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중3, 중2 아이들과 푸엔테 라 레이나에 묵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금이 무서워 데이터 로밍도 하지 못했었고 와이파이도 제대로 터지지 않을 때였다. 먼저 걸은 사람이 쓴 책 한 권 보고 왔던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무엇에 이끌리듯이 망설임도 없이 짧은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해외여행이라고는 처음인 아이들, 나 역시 출장으로 다닌 패키지의 짧은 여행이 전부여서 매 순간이 두렵고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댈 곳도 비빌 언덕도 없이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던 그때는 불평보다는 하루하루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생각해보면 불만은 여유 있을 때나 생겨나는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일정 정리, 숙소 예약, 길안내, 식사 등 모든 걸 알아서 하니 불안과 두려움보다는 여유의 틈새에서 불만이 새어 나온 것이다. 모든 불편함은 극복하라고 생기는 것이고 불편하려고 온 것이니 섬세하게 잘 다스려야겠다고 작심삼일 일지라도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겨우 선잠을 이룬 듯했는데 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불편함은 피곤함도 이기게 하는 것일까. 아님 아직 고생을 덜한 것일까. 어둠을 밝혀주는 좁은 마을길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불평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채 하룻밤을 보낸 마을, 여왕의 다리라는 뜻의 푸엔테 라 레이나. 이 마을을 상징하는 다리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다리의 아치는 물에 비치는 스스로의 아치와 맞닿아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반원자를 대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섬세하게 만들어 놓은 듯 신비스러웠다. 문득 마음이 꽉 차 올랐다. 어제저녁 미사 후 주례 사제가 순례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 마주치며 어디서 왔는지 묻고 작은 십자가를 걸어주며 축복해주셨던 일과 함께.
내가 쏟아낸 불평불만은 이곳의 숙소,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된 묵은 것들이 비로소 이곳에서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듯한 푸엔테 라 레이나의 아름다운 동그라미 속으로 검은 마음을 툴툴 털어내고 아직 어슴푸레한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나도 빛 하나 품고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마알간 풍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얇은 패딩을 껴입고 별이라는 뜻의 에스테야로 향했다. 너른 들판이 수확을 끝내고 밑동을 안은채 두 개의 가슴을 포개어 놓은 듯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완만한 곡선을 품은 탁 트인 들판이 불만에 절여진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노랑의 절정에 닿은 야생국화 향기가 길을 열어 걸음을 가볍게 한다. 한결 순해졌다고는 하나 햇볕은 아낌없이 뜨겁고 밝다. 올리브나무 아래 마련된 쉼터에서 양말을 벗고 발을 말리는 사람들 곁을 지나니 까맣게 잘 익은 포도와 땅콩, 토스트 같은 것을 도네이션 형태로 팔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무인 판매대였다. 눈 맑은 고양이는 곁에 앉아 해찰을 부리기도 하고 누가 무엇을 먹고 얼마를 내는지 무심한 듯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을을 지난다. 마을마다 크로와상 한 개 커피 한 잔 값이 다르니 맛있고 싸고 분위기 좋은 곳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걸어온 길, 누군가 걸어오는 길 언제 저토록 먼길을 왔을까 문득 아득해졌다. 저 멀리 어제 넘었던 페르돈 고개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시간과 땅을 꾹꾹 걷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어지는 포도밭들 검은 피부의 노동자들이 포도를 따고 있다. 검은빛 포도알의 당도처럼 저들의 삶도 달달했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올려본다. 더불어 나역시 포도알의 신맛 같은 불만을 잘 익혀 검은빛의 높은 당도에 곧 닿기를 소망해보았다. 알맹이 하나 먹어보니 더없이 달큼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아침마다 다지는 각오는 그날 걸어야 할 거리와 비례하는데 오늘의 각오는 22킬로미터어치. 도착지가 가까워 오자 각오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에스테야로 진입하는 아치형 다리 위에 먼저 도착한 딸아이가 해맑은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