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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10. 2020

난임 시술을 견디려 쇠를 들었다

 헬스장에서 굳은살 생긴 사연 1

2년 전, 첫 번째 인공수정에 실패하고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과배란 과정에서 겪었던 허리 통증이다.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허리 통증 때문에 병원 가는 버스 좌석에 앉다가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건 임신을 해도 심각한 문제가 되겠다 싶어 본격적인 운동을 다짐했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집 앞 헬스장이었다. 상가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헬스장. 돈을 좀 들이더라도 전문가에게 잘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PT 상담을 신청했다.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경상도 억양이 진하게 밴 트레이너의 질문에 살짝 머뭇거리다가 시술 이야기를 꺼냈다. 허리가 좀 약한 편이긴 한데 이번에 유독 힘들었다고. 다음 시술 전까지 몸을 좀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트레이너는 부산에 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근육량을 늘려서 미리 몸을 탄탄하게 만들어 놓아야 임신 후까지 든든할 거라고 말했다. 고령의 난임 시술자의 임신 성공기를 들으며 나도 트레이너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량이랑 체지방량 비율이 거꾸로네요"


희망적인 상담의 마무리는 역시 인바디 체크였다. 살이 좀 쪘다고 느끼긴 했지만, 전에 본 적 없는 체지방량에 깜짝 놀랐다. 고단백이 좋다길래 열심히 먹고, 거기에 맞춰 탄수화물까지 열심히 먹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거기다 시술 후엔 움직임도 최소화했고. 겸허히 몸 상태를 받아들이고 운동 스케줄을 잡았다. 우선 3개월 정도 주 3회 근력 운동을 하기로 했다. 헬스장에 있는 기구들을 혼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는 것이 목표였다.




잠시 근력운동에 관한 짧은 덧붙임. 흔히 말하는 3대 500은 헬스장 운동 중 근력을 늘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다. 스쾃,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이 세 가지 운동으로 들 수 있는 무게가 총 500kg을 넘으면 '나 3대 500 쳐, 쇠질 좀 했어'라고 말할 수 있다. '쇠질, 무게를 친다'는 '근력 운동, 무게를 든다'라는 뜻의 헬스장 은어다. 3대 500의 연관검색어는 김종국이. 그 외에도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내용이 많겠으나, 나는 보잘것없는 헬린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우, 이건 안될 것 같은데요"


쇠막대기 앞에서 또다시 밀당이 시작됐다. 2주 정도 자세와 사용법을 배웠으니 이제 무게를 점점 높여야 하는데 혹시나 들지 못할까 겁이 났다. 5kg짜리 원판을 슬그머니 들고 와 서 있는 트레이너에게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발사해보지만 먹힐 리가. 일단 해보고 안되면 빼주겠다는 협상에 마지못해 쇠막대기 앞에 선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막대기를 들었는데, 번쩍! 어, 이게 왜 들리지...


"잘하시네요. 한계를 조금씩 넓혀야 운동이 됩니다"


늘어난 바벨 무게 때문에 팔과 다리가 떨리고 땀이 났지만, 무언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겁을 내고 적은 무게에만 도전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쾌감이다. 한 번 그 느낌을 알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혹여나 너무 무거워도 옆에서 도와줄 선생님이 있으니 믿고 도전해보았다. 다음 시술도 쉽지는 않겠지, 아기를 낳고 기르는 건 이것보다 훨씬 어렵겠지, 나이 들어 아픈 것보다는 지금 힘든 게 낫겠지, 하며 순간순간을 넘겼다. 그렇게 슬금슬금 무게가 늘어나 3개월 후에는 데드리프트로 내 몸무게에 가까운 바벨을 들게 되었다.


"근육량도 늘었네요"


3개월 만에 재본 인바디에는 전보다 높아진 근육량이 찍혀있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늘어난 근육량을 보니 뿌듯함이 컸다. 이래서 헬스 하는 사람들이 근손실을 그렇게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꾸준히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근육이 순식간에 빠지면 정말 허망할 것 같았다. 


근력운동이 없는 날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저녁을 조금 줄였더니 체지방도 어느 정도 빠져있었다. 게다가 꾸준히 한 운동 덕에 허리 근력과 컨디션도 훨씬 좋아졌다. 1시간 정도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난 후의 상쾌함도 물론 좋았다. 쇠막대기를 들면서 몸에 힘을 빡빡 주는 행위가 언뜻 과격해 보이지만 적어도 나에겐 효과 만점이었다. 많은 사람이 하는 운동에는 이유가 있음을 새삼 느꼈다. 





"자기, 손에 굳은살 배겼어!!"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넋이 빠져 소파에 앉아 있는데, 문득 내 손을 잡은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곱고 곱던 내 손바닥에 진짜 딱딱한 굳은살이 배겨있었다. 운동하고 난 직후 조금 단단해졌나 싶었는데 이렇게 굳은살까지 배길 줄이야. 남편은 한참을 깔깔대더니 요즘 뭐하고 다니냐며 놀렸다. 


"나 쇠질 하는 여자야, 여보 "


훈장 같은 굳은살까지 달고 뿌듯했던 3개월의 수업을 마무리했다. 계획대로 이제는 혼자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복습하면서 무게도 조금씩 늘려갈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자세도 배웠으니 헬스 하는 도시 여성으로 거듭날 것 같아 살짝 들뜬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처럼 쉽지 않은 법. 생각지 못한 복병이 헬스장 안에 숨어있었다. 손바닥에 굳은살만큼이나 마음의 굳은살을 갖게 해 준 분들을 바로 그 헬스장에서 만나고야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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