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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20. 2020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난임 일기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고백한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글을 쓸 때 딱히 두려움이 없고, 학창 시절 글 좀 쓴다는 칭찬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글을 끄적이는 일을 좋아한다. 좋아하니까 잘하는 건지 잘해서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글쓰기에 막힘이 없었다. 생각이 많고 행동이 느려서 말주변이나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내가 글만큼은 잘 쓰지라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내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잘하는 게 한 개도 없지만, 글은 그래도 좀 쓰지. 내 편지 받고 감동받은 친구들, 제법 되잖아?


이런 생각 때문에 공개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면 억지일까. 하지만 사실이다. 글쓰기만큼은 잘한다고 믿었는데 만약 그게 나만의 생각이라면. 내 마지막 보루까지 잃으면 나는 정말 재주가 단 하나도 없는 사람이 돼버린다. 그걸 인정한다는 건 낭떠러지에 서서 발 한 짝을 달랑거리는 것 같은 무서움이다. 번듯한 직업도 그럴듯한 경험도 없는 내게 글쓰기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래서 인생의 파도를 만났을 때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거다. 마음속 고통을 치유해 주고 나를 드러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느덧 일 년. 글쓰기는 이제 나의 직업이 되었다. 돈을 주는 사람은 없지만,  '매일 하는 것이 직업이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살고 있으니 내 직업 맞다. 처음엔 그저 신이 났다.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질 때까지 쓰고 또 썼다. 재활 치료받는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써댔다. 그러다 슬그머니 공개했고, 나쁘지 않은 반응에 계속 글을 쓰고 있다.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나고 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내가 조금씩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는 거다.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바닷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다는 사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예술을 전공한 친구들에게도 종종 듣는 말이다. '너 그림 진짜 잘 그리잖아'라고 물으면 백에 구십은 이렇게 말한다. '나 정도 그리는 사람은 겁나 많아...' 어딘가 씁쓸한 뒷맛에 듣는 나도 괜스레 기운이 빠진다. 그렇지, 맞지. 경쟁 사회에서 알량한 재주 하나로 먹고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꼭 직업이 아닌 취미로 넘어가도 마찬가지다. 다들 본업이 있으면서 취미로 하는 건데, 전문가보다 더 열정적이고 잘한다. 펜과 종이, 아니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글쓰기야말로 말해 뭐해다. 작가보다 작가 같은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번뜩이는 기획력이나 특이한 경험 없이 에세이를 완성하기는 한층 더 어렵다. 한두 편 정도의 글만 쓴다면 마음 정리도 되고 활기도 찾을 수 있으니 좋은 취미가 되겠지만, 나처럼 맘먹고 쓰는 사람에게는 뼈아프게 부딪히는 벽이다.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별거 없는 글로 사람들의 눈에 띄고 공감까지 바라는 건 언감생심 아닌가.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출판 시장에 괜히 나까지 뛰어들어 물을 흐릴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고 싶다는 거다.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 것인가.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쓸 게 아니라면 결국 나를 드러내야 하는데 내가 가진 게 뭐가 있지. 그래서 쓰게 된 것이 난임 이야기다. 지금 내 인생에 가장 큰 화두이자 앞으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일이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평생을 함께할 동지를 얻게 되는 것이고, 혹여 부부 둘만 살 게 된다면 그 또한 새로운 계획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거다. 그래서 나는 난임에 관해 계속 쓰기로 했고, 나의 일상을 다시 적어보기로 했다. 혼자 끄적이던 난임에 관한 단상을 정돈된 언어로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딘가에 나와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지고, 영화나 책을 통한 간접경험에 눈을 돌렸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정보를 정리하고 어떻게 나눌까 고민했다. 그 결과 나의 일상은 점점 더 쫀쫀해지고 있다. 막상 난임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니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었다. 생각과 일상을 난임이라는 필터로 바라보며 글을 쓰다 보니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게 됐다. 일상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작가들의 말에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내 글에 공감해주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자꾸 더 쓰고 싶어졌다. 이야기를 더 쌓아갈 힘이 생겼다. 


쓰고 싶은 마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탄생한 나의 난임 일기, 난임 이야기는 어느덧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아직 몇 편 없는 글들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글을 쓰고 있는 시공간의 존재감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크고 무겁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던 나는 그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능력자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지켜본 결과, 내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 천지 빼까리이므로 오히려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가 열심히 발버둥 쳐도 그들만큼 혹은 그들처럼 쓰기는 불가능하고 나는 내 글이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 자존심이라 생각했던 글쓰기는 내가 잘 써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라서 버릴 수 없다. 고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상, 내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고작 일 년. 내 글쓰기는 이제 시작이다. 지금은 난임에 관해 쓰고 있지만, 내 인생의 화두가 바뀌면 또 다른 글을 쓸 수도 있다. 일 년간 깨달은 것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다. 언젠가 책을 내고 혹여 강의하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매일 글을 쓰는 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글의 영향력을 지금보다 더 크게 느끼고 더 자주 상처받겠지만, 그 또한 내 자양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막 브런치로 독자를 모으기 시작한 뽀시래기의 '글쓰기론' 치고는 너무 거창했나. 훗날 이 글을 읽으며 '귀엽네'라고 할 만큼 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마한 나의 미니미가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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