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제주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든 일을 뒤로하고 문득 떠나올 수 있는 곳, 혼자여도 둘이어도 좋은 곳, 슬픔도 기쁨도 바다의 포말이 될 수 있는 곳, 원 없이 그리워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는 곳.
두 번째 짐을 꾸린다. 5박 6일짜리다. 배낭 하나에 5박 6일을 욱여넣어 보니 메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제법 부피와 무게가 느껴진다. 안 되겠다 싶어 작은 캐리어에 옮겨보니 빈자리가 생긴다. 빼놓았던 이것저것을 다시 집어넣는다. 짐의 양이 열흘짜리나 같아진다. 빈 곳, 여백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질머리 때문이다.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래 서였나보다 빈둥거림을 허락하지 못했던 이유. 주말도 뭔가로 꽉 채워야만 뿌듯한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
업무를 마치고 저녁 비행기로 도착한 제주공항이 잠깐 장마를 물린 순한 빛에 은은히 물들어 있다. 성산포 숙소까지 가는 급행버스는 중산간 도로를 따라서 산자락을 넘어오는 저녁 어스름을 지나 이내 어둠을 향해 간다. 아무래도 낮에서 밤으로 건너가는 경계에는 서글픔이나 외로움이 고여 있는 것이 틀림없다. 특히 타지에서 맞는 경계는 더 그렇다. 그 경계를 넘을 때마다 축축한 무엇이 밖으로부터, 때론 안으로부터 젖어 드니 말이다. 안개비가 쓸쓸히 스민 고성리 환승정류장에서 하차 후 숙소를 찾아 캐리어 바퀴소리와 함께 한참을 헤매고 말았으니 오늘은 두려움까지 더해진다.
나에게 제주가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지역마다 5일장이 선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예상치 못한 오일장을 만나면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순대국밥이라도 한 그릇 해야만 할 것 같다. 오늘은 세화오일장을 품은 코스다. 아쉽게도 장은 서지 않았지만 으늑하게 비어있는 공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거기 시장이 없는 것처럼 그저 지나가기가 쉽지 않다.
빈 공간이 많았던 어린 날을 소환한다. 어머니가 이십 리 길을 걸어 읍내 오일장에 가시는 날은 내 마음도 텅 비곤했다. 동네 어귀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기억. 어쩌면 아버지의 술주정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어린 걱정이 어둠처럼 짙어졌던 기억. 그때, 저 멀리서부터 조금씩 다가오던 어머니의 바쁜 걸음은 형상만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풀어놓은 장 보따리는 얼마나 환상적이었던가.
지척에 바다를 두고 야산, 들, 마을길을 걷는다. 산-들-세화리, 산-들-평대리, 산-들-한동리, 산-들-월정리, 산-들-김녕리.. 이 사이에 바다들... 살짝만 맛보게 한다. 친절한 화살표와 리본의 설계가 사뭇 과학적이다. 걷지 않는다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제주 동북부를 속속들이 숨 쉬게 한다. 그래서 마을의 좁은 길을 빠져나오며 맛보기로 만나는 바다는 더욱 반갑고 새롭다.
평대리와 한동리를 잇는 숲길에 서있는 좋은 글귀들을 지난다.
‘좋은 동행자가 있으면 그 어떤 길도 멀지 않은 법이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가장 어려운 때가 도약의 지점이다’
오늘은 내가 나의 좋은 동행자가 되어 걷는다. 20대, 30대... 그 어디쯤엔가 놓치고 온 나의 다른 삶들, 나의 꿈을 톺아본다.
한때 시를 잘 쓰는 (감히‘시인’이라고도 못하겠다)것이 꿈이었다. 2001년 한 지방지 신춘에 시가 당선된 후 당선된 경험이 있었던 사람으로 전락하였고 그 과거 한 장이 되레 시 쓰는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7년 만에 학위논문이 끝났을 때 긴 호흡의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증명 안 된 자신감으로 여행 작가의 꿈을 꿨고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씁쓸했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리 살아도 되나’라는 자문이 나를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붙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열심히 한 건 아니다. 브런치의 방 한 칸을 빌려 빈 방으로 둔 지 몇 달째. 마치 월세를 내지 못한 것처럼 글 빚이 쌓여갔다. 그러므로 가장 어려운 때는 자의든 타의든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지만 안정적일 때의 도약이야 말로 100%의 자의가 필요하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머물러 있음’, ‘편안함’ 등의 단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집은 압박이나 마찰, 강한 힘이 가해지는 부위에 생기는 것, 저절로 느닷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가한 스스로의 삶에 생기는 도약의 지점 인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배낭을 쌀 그 때.
한동리에 들어선다. 느티나무를 에둘러 만들어 놓은 쉼터에서 더위를 식힌다. 거기 ‘시원한 물 한 잔 하고 갑써~!' 라고 쓰인 아이스박스가 놓여있고. 살짝 열어보니 시원한 요구르트, 얼음물이 가득 들어 있다. 요구르트 2개를 꺼내 드는데 뉴스로 접한 사건, 사고들 문득 스친다. 이런 몹쓸... 요구르트 두 개를 단숨에 털어 넣는다. 어머니의 장보따리만큼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