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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그려진 의심하는 자

예술의 전당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

by 김채미


전시장 안은 생각보다 사람이 드물었다. 지난달에 갔었던 <고흐 전>은 혹시 몰라 아침 일찍 서둘러 갔음에도 인파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카라바조 전>은 생소한 이름 때문인지 언제든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


전시는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활약을 했던 화가 '카라바조'를 중심으로 사실주의와 바로크 양식의 발전이라는 미술사조의 한 시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를 보기 전, 유튜브로 카라바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영상을 보았는데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이 '미켈란젤로 메리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그가 태어난 지역의 명칭일 뿐이다. 그 시대에는 대개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지역 명까지 붙이기는 했으나 '카라바조'라고 이름이 굳혀지게 된 이유는 이전 시대에 너무나도 유명한 천재적인 조각가, 피에타를 만든 '미켈란젤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예술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본래 이름이 아닌 지역 이명으로 불리게 되다니. 이 기구한 상황은 포악한 성격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면을 받기 위해 여정을 떠나다 객사한 카라바조의 운명과 엇물려 더욱 기이하게 다가왔다.


전시는 카라바조가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카라바조와 동시대에 활약을 했던 화가들, 그리고 사실주의를 파고든 카라바조와 다르게 고전주의를 주창한 가라치와 그의 제자들 작품까지 볼 수 있었다. 후에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그의 화풍을 따른 카라바조주의자들의 작품까지도 볼 수 있어 바로크 시대까지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볼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섹션은 두 번째와 여섯 번째였다. 두 번째 섹션에서능 독특하게도 그 시대에 드물게 활약을 했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벽에는 아홉 개의 탐스러운 배가 담긴 그림을 그린 페데 갈리치아와 종교적 상징물인 사과, 메추라기가 담긴 정물화를 그린 오르솔라 마달레나 카치아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 옆에는 그녀들의 삶을 적은 짧은 글이 함께 걸려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예술가였던 아버지, 수녀원의 원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 작업을 계속해서 펼칠 수 있었던 듯했다. 상황과 환경적 여건이 우연과 운으로 충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글을 읽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그녀들처럼 세상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보이고 싶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고. 특히 이 섹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페데 갈라치아의 그림이 앞서 카라바조와 함께 경쟁을 벌였던 화가들의 그림보다 뛰어난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만약 페데 갈라치아가 더 시간을 들여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면 뛰어난 사실주의적 종교화를 풍부하게 남겼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사람을 묘사하는데 뛰어났으니. 글에는 그녀가 종교화를 남겼다는 기록을 발견했지만,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종교화는 없다고 한다. 정물화와 어떤 인물의 초상화뿐. 당대에 능력을 인정받아 상류층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고 하지만 인물의 풍부한 감정 표현을 더 커다란 화폭에 담았다면 대가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전시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섹션은 마지막 섹션이었다. 어두운 암갈색 벽에 이어진 카라바조와 카라바조주의자들의 그림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되었다는 걸 발표하듯, 카라바조 작품의 진수가 드러나는 장소였다. 사람들도 이 공간에서 오래 머물며 카라바조와 그의 화풍을 본받은 이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관람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카라바조 작품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그 시대에 독창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순간 포착'을 한 것 같은 회화들. 카라바조의 회화에는 소위 '킥'이 존재했다. 도마뱀에게 손가락을 물려 눈에 눈물이 고인 소년, 동료의 이를 뽑기 위해 팬지로 안간힘을 쓰는 사람, 그리고 이가 뽑혀나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람, 주변에서 그 장면을 보고 웃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자 그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인지 의심을 하며 그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제자들, 기독교를 설파하다가 붙잡혀 화살을 맞고 얼굴을 찡그리는 성 세바스티아노. 그들은 모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에 그려진 인물의 표정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경건하고 엄숙한 표정이다. 주변의 배경과 환경조차 연출된 연극의 한 장면을 모는 것 같다. 어두운 배경 윌로 쏟아지는 하이라이트, 그리고 인물의 표정은 생생하다기보다 어떤 표정을 하라고 지시를 내린 듯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은 사진 같다. 생생한 인물의 표정은 회화 속 인물이 지금 이곳에 실존하고 있다고, 바로 내 옆에 실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것이 카라바조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점이고, 시대를 바꾼 붓놀림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종교가 결국은 우리 옆에 존재하고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최초로 회화에 담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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