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술로 마무리된 시험관 시술
'소파술을 진행해야겠네요.'
말로만 듣던 계류 유산이었다. 호르몬 수치가 제자리걸음일 때부터 직감했다. 배아가 건강하지 않아 잘 크지 못할 확률이 90%라고 했을 때도. 한 달간 마음을 졸 일대로 졸인 후였고, 자궁 외가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난임 카페에서 관련 단어만 쳐도 주르륵 나오는 실패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에 놀라지도 않았다. 진료실 앞 편안한 소파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이런 얘기를 들어봤겠지. 어렵게 찾아낸 작은 배아를 떠나보내기로 결정한 날은 의외로 담담했다.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지긋지긋한 채혈과 심전도 검사를 하면서도 별 느낌이 없었다. 다만 모든 검사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기 전에 임산부를 위한 푹신한 의자에 조금 오래 앉아있었다.
수술 당일의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전날 싸이토텍정을 먹고 밤새 설사를 하느라 한숨도 못 자서다. 겨우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고, 시술실이 아닌 수술실로 올라가 이동식 침대에 누웠다. 유난히 아팠던 손등 혈관주사를 꽂은 채 옆자리 환자의 준비과정과 이동 소리를 들었다. 비몽사몽 간에도 전해지는 긴장감에 심호흡을 몇 번 했던가. 이름이 불린 후, 안경과 마스크를 벗고 수술실로 걸어갔다. 클리셰처럼 펼쳐진 차가운 공기와 하얀 천장, 무심한 듯 바쁜 간호사들 사이에서 수술대에 누우니 그나마 익숙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스르륵. 눈을 뜬 곳은 대기하고 있던 이동식 침대 위였다.
진통제 덕분인지 수술 후 통증은 난자 채취보다 덜했다. 간호사가 알려주는 주의사항도 간단했다. 2주간 과격한 운동이나 사우나는 금하고, 일상생활을 하되 무리하지 않으면 된단다. 특별히 금해야 하는 음식도 없었다. 어쩐지 싸늘한 기운을 안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전날 잔뜩 끓여놓은 미역국을 먹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남편에게는 오후에 출근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고, 안절부절못하던 남편은 떠밀리듯 집을 나섰다. 통증이 없기도 했지만, 어쩐지 혼자 있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몇 시간 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후 3일간의 약 복용, 10일간의 출혈과 간헐적인 통증을 겪고 나서 소파술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처 자라지 못한 생명을 자궁내막에서 긁어내는 과정. 수술보다 시술에 가까우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수술 전 많이 들었다. 실제로 큰 통증이나 후유증 없이 끝난 걸 보면 맞는 말인 듯하다. 인터넷 카페에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난임 카페가 아닌 맘 카페에도 많았고, 여러 번의 수술을 받은 분들도 있었다. 실제로 부인과에서 가장 자주 진행되는 수술이기도 하다. 소파술을 받게 됐다는 말에,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고백을 하는 주변인도 꽤 있었다. 힘들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 없었고, 대부분은 이런 경험 후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초기 유산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다양한 위로의 말 중 의외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2년 전 화학적 유산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뱃속에서 아이가 더 크면 그만큼 위험도가 높아지고, 신체적 정신적 무리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유산'과 '다행'은 앞뒤가 안 맞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불행 중 다행. 최악은 아닌 상황. 경험치가 쌓일수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한 마음이 커진다. 아마 이런 마음은 비단 임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거다. 인생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테다.
인위적으로 난자를 채취해 시험관으로 수정을 시키고 그걸 자궁에 넣었다가 잘 자라지 못해 빼내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허망함에 빠지기도 한다. 실험실의 생쥐가 된 것 마냥 무력감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 같은 순간에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멀쩡한 정신으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4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초기 유산이라서 다행이라는 말에 발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내면의 한 부분이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최근 즐겨보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 아이를 유산한 환자 케이스가 나왔다. 드라마 속 임산부는 조산 위험이 있었고, 너무 빠른 시기라 그대로 아이를 낳으면 사산의 가능성이 컸다. 처음 환자를 담당한 의사는 너무 위험하니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환자는 다른 의사에게 부탁해 임신 기간을 더 유지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두 번째 담당의는 임산부와 아이의 의지를 생각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아이는 먼저 엄마 곁을 떠났다. 무뚝뚝한 성격의 주인공은 고생한 부부와 아이를 위해 산부인과 교과서 첫 장의 글을 전했다.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 뱃속에서 제법 큰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에 나를 투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큰 위로가 되는 한 줄이었다.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학부모가 되어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마흔 살이 이런 모양새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배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보다 더 큰 행복이 찾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고생 많았을 나의 작은 배아에게도 이제 진짜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