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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에게 닿기를 Jun 21. 2018

사랑, 그 불확실성에 대해

사랑을 확신하는 순간은 대게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다


하남 가던 길, 택시 기사님이 물었다. "와이프에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너는 대답했다."네".

당황한 나는 "뭐야?…"라고 했는데, 이는 그 상황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확신이 있나'라는 생각과 뿌듯함 그리고 행복한 감정이었다. 당시 나는 그 사람과 한 달 남짓 만났던 사이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난 종종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상대에게 '왜 그랬냐'고 묻지 않는다. '묻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음대로 '저 남자는 날 많이 사랑하나 봐'라고 오해해버리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


왜 나는 그 짧은 한마디로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확신했을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지나치게 비이성적이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당시 분명히 난 내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가 하는 행동, 말투, 눈빛…이런 모든 것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품을 구매하면 으레 있는 보증기간 따위도 없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들에 나를 맡겨버린 내 잘못으로 뒤통수를 후려 맞는 일은 기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아니, 어떤 이유로든 늘 그래왔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지인들은 내 얘기를 듣고는 "그 사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속상하겠다"라는 말을 하지만 그들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실질적인 무게를 줄여줄 순 없었다.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었다.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무게가 줄어들수도 또 늘어날 수도 있는 나날들이 반복됐다.



내 친구 S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슬픔에는 총량이라는 게 있어. 어느정도 다 아파하면 끝나. 그래서 나는 헤어지고도 슬픈음악을 들어, 그러면 빨리 끝날 거 같아서". 나도 한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져 힘들었다.

또 어떤 친구 H는 그럴때는 나가서 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단다. 웬만하면 그사람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며 완전히 잊고 지내려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땐 음악도 끊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지만 그 역시 불쑥불쑥 파고드는 날카로운 기억에 댕강 잘려버리는, 그야말로 '노력'에 불과했다.

 함께 간 속초에선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사실 당시 내 마음도 비가 내렸다. 그리고 아마 너도…나도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게 지나감을 안다. 그저 '20대 어느 날, 너라는 사람을 만났었지' 정도로 흐려진다. 그 사람에 앞서 만났던 많은 인연이 그렇게 사라졌고 그 시절 나도 내게서 잊혔다. 그래서 난 글로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내 청춘의 한 자락에 그 사람이 물들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내 마음이 저렸다는 것,  모든 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에. 먼 훗날 치기 어린 한 줌의 사랑, 그 언저리서 마음 다치던 나를 예쁘게 바라볼 날이 분명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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