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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24. 2020

아빠 닮아서 무뚝뚝한 편이에요

딸의 난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빠에게

"이제 5분이면 따뜻해질 거야."

"네 ㅎㅎ"


수능을 앞둔 몇 달간 아빠와 나눈 대화의 전부다. 고3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으며 출근길 아빠의 차를 타고 다녔다. 학교까지의 거리가 멀지 많아 차가 따뜻해질 만하면 내려야 했다. 아빠는 따뜻해진 차에서 내리기를 아쉬워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놀리고 싶었던 건지, 아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고 싶었던 건지, 전에 본 적 없는 짓궂은 말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평상시 서로에게 말이 없던 아빠와 나 사이에 잠시나마 온기가 흐르는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엄마를 많이 좋아했고 미워했으며 사랑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일도 엄마라는 단어만 붙이면 스토리가 나온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바로바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큰 변수 없이 자란 나에게 아빠는 항상 감사한 존재다. 엄마의 남편이 아닌 나의 아빠에게, 나는 어떤 불만도 상처도 없다. 철없는 딸이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해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지켜주는 아빠의 존재감을 살면서 더 크게 느끼고 있으니, 점점 더 감사한 마음이 커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생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린 시절, 아빠와 다이렉트로 감정을 교류한 기억이 거의 없다. 워낙 말수가 적고 표현이 없는 경상도 분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상경한 아빠는 발랄하고 통통 튀는 엄마의 모습에 반해 결혼했고, 다행히 엄마를 닮은 발랄한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오빠와 달리 말이 없고 얌전한 나는 그 시절 막내딸이 장착해야 할 덕목이었던 애교가 1도 없었다. 


모임이 많았던 아빠는 저녁이나 주말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 공백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항상 엄마를 통해 아빠를 이해했다. 아빠는 바쁘셔. 아빠는 우리 가정을 책임지고 있거든. 아빠는 멋진 분이야. 아빠에게 늘 감사해야 해. 주문 같은 엄마의 말은 사실 엄마 스스로에게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무뚝뚝하고 바쁜 남편을 대신해 어쩌면 아빠 노릇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도. 그 시절에는 다 그랬고, 더 힘든 사람도 많았다는 건 알지만, 여전히 돌아보면 엄마의 노력에 마음이 찡하다. 강력한 엄마의 비호 덕에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아빠는 오빠와 나의 마음속에 히어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친절하고 친근한 아빠는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딸바보 아빠가 존재하긴 했다. 중학교 때, 함께 등교하러 아침 일찍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의 아빠가 잠에 취한 친구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친구를 거의 들다시피 하여 차에 태웠다. 그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빠라는 존재가 저렇게 딸과 가까울 수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아빠와 나는 왜 이렇게 안 친할까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깊어지기도 전에 나는 사춘기를 맞았고, 엄마와 다투는 아빠를 잠시 미워했으며, 그 시간이 지나 스무 살이 되어 아빠처럼 홀로 상경하게 됐다. 




서울에서 혼자 살게된 나는 각종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20대를 보냈다. 표현에 서툴렀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종종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때는 스스로를 원망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리 어색하고 적응에 시간이 걸릴까. 그럴 때마다 아빠를 떠올렸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는데, 아빠는 사회생활을 어떻게 버티셨을까. 아빠도 나처럼 힘들었을까. 남자들의 세계는 또 다른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조금씩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뚝뚝한데 예민하고, 불같은 성격이 있지만 잘 표현하지 않는, 어디에 있어도 불편해 보이는 아빠. 그리고 그 모습을 똑같이 닮아 있는 나. 너무 닮은 우리.


그렇다고 아빠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은 없다. 어딘가 더 어색하고 불편했다. 마음을 툭 털어놓고 다가가 안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빠를 닮아서 힘들다고 털어놓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나의 못난 점을 인정하고,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일 때까지는 아빠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조차 힘들 만큼 나에게 자신이 없는 시절이었다.




성장통의 시기를 지나 30대가 되어 결혼한 후에야 아빠에 대한 마음이 온전한 감사함으로 변했다. 나의 콤플렉스를 그대로 인정하고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동안의 불편함은 이기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뚝뚝하지만 신중했고, 예민하지만 까탈스럽게 드러내지 않았다. 불같은 성격은 큰 일이 생겼을 때의 단호함으로 표현됐고, 어디에 있어도 불편해 보였지만 누구에게나 호의의 눈빛을 보냈다. 무엇보다, 아빠는 한 번도 자식을 지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아빠를 닮아 무뚝뚝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장점을 물려받았고, 아빠에게서 많은 것을 지원받았다. 그동안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으로 내게 사랑을 전해주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셈이다. 더 늦기 전에 아빠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전히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아빠에게 진심을 전하려 애쓰고 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 아빠와 인사하며 허그하면 엄마는 그 장면을 보고 '왜 이리 애틋해' 하며 놀린다. 무뚝뚝한 사람들의 애정표현이 남들 보기에는 좀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끼리는 안다. 오글거림보다 큰 진심을 전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물론 진심을 나눈다고 해서 무뚝뚝함이 고쳐지는 건 아니다. 자주 통화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달리, 아빠와는 여전히 엄마를 통해 안부를 전한다. 7년이 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인 딸에게 엄마는 몸에 좋은 음식을 보내주며 마음 편히 가지라 말씀하시지만, 아빠는 이 일에 대해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다. 그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좋아."


정도의 말만 전할 뿐이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아빠를 알고 있는데도 그 외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도 강요도 없이 건강 잘 챙기라는 말씀뿐이다. 참으로, 여전히, 아빠다운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떠올리면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생각의 깊은 곳에 잠시 빠져 있던 아빠와 닮은 내가 함께 떠오르기 때문에.




아빠.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아빠를 닮아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마음속에는 그 누구보다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어요. 좀 더 자주 연락드리고 진심을 전할게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엄마랑 사이좋게 지내시기 바라요. 이미 할아버지 되셨지만, 조만간 외할아버지 타이틀도 만들어 드릴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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