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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07. 2020

문제는 조급증과 욕망이야

곰돌이 푸와 논어가 난임 주부에게 알려준 것들

저마다 인생의 속도가 다르다지만 유독 나 혼자 뒤처지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한 달 한 달이 아쉬운 난임 치료자에게 주변 임신 소식만큼이나 속 타는 날이 바로 홍양을 만나는 날, 생리하는 날이다. 치료의 기준이 되는 날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주는 소중한 날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또 실패했다고 느끼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럴 땐 따뜻한 차와 온열팩으로 몸과 마음을 달래 보지만 통증이 심한 날엔 이마저도 소용이 없다. 


참아보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진통제를 집어 들면서 '나는 왜 이럴까' 자책을 하는 날에는 조금 다른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린다. 안정감을 주는 책 읽기. 그 첫 번째 책은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다. 짧은 글들의 모음이라 읽기도 편하고 문장들을 가만히 되새기다 보면 마음에 위안이 된다. 몸에는 진통제를 마음에는 곰돌이 푸를 처방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이 쓰일 때는
내 마음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곰돌이 푸의 조언대로 조심스레 들여다본 내 마음에는 아주 다양한 짜증의 원인이 있지만 그중 팔할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조급증이다. 남들보다 늦어지고 있는 삶의 사이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꽤나 크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다른 문제다. 비교에서 오는 고통이 나를 더 안달 나게 만들고 스스로를 모지리로 몰아간다. 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을 텐데 싶을 때쯤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문장.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나를 놓지 말아요 


내 마음을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라며 푸가 나를 위로한다. 또 흔들릴 걸 알지만, 그래도 이 문장을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 중심이 잘 잡혀있다면 책의 제목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남들보다 늦은 건 사실이고, 조급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없다. 행여 내가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갔었다 한들 고민이 없었을 리가. 이런 생각에 미치면 조급해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조급증이 극에 달하는 날 읽으면 특히 효과가 좋다.




사실 놀랍게도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논어가 바탕인 책이다. 논어라 하면 공자님 말씀을 담은 책인데,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이 책이 어떻게 내 마음을 녹이는 걸까.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가 전해주기 때문은 아닐 거다. 아마도 고전에 담겨있는 통찰 때문일 거다. 곰돌이 푸가 논어의 메시지를 순화된 언어로 전해주기에 그 내용이 힘 있는 문장으로 나에게 와 닿은 것 같다.


최근 읽게 된 또 한 권의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곰돌이 푸가 나에게 주는 위안의 뿌리를 논리적으로 풀어주었다. 워낙 내용이 어려워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전이 주는 즐거움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저자 김영민은, 고전은 변치 않는 근본 문제에 대해 답을 제공한다기보다, 근본 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고 전한다. 

논어가 전하는 이러한 공자의 페르소나는
실로 삶이라는 유일무이한 이벤트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통증이 심한 날 읽기에는 조금 곤란하다. 읽다 보면 당이 떨어지고, 허리가 더 아파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컨디션 좋은 날 마음 먹고 찬찬히 읽어 나가면, 문장의 맛 덕분에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곰돌이 푸의 문장들이 더 설득력을 얻기도 하고. 저자는 시종일관 공자의 편에 서서 논어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다. 그중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배움을 강조하던 공자가 성공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스스로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다. 정치적으로는 실패한 사람이지만 삶이라는 유일무이한 이벤트에 집착한, 서투른 열정의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곰돌이 푸와는 다른 차원에서 나를 위로했다. 욕심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에 지쳐가던 시기에 만났기 때문이다. 난임 치료라는 것이 그렇다. 모든 걸 내려놓은 채로 치료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욕망과 내려놓음 그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집착했다는 공자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다. 지금의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되 그 욕망이 스스로를 갈아먹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논어를 해석한 글에서 위안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신혼 초 바로 아이를 낳고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면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글들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논어의 내용에서는 전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지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고전을 해석한 글을 찾아 읽지 않았을까 싶다. 김영민 저자의 말대로 고전은 당대의 문제와 힘겨운 싸움을 한 사람들이 남긴 텍스트다. 시대가 달라져 적용 범위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 노력과 통찰은 살아남아 후대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조급증과 욕망에 관한 내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의 길을 찾아냈다. 텍스트를 공들여 읽으며 세상을,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쓴 결과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한다. 앞으로도 이 취미는 계속될 것 같다. '논어'라는 단어처럼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독서'는 마음을 다스리기는 데 의외로 적극적인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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