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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04. 2020

둘이 살면 심심하지 않니?

8년 차 아이 없는 부부에게 쏟아지는 질문 


"내 이야기 인터넷에 올려도 될까?"


내가 쓴 글을 인터넷에 올리려고 마음먹은 날, 처음으로 고민에 빠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끌리는 대로 글을 쓸 때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글의 당사자는 나와 남편이다. 우리 부부의 일이다. 마냥 행복한 글이라면 허락 없이 올려도 무방하겠지만, 전혀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읽게 되면 상처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격하게 반대하면 포기, 불편해하는 정도라면 설득. 떨리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그리고 남편의 대답.


"응. 괜찮아.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해요"


괜히 쫄았다 싶을 정도로 쿨한 대답. 역시 남편다웠다. 사실 허락할 줄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답을 듣고 싶었던 거다. 남편은 대신 자신을 욕하는 글은 쓰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주인공은 나고 당신은 조연이라 그렇게 비중 있게 등장하지는 않을 거라 답해주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멋지게 그려달라기에, 하는 거 봐서~라고 대답했다. 잠시 째려보는 표정을 짓더니 금세 부엌에서 바나나를 가져와 '먹을래?'라며 눈앞에서 흔들어 댔다. 




남편과는 20살 대학 오티에서 처음 만났다. 어쩌다 같은 동아리에서 대학 4년을 함께 보냈고, 잠시의 이별을 빼면 8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도 나도 친구가 많지 않아 둘이 노는 편이고 세대가 같으니 공유하는 추억도 많다. 동갑내기에 비슷한 취미를 가졌지만 정작 취향은 다른 우리는, 영화관에 함께 가서 다른 영화를 보고 다시 만나 함께 밥을 먹는다. 말 그대로 베스트 프렌드 같은 존재다. 


처음 친구로 만났을 때는 연애를 할 거라 상상 못 했고,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결혼을 할 거라 상상 못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가 없이 지내게 될 거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나도 예상 못 한 일인데, 남들 눈에도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겠다 싶긴 하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자연스럽게 대답하지만, 답하기 애매한 질문 베스트는 이거다.


"둘이 살면 심심하지 않니?"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 이 질문에는 '아이를 안 갖는 거니? 못 갖는 거니?'라는 호기심이 섞여 있다. '결혼했으면 아이는 있어야지'라는 믿음과 함께. 여기다 대고 "제가 안 가지려고 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막 적극적으로 가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시도는 해봤는데 잘 안되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래도 문득 아이가 갖고 싶기도 하고, 계속 마음이 바뀌네요"라고 대답한다면 듣는 사람도 나도 피곤하고 불편해지기에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전혀요."


기분 나빠서 하는 대답이 아니다. 진심이다. 그저 돌려서 물어보는 질문에 굳이 해명하지 않겠다는 거다. 우리는 여전히 농담 따먹기를 하고 서로를 놀리는 재미로 살고 있다. 조카나 친구의 아이들이 커가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우리도 나이를 먹는구나 느끼지만 둘만 있을 때는 체감이 어렵다. 20대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유치하게 놀기 때문이다. 




새댁인데 왜 아이가 없냐 혹은 딩크냐 하는 다이렉트한 질문에는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답하고, 그 뒤에 따라오는 비법들은 감사하게 듣는 편이다. 그냥 내가 먼저 아직 아이가 없는 주부라고 밝히게 된 것도 그런 질문을 하도 듣다 보니 나름 터득한 방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둘 사이가 나빠질 수 있으니 아이를 가지라는 조언은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아이가 있어야 부부관계가 유지된다는 우리나라의 통념에서 나 역시 아주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7년의 경험으로 봤을 때 둘이 사는 것도 충분히 행복하다. 부부관계는 아이의 유무가 아니라 두 사람 간의 관계 문제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는 점이 갈등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갈등을 잘 풀어나가고 있다.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는 오히려 그 아이가 갈등 요소일 가능성이 크다. 그 갈등을 얼마나 잘 해소하냐는 그 부부에게 달린 문제다. 아이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남편의 배려 덕분이다. 회사 대신 재택근무를 선택했을 때도, 친정에 신경 쓰느라 집안일에 소홀했을 때도, 여러 이유로 일을 그만두었을 때도 남편은 No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남편을 잘 합의된 아이 문제로 괴롭히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속내를 모르는 질문 때문에 힘들어하게 두고 싶지 않다. 


둘이 살면 심심하지 않냐고요?

전혀요. 

심심해서 아이를 가지려는 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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