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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13. 2020

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헬스장에서 굳은살 생긴 사연 2

3개월간 PT를 받으며 운동 자세와 기구 다루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혼자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은 주로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해서 헬스장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혼자 운동을 시작하니 조금씩 주위 사람들과의 접촉이 시작됐다. 대부분 별 탈 없이 지냈지만,  별 탈이 있을 만큼 가까워지지 않았다 손바닥의 굳은살만큼이나 마음의 굳은살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음이 상하게도 혹은 풀리게도 해준 사람들과의 경험 몇 가지를 적어본다. 




1.

한참 운동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싸한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니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한 분이 내 바로 뒤에 있는 기구에 앉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운동이 힘들어 잠시 쉬고 있는 거겠지 생각했는데, 내가 바벨을 내려놓자마자 내가 쓰고 있는 기구로 오더니 갑자기 턱걸이를 시작했다. 나는 아직 운동이 끝나지 않았고 내 수건이 버젓이 그 기구 위에 올려져 있는데 말이다. 심지어 내 물통도 옆에 있어 누가 봐도 내가 그 기구를 사용하는 중이었다. 


몇 번 턱걸이를 하더니 내려와 아까의 자리에 앉길래, 뭔가 착각하셨나 싶어 못 본 척 다시 바벨을 들었다. 한 세트를 겨우 마치고 바벨을 잠시 내려놓으니 이 아저씨가 또 와서 턱걸이를 하는 게 아닌가. 만약 내가 운동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턱걸이를 했다면 성추행에 가까운 거리였다.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쉴 때만 온 것이니 성추행을 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내가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면 그 아저씨가 이런 식으로 운동을 했을까. 절대 아니었을 거라고 본다.





2.

익숙한 얼굴의 아주머니였다. 분명 같은 아파트 주민이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슬며시 다가와 나이가 어떻게 되냐 물으셨다. 30대라고 대답하니 정확히 몇 살이냐고 하시길래 답해드렸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 질문. 그때 눈치채고 화제를 돌렸어야 하는데, 쇠막대기 앞에서 수건을 목에 두르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나는 질문 세례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어머, 그럼 결혼은 했어?"

"네"

"새댁인가 보네~ 아이는 있고?"

"아니요, 아직 없어요"

"얼른 낳아야지!!"

"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아서 문제야"

"네??"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거야."


달리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 그러게요"




3.

반대로 좋은 매너를 가진 분을 만나기도 했다. 항상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다가, 혼자 무거운 의자를 옮기고 조작하려니 어려움이 있었다. 주변을 봐도 다른 트레이너들이 없었고, 어떻게든 의자를 조작해야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아 조심스레 옆자리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 자주 얼굴을 봤지만, 굳이 인사는 하지 않는 사이였다. 늘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운동하는 분이라 굉장히 무뚝뚝할 것 같았다.


"저, 죄송한데 이 의자 좀 올려주시겠어요?"


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도와주었다. 가만 보니 원래 잘 웃는 분 같았다. 그동안 너무 인상 쓰며 운동하는 모습만 봐서 무서운 분일 거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젠틀맨이었던 아저씨는 친절하게 조작법까지 알려주고 다시 쿨하게 자신의 운동을 시작했다. 예의 그 인상 쓴 모습으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내가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4.

여러모로 단짠을 경험한 헬스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잘 맞고 즐거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헬스장에 2년 넘게 다닐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은 트레이너다. 경상도 출신의 트레이너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결혼 연수도 같았고 신혼여행지도 같은 곳이었다. 하와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날 정도로 하와이를 좋아 해서 운동을 하다 힘들 때면 와이키키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성실하면서도 여유 있는 태도로 운동을 가르쳐주고,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점이다. 운동할 때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단단한 나로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주었다. 


3개월간의 수업이 끝나고도 그는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틈틈이 나의 건강을 체크해주었다. 혼자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친절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길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아도 충분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강한 어조로 동기를 유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시술을 전후로 잠시 운동을 쉬었을 때도 배려를 받았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운동의 기본을 가르쳐준 트레이너에게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2년간의 운동을 통해 내 몸을 견딜 수 있게 되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문제점을 알고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게다가 운동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할 힘이 생겼다.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도 얻었다. 난임 시술을 견디려 시작한 운동 덕분에 내 손바닥에도 마음에도 굳은살이 배겨졌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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