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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Dec 15. 2021

너의 결혼식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축하인사


네가 결혼을 한다고 한다. 몰랐던 게 아닌데 만감이 교차한다.

누가 들으면 내가 너의 구남친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주책이다.


아주 조금은 슬프다.

네가 결혼하는 게 너무 잘됐고 진심으로 축하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이상하다.




나는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새내기들을 위한 공연장이었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시끄러운 노래가 계속되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방방 뛰며 소리 질렀다.

너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날 처음 본 내 팔을 붙들고 서 있었는데

나는 그런 너를 의아해하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제와 보니, 낯을 꽤 가렸었던 우리가 온통 낯선 사람들 속의 그 시간을 견디는 한 가지 방법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의 스무 살 너는 늘 생동감이 넘쳤다.

선명한 눈빛과 높은 목소리, 분명한 취향과 빛나는 재치, 그런 것들이 그때의 너를 설명한다.

너는 시내의 작은 카페나 식당을 찾아다니기 좋아했는데, 나도 덕분에 숨겨진 멋진 장소들을 많이도 다녀보았다.

네가, 여기 사장님이 먼 곳에서 커피 배우고 여행 다니다가 여기 오셔서 카페 차리셨대~ 하고 이야기하면,

나는 우와 대박, 멋지다. 하며 대답하는 식이었다.

또 너는 대학 근처의 강변에서 자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곤 했다.

사실 그다지 운동을 즐기지 않았던 나도, 끝이 없는 수다를 떨며 너를 따라 걷곤 했다.


넌 대화를 유쾌하게 이끄는 센스가 있었고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과 다른 각도로 볼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너를 꽤 좋아했고 꽤 닮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얼마나 많이 함께 먹고, 얼마나 많이 함께 떠들었는지.

수없는 일들을 보고 겪고, 또 그만큼 웃고 울고 싸우고.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아도 그 시절의 나는  너와 나누었던 시간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했다.


숙취에 시달리며 절대 내일은 없을 것처럼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치킨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다이어트는 공부보다 어렵다 한숨 쉬었다.

옷가게를 들락거리며 세상엔 참 갖고 싶은 게 많고 비싸단 걸 알게 되었고,

추운 계절 영어를 가르치러 다니며 돈 벌기도 쉽지 않구나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참 다양하고 다 다르다 깨달았고,

어떤 날은 눈물을 쏟으며 그중에 나쁜 사람도 참 많더라 토로하기도 했다.



숫자만 어른이었던 스무 살, 혼란하고 실수투성이였던 나에게

너는 똑같이 혼란하고 실수투성이인 친구였다. 함께 자라는 것 같아서 더 위안이 되는.





아. 이제야 네 결혼 소식에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드는 이유를 알겠다.

스무 살의 나, 이름만 어른이었던 실수투성이와 작별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젠 나도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별일 없이도 너무나 즐거워하고 실수하면서도 까르르 웃던 나. 늘 새로움에 눈을 빛내던 성장기의 나.

그 빛나던 찰나가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아, 그래서 내가 조금은 슬펐구나. 빙봉과 헤어지던 레일리처럼.



하지만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어도 넌 여전히 좋은 친구다.

그 시절처럼 마냥 같이 자라날 수는 없어도, 어쩌면 더 깊은 생각과 시야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더 넓고 천천히 자라나는, 새로운 빛나는 찰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결혼 좀 한다고 해서 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 너무 길었던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다.

너와 예비 신랑이 손을 꼭 붙들고 걷던 뒷모습이 예뻐 끄적거려보았다.

너와 너의 짝꿍이 앞으로 걸어갈 날들이 늘 따뜻한 온도이기를.

그러다 추운 날을 만나면 다시 두 손 꼭 잡고 헤쳐 나올 수 있기를.

가끔 울적하더라도 자주 웃고,

그보다는 더 자주 유쾌하고,

늘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결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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