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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May 24. 2022

경고를 먹다

제주를 훔치다 2.

  길을 걷는다. 리본이 매달려 있는 곳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좌우 앞뒤를 살피며 확인을 한다. 걷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된 지점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길을 잠깐 벗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길을 놓치고 말았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고, 다시 되돌아 오고를 반복하다가 리본이 있는 곳부터 걷고서야 정해진 길로 들어섰다. 인간 네비라는 별명이 붙은 나도 초행길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애초부터 결정된 길이 있었던가. 걸으면 길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을.  

  바람결에 익숙한 향이 코끝에 와닿는다. 찔레꽃 향이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나도 모르게 어릴 적 불렀던 찔레꽃을 읊조린다. 가난했고 쓸쓸했던 날들, 마음 끝이 살짝 시큰해 온다. 

  찔레꽃을 검색해 보면 백난아의 찔레꽃이 나온다. 가사 첫머리가 ‘찔레꽃 붉게 피는’이다. 흰 꽃을 왜 붉다고 표현했을까. 발표된 1942년 암울함을 역으로 표현했을까? 석양 무렵에 가사를 썼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붉은색으로 착각했던가? 한동안 따지기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이 모이면 서로 옳다고 우기곤 했던 그 일이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다. 

어릴 적,  젊은 내 어머니의 미소 같은 찔레꽃 


  바닷길로 이어진 길을 걷고 걷는다. 혼자라서 충분하지만 혼자라서 불충분한 날이다. 드라마처럼 아는 이라도, 스무 살 적 첫사랑이라도 만난다면... 마치 진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표정으로 첫 말을 건넬까 생각해본다. 내 삶에 드라마 같은 우연은 거의 없었지만 첫사랑과 얽힌 우연한 만남이 한 씬 남아있다. 20대 초반 방송대생이었던 나는 늦은 시간 공부를 마치고 맞은편에 있는 정류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신호등이 없어 차들이 멈추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고 나는 뛰다시피 길을 건넜다. 1, 2분 후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그가 거기 서 있었다. 결혼을 해 서울에서 살고 있었는데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온 참이었다. 그여서 놀랐고 우연 같지 않은 우연에 놀라 반은 정신이 나간 채 인사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순간이동처럼 잠깐 딴 세상에 간 마음이 돌아오지 못한 채 한동안 그 우연의 시간을 앓았던 것 같다. 그 일이 박제되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시인의 시처럼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기 때문일까. 그저 잘 살기를 바라본다.    

그때, 그대처럼 손 내밀면 잡힐듯한 바다 


  모처럼 반반한 흙길이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는다. 때마침 동백꽃이 흩뿌려진 꽃길도 걷는다. 흙에 짓이겨진 꽃잎의 속말들이 부드럽게 발바닥에 닿는다. 그렇지만 반반한 흙길도 잠시, 꽃길도 잠시 뿐이다. 모든 길이 꽃길이 아니었으므로. 어떤 삶도 꽃길만 걸을 수는 없는 것. 꽃이 지니 아름다운 것이고 사람도 지니 아름다운 것이다. 사실 꽃길은 비포장도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네 삶을 응원하는 말이고 기꺼이 그 길을 걷는 당신이 진정한 꽃일지도.

꽃길이었으나...  


  법환포구에 닿자 처음으로 나를 맞는 말 ‘경고’다. 노천에 남탕이 있으니 돌아가라는. 무슨 경고씩이나...알림으로도 알아먹을텐데. 그러고 보니 유난히 주의, 경고를 많이 먹는 날이다. 추락위험에 대한, 수산물 채취에 대한, 사유지 진입에 대한...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경고와 주의를 들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는. 그리 흔치 않은 노천탕이, 길에서 딱 맞닥뜨린 노천탕이 도대체 생겼을까, 궁금해 죽겠는 발걸음을 돌려 경고대로 돌아간다. 마침 점심식간이고 ‘김치찌개’를 크게 써붙인 식당이 저 앞에 있기도 해서. 일인분 식사될까요?      

 거기, 남자 노천탕이 있었다 


  반듯한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강정길을 걷는 동안이 그랬다. 길이 너무 반듯했고 그 반듯함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차로 둥그런 제주를 돌다 보면 유난히 잘 다듬어진 길, 강정길을 만난다. 그래서 진입도 쉽다. 나 역시 두 번인가 잘못 든 적이 있었다. 막혀서 되돌아 나온 길. 강정 해군기지다. 혹자는 강정 미군기지라고도 하고. 오늘도 붉은 깃발이 저 홀로 저항하고 있다. 무언가 밝혀야 할 것이 있음을 끝없이 알리고 있는 듯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 자유론에서 “관료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관료가 강하게 반대하는 일은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했다. 국가가 하는 일을 우리의 몸짓과 맘짓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불합리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그런 일들은 더욱더 단단하게 치장된다. 어느 구간보다 잘 닦인 길, 나도 모르게 안주했던 길을 걸으며 대부분의 삶을 외부인의 눈과 귀로 살고 있는 스스로를 뼈아프게 반성해본다.    

반듯함 곁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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