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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y 10. 2020

오빠가 넘어졌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얀 벽지로 도배된 작은 신혼집. 남편은 소파 위에, 친정 오빠는 소파 아래 등을 기대앉아 있었고, 나는 오빠 맞은편에서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앙증맞은 커피잔을 들고 있있다.


"수술할 의사는 다 알아봤어."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꼭 쥔 커피잔 손잡이가 덜덜 떨려 커피가 흘러내렸고 당황한 나는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진짜구나. 눈이 따가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뇌종양 쪽에서는 제일 유명한 의사야."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지 모를 분위기 속에 오빠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남편은 떨리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전두엽에 자리 잡은 종양은 수술 가능한 위치고, 악성이지만 초기라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고 다독이는 오빠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세 살 터울의 오빠는 나의 정신적 지주였다. 스무 살 이후 많은 방황을 할 때도, 중심을 잃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복학생 스타일의 오빠는 언변이 좋고 낯가림이 없어 추종하는 사람만큼 적도 많았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해냈기에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스물다섯의 오빠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보낸 메일은 여전히 내 인생의 등대 같은 말로 남아있다.


'사람은 25살까지는 부모의 도움으로 크고 30살부터는 자식을 위해 살고 60살부터는 죽음을 천천히 준비한다고 해. 25살부터 30살까지가 인생의 빛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오빠는 35살부터 죽을 때까지를 내 인생의 빛으로 만들려는 준비를 하고 있어. 내 인생의 빛으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괜찮을 거야. 내가 어떤 길을 어떻게 걷게 될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놓인 길 앞을 당당하게 걸어가면 좋은 곳에 도착할 거라는 직감이 있어. 너도 너의 앞에 놓인 길을 즐겁고 씩씩하게 걷길 바라.'




그런 오빠가 넘어졌다.


서른여섯.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한 집안의 가장. 만학도 시절을 거쳐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직장인. 청천벽력 같은 뇌종양 판정에 온 가족이 흔들렸다. 환자 가족이 있는 집이 많다지만, 막상 내 일로 닥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수술 자체도 걱정이었지만 뇌 수술이 가져올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한 생각에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공포감과 함께 이어진 자책. 오빠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내 감각을 깨우기 시작했다. 칼날 같은 기억의 조각은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소환했고,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내가 알던 세계가 찢어지고 선명했던 일상은 회색으로 뒤덮였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찢어진 하루의 틈을 메우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으로 아무렇게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겨우겨우 나를 다잡았다. 지금은 다시 읽을 수도 없는 글들이 나를 조금씩 살게 했다. 넘어진 오빠를 응원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올곧게 서서 넘어진 오빠를 내 손으로 직접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계속 쓰고 또 썼다.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가고, 오빠는 다시 일어섰다.


투병 기간 동안 오빠 옆에 딱 붙어 함께 병원에 다니면서 우리는 그 전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성공적인 수술과 본인의 강한 의지, 가족의 열렬한 응원 덕분에 오빠는 큰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오 년째 이어지는 정기검진을 무사히 통과하면 당분간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자잘한 후유증으로 전과 같은 생활은 어렵지만,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다. 


긴 터널을 지나며 어딘가 변해버린 오빠를 보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오빠 덕분에 나는 나를 다스리고 가족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막연한 꿈으로 간직하던 글쓰기가 위기의 순간 나를 살리는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 시작에 오빠가 있다는 것이 먹먹하면서도 벅차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글을 쓰고 있지만 내 글의 시작은 여전히 오빠다. 정신적 지주였던 오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나를, 그리고 오빠를 살린 글쓰기를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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