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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Apr 28. 2021

익숙함이 주는 불안함

난임병원 다닌지 벌써 4년

더 지체할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난임병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4년이 지났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했으니 같은 공간에서 지낸지도 4년이 되었고. 한두번 시술이면 임신을 할테니까 아기가 어릴때까지 여기서 키우다가 두돌쯤 되면 이사를 갈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임신은 커녕 곧 5번째 시술을 앞두고 있다. 계획에 따라 이사를 가야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둘이다. 낯설기만했던 병원은 익숙해졌고, 마을버스로 병원가는 길은 친숙해졌다.


4년의 시간동안 나를 채운 건 글쓰기와 독서모임, 헬스와 요가, 주사와 약물, 기대와 실망, 조급함과 게으름 등이었다. 호기롭게 달려들어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인생사 목표한대로 착착 이뤄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스스로를 위로해 봐도, 여전히 제자리 뛰기만 하고 있는 나는 확실히 4년전보다 기운이 빠져있다.


얼마 전 친구 두명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 소식을 알렸다. 한 명은 초산, 한 명은 경산. 공교롭게도 둘 다 출산을 한달 앞두고 연락이 왔다. 시시콜콜 일상을 나누던 시절은 이미 지났으니, 지금이나마 연락을 해 준 것이 고마웠다. 너무너무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소리내어 울었다. 행동과 사고가 완전히 어긋난 상황에 스스로도 놀랐지만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다고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


친구 뿐 아니라 난임글을 적던 블로거의 임신 소식에 샘이 나고, 여러번의 실패로 영상을 닫아버린 유튜버를 보며 겁이 난다. 임신을 하고 나면 다시는 들어가보지 않는다는 카페도 무섭고, 아닌걸 알면서도 자꾸 사들이는 테스터기도 신물난다. 아파트 앞을 산책하는 조그만 아기들을 보면 난데없이 눈물이 터진다. 난임을 통과하는 이 시간이 힘들다. 5번째 시술을 앞둔 나는 지금 몹시 조급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감춰왔던 불안이 자꾸 고개를 내민다. 익숙함이 주는 불안함에 어딘가 고장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 속에 있는 불안함을 모른채 하지 말자. 불안함이 가져오는 조급함에 잠식되고 있는 지금 상황을 외면하지도 말자. 이 핑계 저 핑계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짓도 그만두자. 맘껏 힘들어하고 조급해하자. 어떻게든 표출하고 내뱉어보자. 언제든 터져나올 준비를 하며 목끝에 걸려있는 울음을 나약함의 증거라 치부하지 말자. 그냥 지금의 나를 인정하자.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 하는 걸로 이 시간을 버텨보려 한다. 힘들지만, 무너지기는 싫다. 되도록이면 정돈된 마음을 글로 적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힘들기에, 그저 솔직한 마음을 적어보았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진리가 내게도 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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