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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17. 2020

아이를 안고 있는 너를 상상해봐

난임 주부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한 가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유도나 연장은 가능하지만, 순간의 기적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다. 그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몇 년을 보냈더니 오히려 초연해지고 내려놓게 됐다. 포기에 가까운 내려놓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혹여 이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중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알면서도, 지는 싸움이 될까 봐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예 경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너는 너의 우주의 중심에서 너에게 좋은 일을 창조해 가면 된다.


이재성 한의사의 책 <임신을 위한 힐링>의 한 구절이다. 좋다는 한약은 다 먹어봤지만, 임신에 직접적인 효과를 보지 못해서인지 한의사의 책에는 뻔한 이야기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임을 겪고 있는 조카와 한의사 삼촌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건강차를 권하는 삼촌의 모습에서 나를 걱정하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부모님이 떠올라 시작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책 곳곳에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들을 읽으면서 따뜻함을 느꼈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뜻밖의 배움을 얻은 것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국 다 잘 될 거라는 것을 믿는다.
All is well.


이 말을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올해 초 슈가맨에 등장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가수 양준일이 했던 말과 같았다. 그는 여러 어록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저 이야기가 가장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 다 잘 될 거라는 것을 믿는다. All is well.  사실은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믿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적인 믿음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내가 내뿜는 에너지가 결국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돌이켜보니 많은 분이 내게 전해주었던 말이기도 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뼛속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믿을만한 가치가 있으면 믿는다.
지금의 결과가 결코 결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말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야.


내가 내 몸을 긍정적으로 믿어주지 않으면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은 믿을만한 가치가 있고, 아직은 결말을 논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 그저 모든 것에 손을 놓고 기도만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 문장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잘 될 거라고 말을 하면서도 진정으로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설마... 라는 말 뒤에 숨어 적극적으로 나를 믿지 못하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던 거다. 믿음에 이어 구체적인 상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에서도 나는 몰랐던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어느새 백일 된 아이를 떠올렸고 아이에게 모유 먹이는 상상, 
내 품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상상했다. 


아. 난 한 번도 아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구나. 그런 상상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까 봐 겁이 났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는 소녀는 참 아름답게 비치고 나 역시 같은 상상을 해보곤 했는데, 그건 꼭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아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었다. 혹시나 이 상상이 모두 허황된 꿈이 되는 것 아닐까. 너무 바라면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는 것 아닐까. 괜히 오버를 했다가 혹시 모를 일이 생기면 더 감당하지 못할까 봐 애써 참아왔던 것 같다. 그 상상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저 상상으로만 그칠까 봐 지레 겁을 먹고서.


두려움은 자신이 가진 힘을 모를 때 생긴단다.
두려움을 이기려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아는 것이 꼭 필요하지.


이제는 좀 더 용감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구체적인 상상이 나를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난임 기간은 길었지만, 시험관도 겁나서 못하던 나에게 이 말들이 조금씩 힘을 주고 있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말들이 살아 움직여 나를 건드리고 있다. 아이를 안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상상.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이제 시작이고, 믿음에는 제한이 없다. 


생각을 계속하면 그게 길이 되지.
걱정 마. 잘 될 거야. 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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