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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Jun 07. 2022

너는 무슨 색이니? 무슨 언어를 살고 있니?

제주를 훔치다 4

  간밤에 지인과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너무 속 끓이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깨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답문이 왔다. 살다 보면 속을 끓여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지도 않은 일이나 되레 배려해 주기 위한 일로 생긴 오해는 속 쓰림도 오래가고 회복도 길어진다. 내 탓도 있는 것 같아 그녀를 위한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징어가 바다에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다. 제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이댄다. 문득 수평선에 오징어가 걸린다. 

  집어등을 둥실둥실 매단 제주의 배들은 대부분 갈치잡이 배들이다. 어느 날 밤중에 보았던 저 멀리 스크럼을 짜고 섬을 포위해 오는 듯한 그 불빛들은 장관이었다. 그러니 장관은 극한의 작업 끝에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를 품은! 

  

  시련은 오늘 걷는 길에도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다. 바닷가로 바짝 바윗길은 물론이고 위미항에서는 가라는 리본을 따라 돌고 보니 돌지 않았을 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데려다 놓는다. 이어 탑 길이 이어진다. 발에 차이는 삐죽거리는 돌들로 탑을 쌓으며 걸었을 앞선 이들의 마음을 따라 나도 돌 한 개 얹는다. 헤진 삶을 보듬고자 왔을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던 때였을까. 뒤에 오는 이들의 발길도 기억했을까. 이 길 위에서 모든 이들의 걸음이 부디 조금씩은 가벼워졌길, 또 가벼워지길 빈다.

돌탑 길, 이 길 위의 모든 이를 위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국밥집을 찾아든다. 점심시간을 넘겼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미안한 마음으로 오늘도 묻는다. 혼잔데 식사될까요? 됩니다. 환하고 흔쾌한 대답이 고맙고 안심이 된다. 둘러보니 관광객들보다는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더 많다. 빙수처럼 높이 쌓아 올려진 뼛국이 먹음직스럽다. 기대했던 만큼 맛도 괜찮다. 평소 입이 짧아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일이 흔치 않은데 오늘은 뚝딱 해치운다. 딱 소주 한 잔 했으면 싶은데 온 힘을 다해 참고 있다고 지인에게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지인 ‘부럽다’

나 ‘외롭다’

지인 ‘외로운 걸 즐길라고 갔잖유’

나 ‘그래서 해장국에 외로움을 푹푹 말아먹고 있어유’


  부러움과 외로움의 거리는 얼마큼 될까? 각자 있을 때 전혀 연결이 안 될 것 같은 이 두 형용사가 제주와 익산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외로운 내게 부러운 지인이 온다면 부러움도 외로움도 어디론가 사라질 텐데. 그저 안부처럼 전한 말이었으되 은연중 서로 진담이었을 것이다. 속이 든든해지니 외로움의 양도 조금은 줄어든다. 외로움은 움직이는 것.   

친절과 외로움과 부러움을 말아먹다


 건축학개론으로 유명세를 탄 카페 ‘서연이네 집’ 앞 방파제에 새겨 넣은 말들이 참 곱다.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너는 내게 꽃이다. 나는 네게 꽂히다’ 

‘취중진담, 나중진땀’ 

‘가장 헛된 날은 웃지 않는 날이다’ 


  빨간색, 흰색 등대들을 지난다. 빨간색은 배가 항구로 들 때 등대의 오른쪽에, 흰색은 등대의 왼쪽에 장애물이 있다는 뜻이란다. 그 외의 노란색, 초록색도 각자의 임무가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등대의 색깔에도 언어들이 살고 있다. 가만히 나에게 묻는다. 너는 무슨 색이니? 무슨 언어를 살고 있니? 너의 오른쪽으로 지나야 하니? 왼쪽으로 지나야 하니?  

붉은색, 흰색, 각자의 언어를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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