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lna Nov 29. 2021

나니까

#우리의#자존감을#위한#위로

3학년들이 음악 수행평가를 치르는 날이었다. 가을과 관련된 노래 부르기.


나는 어린 시절 음악 수행평가를 치를 때의 긴장감을 기억한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것이었는데  나는 악기 연주에도, 노래 부르는 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덜덜 떨렸던 손끝과  찢어지듯 갈라졌던 목소리.

억지로 노래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망했다. 난 왜 이렇게 노래를 못 부르지?

고운 목소리를 뽑아내는 다른 친구들이 새삼 부럽기도 했었다.


그 기억이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나는 평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얘들아, 노래 실력보다는 바른 자세와 자신감이 중요하단다 하고는.

그러면서도 혹시 아이들의 마음에 나 같은 난처함이 남을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평가 문항은 두 가지였는데,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도 노래를 잘 표현한 친구들을 찾아 칭찬하는 것이었다.

감상하면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보자는, 인성 교육적 의도가 다분한 문항이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한 몇몇의 이름을 적어 넣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선생님 제 이름 적어도 돼요?"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대충 적어 넣겠다는 뜻인가?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가? 잠시 머리를 굴려보다 교과서처럼 대답해주었다.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면, 내 이름을 적어도 됩니다."

솔직히 자기 이름을 몇 명이나 적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학생들의 평가지를 채점하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노래를 잘 표현한 친구를 찾아 칭찬해보자, 라는 문항에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었다.

심지어 이유들도 합리적이었다.


'저는 저를 칭찬합니다. 이전보다 곡 분위기를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 불러본 적이 없는데, 용기 내어 불렀기 때문입니다. '

'너무 잘 불렀기 때문입니다.'

'목소리가 크고 박자를 잘 맞췄기 때문입니다.'

'박자가 느리긴 했지만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평가자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정말 잘했냐 묻는다면 그렇다 쉽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감동받았던 것은, 자신이 노력하고 애썼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용기를 내었고, 바른 자세로 부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나는 열심히 했어. 나는 잘했어. 하는 마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노래를 잘 부르진 못했을지 몰라도, 나는 박자도 잘 맞추고, 나는 목소리도 컸어.

그러니 나 자신을 칭찬하겠어하는 마음.



흔히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 한다.

타인이 나를 무엇이라고 평가하던 내가 나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 나 자신을 신뢰하는 태도.


그런데 나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때때로 우리는  무언가를 잘 해내고, 무언가에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우리 자신을 몰아붙인다.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어떤 직장을 가지게 되었는지, 재산을 얼마나 가지게 되었는지  같은 것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지지 못했을 때 쉽게 좌절한다.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움츠러든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흐릿해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했던 노력과, 소진한 마음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다.

결과가 나쁘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아이들의 답안을 읽다 보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르치는 이 소중한 손님들은, 노래를 잘 못했다고 울적해하지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좌절하지도 않았다. 그저  난 잘했어, 충분했어, 하고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단순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내가 무언가를 가졌느냐, 성취했느냐와 상관없이 나는 충분한 사람이라는 선언.

내가 무언가에 실패했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알맹이는 전혀 상처 받지 않는다고.

그러니 굳이 나 자신을 파고들며 상처 입히지 않아도 좋다고.

오히려 잘했어, 난 멋졌어하고 위로를 건네고, 어깨를 쭉 펴도 좋다고.



그중 가장 멋지게 자신을 칭찬한 학생도 있었다.


'저는 저를 칭찬합니다. 왜냐하면 나니까.'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어도 좋다. 얼마나 건강하고 따뜻한 자기애인지.

덜덜 떨며 작아졌던 어린 날의 나에게까지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어른들보다도 건강하고 단단한 마음들을 만난 것 같다. 너무나 영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