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돌 Feb 21. 2021

시험관 시술의 마무리 배아 이식 #2

몽글몽글한 배아 사진에 들뜨는 마음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비몽사몽간에 아픈 건지 아닌 건지 헷갈렸다. 30분 후 화장실에 가서 피가 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는데, 갑자기 훅! 하고 통증이 밀려왔다. 이건 필시 누군가 내 배에 훅을 날린 듯한 통증인데. 맞아본 적은 없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쎈 통증이 밀려왔다. 아.. 아프다더니.. 진짜네.. 그렇게 30분간 통증에 시달리며 누워있었다. 다행히도 시술은 큰 출혈 없이 끝났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시술실을 나와 보호자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가니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각자의 아내를 기다리던 남편들의 시선이 특히나 분주했다.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우리 남편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나를 부축했다. 덩달아 긴장한 남편의 모습이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인공수정 때와는 사뭇 다른 컨디션으로 병원을 나서는데 기분이 묘했다. 몸이 아프고 무거워 힘든 점도 있었지만 무사히 채취했다는 성취감도 있었달까.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진통제 처방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아랫배의 통증은 생각보다 심했다. 특히 시술 당일 저녁에 거즈를 꺼내는 일이 고역이었다. 출혈을 막기 위해 채워놓은 거즈는 끝도 없이 나왔는데, 요령 없이 힘으로 당기다 보니 끝에 가서는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였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친구들 말로는 수술 후가 더 빡세다고 하더니, 이런 종류의 불편함이지 싶었다. 몸에 인위적인 일을 해놓고 다시 되돌리는 건 역시 예삿일이 아니다.


몸을 추스르는 사이, 수정을 마친 배아도 병원에서 잘 성장하고 있었다. 예정된 일정에 따라 채취 3일 후 배아를 이식했다. 이식 과정은 간단해서 따로 준비할 것은 없었다. 인공수정 때처럼 따뜻하게 배아를 품어 줄 마음의 준비 정도. 7개의 배아가 수정에 성공했고, 이 날은 2개의 최상급, 상급 배아를 이식했다. 난임 카페에서 자주 보던 몽글몽글한 사진을 나도 받았다.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고 하던데, 뱃속에 심어질 배아의 사진을 보니 왠지 모를 책임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벌써부터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카페에 '배아 사진 너무 예쁘지 않나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식까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다시 기다림의 2주가 시작되었다. 벌써 네 번째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시간이다. 널뛰는 마음과 가라앉히려는 마음이 싸우는 동안 손은 어느덧 임테기에 가 닿아있다. 그동안 사모은 임테기 값이면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을 거라는 사연을 라디오에 보내 당첨된 적도 있다. 수박주스를 받았지 아마.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 보지만 신경은 자꾸 배로 향한다. 이 시간이 버거워 요가와 명상을 하고 글도 쓰기 시작한 거였는데. 역시나 마의 2주는 녹록지 않다.


정신없는 2주가 지나고, 테스트기의 진한 한 줄을 보며 낙담을 하기도 전에 냉동배아가 0개라는 통보를 받았다. 소중하게 품고 있던 두 개의 배아가 착상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혹시나 했던 냉동배아마저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시술 직후처럼 마음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신선과 냉동 모두 실패라는 건 지금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의 기대와 9의 무념무상으로 시험관 시술을 버텨내리라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1의 기대를 2,3으로 높여준 배아 사진과 냉동 배아에 대한 기대가 나를 더 큰 좌절로 몰아간 듯 해 원망스러웠다. 


두 달이 지난 시점에 돌아보니, 그동안 왜 글을 쓰기 힘들었는지 명확해진다. 말로는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다고 했지만, 이번 시술에 내 마음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큰 기대를 걸었다. 그 결과, 고차수 시험관 시술을 하는 분들을 보며 겁먹었던 바로 그 지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그 상황에서 무기력이라는 증상을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무심한 듯 흐르는 시간 속에 스며있는 치유의 힘이 몸과 마음을 원상태로 복구시켜 주었다. 희망이나 낙관은, 시간을 들여 충분히 힘들어한 후에 찾아온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다. 고로, 몽글몽글 귀여운 배아 사진이나 냉동에 실패한 배아들은 잘못이 없다. 다시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만이 중요한 시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험관 시술의 꽃 난자 채취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