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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y 18. 2020

곧 마흔, 내 나이가 어때서

엄마 되기 딱 좋은 나이지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 순간, 갑자기 튀어 오르는 생각 하나.

'나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이제 곧 마흔이 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히는 이 기분은 정확히 10년 전에도 느꼈다. 서른이면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때의 나는 직장도 남자 친구도 없는 상백수였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지금 이 삶이 맞는 건지 무엇 하나 확신이 없을 때였다. 준비하던 시험도 떨어지고,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도 헤어진 스물아홉의 나는 밤마다 불안감에 몸서리치곤 했다.


먼 미래와 반짝이는 꿈을 좇던 스물아홉의 나와, 일상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서른아홉의 나는 얼핏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었다. 내 머릿속의 나는 더 잘 나가고 멋진 사람인데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늘 마음 한구석을 괴롭혔다. 어찌어찌 상황에 맞게 다시 취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땅에 발을 딛기는 했지만,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오만한 마음은 버리지 못했다. 짧은 시간 여러 번의 이직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혈소판 감소증이라는 자가면역질환으로 나타났고,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를 괴롭히다 못해 공격하는 상황에서야, 피가 나면 멈추지 않고 흐를 지경이 돼서야, 나는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삼십 대가 된 이후에는 생각지 못한 경험이 쌓이며 다른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나이가 되니 습관처럼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도돌이표처럼 나를 괴롭히는 불안은 자꾸자꾸 떨쳐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온다.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다가도 어딘가에서 나를 노리고 있던 닌자처럼 불쑥 찾아와 날카롭게 내 마음에 상처를 낸다. 5월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점점 더 불안감이 커지는 걸 보니 다가오는 하반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백수였던 스물아홉, 난임인 서른아홉, 평균에 못 미치는 나의 존재가 묘하게 겹쳐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어떤 시간을 보내든 나는 서른아홉을 지나 마흔이 될 테고, 그때도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겠지. 스물아홉의 내가 죽지도 않고 서른이 되고 어느새 서른아홉이 된 것처럼. 일흔이 넘어 지금의 일상을 되돌아본다면 좀 더 예쁜 것을 많이 보고 표현하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죽음에 가까워야 인생을 알게 된다는 성현의 말씀을 나이가 들며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경험이 주는 지혜를 지팡이 삼아 지금 이 순간도 잘 넘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 일상에 어떤 경험이 추가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겨 기르고 있었다면 나는 이미 학부모가 되어 있겠지만, 그 나름의 고충은 지금보다 덜했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의 시간이 나를 더욱 자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삼십 대의 나는 이십 대의 나와 달리 작은 것도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시간이 없이 이십 대 때의 불안한 심리를 그대로 안고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면, 막연한 이상에 치여 조급한 엄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나온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아쉬움은 남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있고 남은 인생을 정성껏 살아갈 기회가 있다. 십 년에 한 번씩 거하게 찾아오는 나이 듦의 중압감을 올해는 대범하게 넘겨보려 한다. 아직은 부족한 몸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셈이라 생각하고, 건강한 삶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는걸로.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보내면 분명 새로운 사십 대가 펼쳐질 거다. 곧 마흔. 내 나이가 어때서. 엄마 되기 딱 좋은 나이다. 여러모로 나를 갈고닦으며 지내다 보면 갑작스레 아이가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고 잘 해내리라 믿는다. 서른아홉을 지나면 마흔이 되는 건 그저 당연한 이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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