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돌 May 14. 2020

출산이 유행은 아니잖아요

장나라 주연 tvN 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를 보고 대성통곡한 사연

TV에 아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내 눈물 버튼이다. 누군가 사랑스럽게 아이를 아 드는 장면에서 특히 더 그렇다. 아기를 온전히 몸으로 품어 는 그 순간이 내게는 감격으로 다가온다. 따뜻함, 불안함, 설렘, 긴장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가슴이 찌릿해지고, 아주 짧은 순간, 아직 못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빠르게 감정이 이어지며 눈물이 훅 차오른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 같이 TV를 보는 남편은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왠지 울 것 같은 장면이 나오면 남편은 미리 내 눈을 확인하고 휴지를 건네는 여유까지 생겼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의 주인공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 하는, 비혼모를 꿈꾸는 39살 직장 여성이다. 장나라 주연에 고준, 박병은이 나오는 tvN 드라마라면 중박은 치겠구나 싶어 시청했다가, 뜻밖의 장면에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제목부터 베이비인 데다가 결혼과 출산을 소재로 했으면 예상을 해야했는데, 그저 로코로 생각하고 가볍게 봤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나 할까. 복합적인 생각을 들게 하는 대사와 장면들 때문에 드라마고 나발이고 주인공 장나라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해버렸다.




일단 장나라는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다. 장래희망이 엄마였을 정도로 엄마를 좋아했고, 아기를 좋아했다. 심지어 직업도 육아잡지 기자다. 하지만 결혼으로 이어지는 연애를 하지 못했고, 당연히 아기도 갖지 못했다. 굳이 결혼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은 포기하지 못한다. 난자 냉동을 해놓으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말미에는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간 채로 생뚱맞은 남자에게 프러포즈까지 해버리고 만다. 첫회에서는 이 정도의 상황설명만이 주어졌고 본격적인 세 남자와의 로코는 시작도 안 했지만, 이 첫회가 내게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요즘에 누가 애를 낳는다고

처음 뜨끔했던 건, 잡지사에 다니는 장나라가 후배와 함께 소품을 고르러 가서 나눈 대화 장면이었다. 딩크로 살고 있는 후배는 남편이 아이를 갖자고 했으면 결혼을 안 했을 거라고 말한다. 아기가 왜 그렇게 예쁘냐고 장나라에게 묻는다. 여기서 장나라는 '아이 갖기 싫다는 남자랑 어떻게 결혼을 하니'라고 대답하며 소신껏 맘에 드는 소품을 고른다. 평범하면서도 장나라의 신념을 드러내는 이 장면에서 나는 딩크 후배의 대사 하나를 자꾸 곱씹게 됐다. '요즘에 누가 애를 낳는다고' 아, 요즘은 애를 안 낳는 게 대세인 건가.


딩크와 비혼이 많아지면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별종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아기를 낳겠다고 하면 말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 힘든 세상에 뭐하러 아이를 낳느냐고. 아이에 집착하면 구시대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르신들은 아이가 필수라 하고, 젊은이들은 아이가 사치라고 하는 이 시대에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는 뭘 믿고 아이를 갖겠다며 이리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나 때문에 행복했던 엄마처럼, 나도 자식을 낳아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장나라의 꿈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환상에 불과한 걸까. 장나라와 같은 단순한 이유로, 당연히 엄마가 될 줄 알았던 나는, 변해가는 시대에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외로우면 차라리 개를 키워요

몇 해 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그냥 애완동물을 키우려 한다고 후배에게 말한 기억이 있다. 실제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는 '난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입양해 볼까 하고 알아본 적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성사되지 않은 이유는 아이가 생기면 둘 다 케어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게 아니라 아이를 대체할 무언가를 기르고 싶었던 거다. 아직은 아이가 더 갖고 싶고, 그래서 우리 집에는 애완동물이 없다.


드라마에서 고준에게 첫눈에 반한 장나라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인사를 하며 접근하지만, 독신주의자 고준은 결혼 상대자를 찾는 장나라의 이야기를 미리 전해 듣고 단호하게 철벽을 친다. 오히려 그런 장나라를 비난하며 '외로우면 차라리 개를 키워요'라고 말한다. 드라마 첫 장면에 장나라가 꿈속에서 아이가 아닌 개를 낳은 것도 이 대화 때문이었다. 그 후 장나라는 고준을 미친 X으로 생각하게 된다. 원시부족도 아닌데 왜 결혼에 목을 매냐는 고준의 말도, 가족을 꾸려 단란하게 살고 싶다는 장나라의 말도 모두 이해는 된다. 하지만, 굳이 결혼하겠다는 사람을 그런 말로 매도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 대사를 듣고 순간 장나라만큼 기분이 상했다. 내 상황을  직접 말하는 것과 이런 말을 듣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자연임신 확률이 7% 미만이에요

어딘가 불편한 기분을 느끼다 결정적으로 대성통곡한 부분은 병원씬이었다. 의사가 자궁 초음파를 보여주는 장면부터 불길하더니, 장나라에게 자궁내막증 혹이 있어 수술을 해야 하고, 난소 나이가 40세로 나와 임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고 얘기하는 의사의 말에 결국 펑하고 터지고 말았다. 의사 역할의 연기자는 또 어쩜 그리 무섭게 연기를 잘하시던지... 사실을 전하는 거고, 환자를 무시하는 말도 일절 없었지만, 그저 그 말을 전한다는 이유로 의사가 미워 보였다.


임신을 하고 싶어 병원을 찾았는데 '자연임신 확률이 7% 미만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소리를 듣고 있나 싶고, 현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에 다른 병원을 찾고 싶어 지기도 한다. 수치로 몸의 기능을 평가하는 서양의학에서 숫자만큼 잔인한 존재는 없다. 그 숫자 하나에 울고, 웃는 처지가 되는 것이 비단 난임의 상황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낮은 숫자와 그에 따른 낮은 가능성은 환자를 크게 위축시킨다. '그럼 저는 애가 없어요? 애를 못 낳아요?'라고 되묻는 장나라를 보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잠시 잊고 있던 공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왜 다 끝나버린 것 같지...

첫회의 마지막 장면, 병원에서 나와 방황하는 장나라의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이 없어졌다. 보고 있는 나까지 진이 빠져버렸다. 드라마고 나발이고 감정이입을 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 교차 편집되며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던 꿈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끼던 장나라는 '왜 다 끝나버린 것 같지...' 라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때 고준이 장나라의 눈앞에 나타나고 장나라는 넋 나간 표정으로, 나 좀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나랑 결혼할래요'라고 말한다.


최근 김태희의 복귀작으로 주목받았던 <하이 바이, 마마!>라는 드라마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만삭의 주인공이 환생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5년 만에 귀신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주인공 김태희는 강한 모성애를 보여주며 연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상상만 해도 슬픈 스토리에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잘 버무려진 공감 가는 드라마였기에, 드라마가 산으로 가기 전까지는 눈물을 흘리며 챙겨보았다. 하지만 <오 마이 베이비> 첫회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슬픔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라기보다는 누군가 명치를 세게 때려서, 아프고 억울해서 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혼모라는 형태의 가족과 결혼, 출산의 의미를 짚어보면서 주로는 주인공의 연애에 포커싱이 맞춰지면 아마도 첫회에 내가 받은 감상과는 다른 결로 드라마가 마무리 지어질지 모른다. 드라마의 개연성을 위한 인물 설명에 내가 과도하게 몰입한 것일지도. 그럼에도 이렇게 다양한 감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현실성 있는 대화와 장면들 덕분이다. 첫 화를 보는 내내 결혼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들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40대의 난임을 이렇게 현실감 있게 표현할 줄은 몰랐다. 드라마의 기획의도와 벗어나는 해석이었다고 해도, 나에게는 오랜만에 강한 자극을 준 드라마였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다는 건 누구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나에게 설득할 권리는 없다. 딩크도 비혼모도 각자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만드는 방식일 뿐이다. 가임여성 지도를 만드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상 여러 가지 간섭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결혼과 출산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은 유행이 아니다. 트렌드에 맞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저 본인의 소신과 상황에 맞게 결정해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비혼모라는 소재를 다룬 드라마에서 뜻밖의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건, 현실감 넘치는 표현과 더불어  본인의 행복을 위해 소신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의 늦은 걸음을 탓하는 주변의 질타에도 그녀는 자신의 길을 지키려 애쓴다. 3040 로맨틱 코미디로서 말랑말랑한 모습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남은 회차에서도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찾은 요가원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