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돌 Jan 17. 2020

시험관 시술을 자꾸 미루는 이유

그냥 겁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시간이 참 빨리도 흘러간다. 마흔 전에 학부모가 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지 오래고 마흔 전에 부모가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계획과 기대에 가슴이 부풀다가도 임신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바닥을 쳐다보게 된다. 미뤄둔 숙제처럼 여겨질 때 가장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 생각을 줄이려고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지만 한 번씩 고개를 드는 생각에 심난해지는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는 밝았으니, 올해도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짠다. 굳어 있는 몸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한 해가 되고자, 정기적으로 마사지도 받고 매일 반신욕도 할 예정이다. 근력운동보다는 요가에 집중하고 많이 걸어 다니려 한다. 살도 좀 빼야겠지만 몸의 순환에 더 신경 쓸 생각이다. 건강해진 내 몸을 계속 상상하며 자주 스트레칭을 할 거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하다. 아, 작년 초에도 이 비슷한 계획을 세웠었지. 


비슷한 계획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작년과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시험관을 하겠다고 하면서 자꾸 미루는 나를 그만 탓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이 내켰으면 진작에 했을 일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가 뭘까 가만히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어떡하지, 겁이 났다. 시작도 안 해보고 그렇게 겁낼 것 뭐 있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나는 심각한 겁쟁이였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다. 난임을 극복하겠다고 글까지 쓰면서 정작 시험관 시술 앞에 벌벌 떨고 있는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금쪽같은 한 달 한 달을 아깝게 흘려보내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병원에는 가지 않는 내가 밉기도 하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겁먹어 얼어버린 어린애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 있다.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내 무의식은 알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이 도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올해는 나를 좀 달래주려 한다. 그동안 세웠던 새해 계획과는 조금 다르게 마음에게도 계획의 한 칸을 내주기로 했다. 나를 다그치지 말자. 겁쟁이라도 괜찮으니까 억지로 강해지려 애쓰지 말자.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몸을 책임져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니까. 굳어 있는 몸을 펴려고 강제로 힘주지 말자. 따뜻하고 포근하게 달래주자. 시험관 시술 앞에 떨고 있는 나를 겁쟁이라고 다그치지 말자.




진짜 아이가 갖고 싶은 거 맞냐고, 그럼 왜 시험관은 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냥, 겁나서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 거라 호기롭게 내뱉은 말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새해가 되었으니 핑계 김에라도 솔직해 지기로 한다. 무서워서 못했다. 실패하면 감당하지 못할까 봐 올해는 조금 여유를 두기로 했다. 한심해 보여도 별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