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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Apr 27. 2020

이제 겨우 내 차례가 됐는데

기회를 놓친 나를 탓하기가 지겨워서

유난히 고무줄을 잘하던 A는 그날도 쉬지 않고 뜀박질을 해댔다. 고무줄 위에서 날아다니는 A를 쳐다보느라 목이 아플 지경. 그녀의 현란한 개인기는 고무줄을 머리 위로 올려 받쳐주어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이 판만 지나면 나도 할 수 있겠지 싶어 아픈 다리를 앞뒤로 흔들어가며 순서를 기다렸다. 좁은 골목은 얼굴이 벌겋게 익어 땀을 흘리는 여자애들의 열기와 숨참으로 가득했고, 그 안에 속해있던 나는 곧 내 차례가 온다는 생각에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야, 너 줄 밟았는데 왜 계속 해~~!!"


A의 독주가 얄미웠던 B는 A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며 지켜보다 줄을 밟아놓고 안 밟은 척 넘어가는 A를 지적했다.


"뭐!! 나 안 밟았어~~!! 너네 내가 밟는 거 봤어??"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상황은 A와 B의 말싸움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쏟아내는 B와 그에 지지 않는 A의 말발에 나머지 아이들은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고무줄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는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저 둘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할 뿐이었다. 결국 둘은 서로를 한참 째려보다, A와 B를 추종하는 각각의 친구들에 둘러싸여 집으로 돌아갔다.




남겨진 건 내가 챙겨갔던 고무줄과 결국 한 번도 뛰어보지 못한 나.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 뒤 텅 빈 골목에 서 있던 나는 애꿎은 고무줄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내가 고무줄을 뛰지 못했다는 걸 아는 사람도, 그 사실이 속상한 사람도 나 하나뿐이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를 눈물은, 주인을 닮아 눈치도 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날의 햇살과 동네 풍경은 아직도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너무 억울하지만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어 병신 같은 나를 자책했던 기억이다.


그 후로,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그때 고무줄을 들고 분한 울음을 쏟던 아이의 심정을 느낀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것을 확 빼앗긴 느낌. 물론 어른이 돼서 내가 빼앗긴 건 고무줄을 할 기회 정도가 아니다. 더 크고 다양한 것들을 빼앗겼다.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그 무언가를 빼앗긴 나는 늘 나를 탓했다. 아이고, 또 뺏겼니. 나는 빼앗긴 내 권리를 찾아오지도 다른 권리를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그냥 나쁜 기억으로 묻어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어린 시절 그때의 나처럼.




유리 멘털. 눈물이 많고 작은 일에도 잘 놀라며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고, 기분이 얼굴로 다 드러나는 사람. 누가 봐도 사회생활 하기 참 어려운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조직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고무줄을 빼앗기면 그저 도망가기 바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럭저럭 살만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다 나 때문이라는 책망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런 내 성격과 어이없는 직장 생활담을 써보고 싶었다. 쓰면서 털어내고 싶었다. 


역시나 개복치 같은 성격은 글로 삐져나오려는 내 과거를 막고 있다. 누가 보면 흉볼까 봐 겁나기도 하고, 아직도 나는 내가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써도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음을 느낀다. 내 속에 풀어내지 못한 마음을 가득 안고서는 더 발전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이성과 감성 모두가 나의 지질했던 과거를 고백해보라고 유혹한다. 아마도, 이제 시간이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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