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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Aug 02. 2022

내가 노희경을 추앙하는 이유

제주를 훔치다 12.


  최근 종영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촬영한 장소라고 고성 오일장 앞에 현수막이 붙어있다. 한 회도 빼지 않고 열심히 시청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댄다.  어디쯤에서 동석이 골라골라,를 외쳤을까.  은희가 생선토막을 치던 곳은 저긴가.  앙숙에서 사돈이 된 두 아버지가 몸싸움을 했던 곳은? 

  모든 대사가 특별했지만 내게 눈물겹도록 빛났던 부분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도 연관이 있어서 온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지었던 곳.    

고성 오일장에 그들이 있었다


 영희를 처음 본 정준이 영옥에게 했던 말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맞다. 우리는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 하물며 성인이 되어서도 은행이나, 길거리나, 야구장이나, 마트에서 그들을 보기가 쉽지 않고 학교에서도 그들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영옥이 정준에게 쏟아냈던 말

  -근데 왜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앨 길거리에서 흔하게 못 보는지 알아? 

   나처럼 다른 장애인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를 대부분 시설로 보냈으니까...

   같이 살집을 얻으려고 해도 안되고 일도 할 수도 없고, 

   영희, 어쩌면 일반학교에서 공부했으면 지금보다 나을 수도 있었어. 

   근데 일반학교에서는 젤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 데는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시설에 보내면 보내는 날 모질다고 욕하고 안 보내면 오늘 같은 일을 밥 먹듯이 당해야 돼. 

   대체 날 더러 어쩌라고. 영희도 다 알아, 영희도 사람들이 자기 이상하게 보는 거 다 안다고.... 

   내가 자기를 얼마나 버거워하는지 다 안다고... 

(학교에서도 지역에서도, 때론 가족들도 그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젠 인권문제로 시설보호마저 세계적으로 지양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라고. 어쩌라고.  


  드라마는 끝났지만 나는 이 대사를 잊을 수 없다. 장애인 가족의 시선과 외부인의 시선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묘사한 것은 물론, 현실을 고스란히 드라마에 옮겨놓은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했다. 과했다면 비장애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고 부족했다면 당사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설 원장(양희경분)이 영희를 일터인 카페에 데려다주고 영희가 주문을 받는 모습은 장애인도 일을 할 수 있고 그들도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주문을 하면서 기다려 주거나 약간 역정을 낼 수 있는 비장애인들의 모습도 그럴 수 있는 현실 그대로였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성인이 되면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가진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장애인 복지를 하는 사람들조차도 말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따듯한 잔상이 사그라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핏줄처럼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회자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은혜 배우처럼 모든 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빛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머물렀던 호텔의 청소원, 식당 서빙, 승마장의 말잡이...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나라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그들은 그렇게 산다. 십수 년 전, 필리핀에 간 적이 있다. 가이드는 한국인이었는데 보조 가이드는 필리핀 사람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캐리어를 옮기고 문을 여닫고 간식거리를 챙기는 그를 보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몹시 불편했고 미안했다. 조금 거들라치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이 일이 돈벌이고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미안해하거나 불편한 마음은 조심스럽게 내려놓자고 우리 중 한 분이 입을 뗐다. 그러자고 했지만 일정이 끝날 때까지 불편한 마음을 말끔히 없애지는 못했다. 우리도 그렇게 어려운 때를 건너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주 노동자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우리 모두가 친절했으면 좋겠다. 

  드라마는 현실을 비틀 수도 있고 현실을 이상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고 때론 있어야 하는 이야기들이다. 지금까지 따듯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노희경 작가의 마음과 손끝에서 이들의 이야기도 한 번쯤 건져 올려지길 바라본다.    


  시장을 돌아보고 바로 곁에 있는 순정 식당에서 뼈다귀탕으로 점심 겸 저녁을 때운다. 옆 탁자에서는 중년의 사내가 안주도 없이 소주 한 병을 맥주 컵에 가득 따라 마신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내가 추앙하는 노희경 작가라면 그 중년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또 뼈다귀탕을 이리도 맛나게 먹는 이 중년 여자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해 질 녘이어서 쓸쓸했고 시장통이라서 흐트러졌으며 낯설어서 흔들렸던.      

그날 저녁 따뜻한 위로였던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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