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치 난자를 모아 모아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시험관 시술이 끝나고 내내 불편했던 아랫배가 정상적인 생리와 함께 깨끗하게 나았고, 집 나갔던 멘탈도 무사 귀환했다. 뭐라도 쓰면서 다스리던 마음조차 흔들렸던 두 달간의 시간. 꽤나 여러 번 시험관 시술 과정을 적으려 시도했지만 실패의 기억 때문인지 매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엄마가 되기도 전에 마흔이 되었다. 무사히 찾아온 첫 생리를 기념하며 마무리 짓지 못한 시험관 시술의 기억을 복기해본다. 정확히 두 달 전의 일이다.
11월 세 번째 인공수정의 실패를 실감하기도 전에 오버랩으로 12월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시술을 위한 과배란은 이전의 세배쯤 되는 약물, 주사와 함께였다. 생리 2일째 받은 처방은 배란유도제인 프로기노바(약). 인공수정 때는 클로미펜(약)을 먹었는데, 쉬는 시간 없이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 자궁내막이 얇아질 것을 우려해 비슷한 약으로 변경했다. 일주일간은 약만 복용했고, 그 후 2주간은 주사 위주로 처방을 받았다. 기존에 격일로 놓았던 고날 에프(주사)를 이번에는 일주일간 매일 놓았다. 남은 일주일은 하루에 2번 멀티도즈(주사)와 세트로 타이즈(주사)를 놓았고, 채취 이틀 전에는 일명 난포 주사인 오비드렐(주사)까지 하루에 3번의 주사를 놓았다. 거의 간호사가 될 뻔했다.
이번 과배란은 12~15개의 난자를 키우는 것이 목표였다. 10개가 넘는 난자를 한 번에 키운다는 건 자궁이 일 년에 걸쳐 해야 할 일을 3주 안에 시키는 일이다. 어쩌면 무자비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이마저도 건강한 몸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일임을 안다. 겸손한 마음으로 시험관을 시작했고, 1의 기대와 9의 무념무상으로 배 왼쪽 오른쪽에 주사를 놓으며 3주를 보냈다. 인공 때와 다르게 배에 멍이 들고, 빨갛게 부어올라 가렵기도 했다. 토기와 두통, 무엇보다 무기력함이 몸을 감쌌다. 작년 12월 달력에는 줌 회의와 치과진료 기록이 분명 남아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사히 과배란의 과정을 마치고, 예정된 날짜에 난자 채취를 했다. 시험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난자 채취는 시술 중 유일하게 통증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아무래도 난자를 몸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니 자궁에 출혈이 있을 수 있고, 어느 정도의 통증도 생기는 것이다. 5분이면 마무리되는 인공수정과 달리, 30분 정도 걸리는 난자 채취는 무척 긴장이 됐다. 전날 금식을 한 채 대기실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릴 때도 묵직한 아랫배보다 실패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특히나, 채취 과정에서 복수가 차는 일이 간혹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더 겁이 났다. 복수도 문제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이식도 어려워지고, 혹여나 공난포가 나오거나 냉동배아가 생성되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무기력함과 통증을 뛰어넘는 긴장감을 안고, 시술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제는 익숙한 침대와 사물함. 차분하게 옷을 갈아입고 누워있으니 옆자리 사람에게 과정을 설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커튼 너머로 들려왔다. 내 앞에 미리 들어와 있던 두 명 덕분에 시술 과정과 주의사항을 더블로 들으며 그나마 긴장감을 조금 풀 수 있었다. 내게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간호사를 보면서 직업의 고충에 관해 잠시 생각하다가, 손등에 꽂히는 혈관 주삿바늘을 보고는 얼른 정신을 되찾았다. 가뜩이나 눈도 나쁜데 안경을 벗고 시술대까지 걸어가야 한다기에 다시 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설명을 듣고 먼저 시술을 받은 분이 비틀비틀 원래의 침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불렸다. 군인처럼 벌떡 일어나 흐릿한 복도를 씩씩하게 걸었다. 그동안 키운 난자들이 무사히 나오기를 기원하며, 자궁이 튼튼하게 버텨서 복수가 차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수면마취를 한 상태에서 헛소리 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조신하게 시술대에 누웠다. 차가운 시술실 공기가 나를 감싸고... 그나마 따뜻했던 의사의 목소리에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나와 남편의 이름이 기계음으로 울려 퍼졌다.
"시술 시작합니다. 힘 빼세요"
최선을 다해 힘을 뺐는데, 왜 시술을 시작하지 않지? 하고 의문을 가질 때쯤,
"끝났습니다. 일어나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역시. 나는 수면마취약이 참 잘 듣는 스타일이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