙한 편인데 이건 차원이 달랐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난 영락없는 임산부가 되었다. 불편함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파묻고 집으로 달려갔는데
우웨웨웨웩
산 넘어 산이었다. 위에서 변기로 한방에 내리꽂는 구토를 하고 말았다. 아침에 먹은 음식들을 모두 다 확인하고 나서야 구토가 멈췄다. 깨질듯한 두통은 덤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주사기를 찾아보니 지난번 주사와 약이 달랐다. 의사가 전과 다른 약을 처방한 것이다. 새로운 약이라 이런 건가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흔히 쓰이는 두 종류의 약 중 하나였다. 망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침대에 스르륵 쓰러져버렸다.
한동안 시체처럼 누워서 구역질 나는 두통과 싸웠다. 갑작스러운 통증은 약물 부작용일 수 있다는 인터넷 검색 내용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시 병원에 가서 약을 바꿔달라고 할까, 아니면 좀 더 참아볼까. 그나마 요통은 없으니 운동의 효과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당장의 통증도 걱정이었지만, 만약 임신을 한다면 이런 상황을 얼마나 여러 번 만나게 되는 걸까 하는 걱정병이 오랜만에 도졌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토덧, 먹덧, 체덧 같은 버라이어티한 입덧 경험담이 떠올랐고, 한창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전사 같은 친구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다들 정말 어떻게 엄마가 되는 거야. 무한의 존경심이 샘솟았다.
다행히도, 통증은 이틀 만에 서서히 진정되었다. 주사와 약을 추가했지만 같은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는 아마도 과도한 긴장 탓일 거라며, 다른 이상은 전혀 없으니 마음을 편히 먹으라 조언했다.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가벼운 산책과 반신욕을 반복했다. 수시로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고, 발밑에 온열기를 깔아놓았다. 몸을 이완시킬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며 유난을 떨었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갑작스러운 통증은 오지 않았다. 기대했던 운동빨이 생각보다 늦게, 하지만 확실하게 먹힌 모양이다.
아기 가질 거면 무조건 운동을 시작하라 권했던 친구들에게 존경심에 더해 무한 감사를 전한다.
짧고 임팩트 있는 통증과 함께 과배란 주사와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초음파로 확인한 결과 난포가 잘 자라고 있어, 시술 날짜도 확정 지었다. 혹여나 처음 같은 통증이 몰려올까 봐 조심스러운 생활 중이다. 음식도 가리고, 뛰지도 않고, 무리하지도 않으며 살금살금. 멀리 가야 하는 약속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임신 초기에 할 법한 행동을 과배란 때 하고 있으니 순간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통증으로 고생하는 것보다는 조금 웃긴 게 낫다. 자궁에 자극을 주어 배란을 독촉하는 약물 때문에 요즘 나의 생활은 누구보다 조신하고 얌전하다. 시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건강체라면 좋겠지만, 허약체로 태어난 이상 호르몬 주사에 의연하기는 힘들다. 그러니 섣불리 결과를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의 건강에 집중하는 쪽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