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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줄리언 반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by 김채미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이 문장을 읽으면 항상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나름 삼십 대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삶을 맛보았다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에 대해 순응과 이해가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저항하는 맘이 들어서 왜 그렇게 단정 지어야 하냐고,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라는 단어에 침식당해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을 가리게 만드는 문장이 아니냐고 소리치고 싶다.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에 뒤이어 나오는 문장을 읽어보면 그가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 이해가 간다. 문장은 너무나 명징하고 정확하다. 이걸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알면서도 계속해서 저항하는 마음이 불쑥 솟아오르니까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우리의 충동, 욕망, 혐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우리의 소유나 평판이나 공적 직책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들을 하면 그 성격상 자유롭고 방해가 없고, 막힘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하면 약해지고 속박되고 방해받는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억하라. 본성상 속박하는 것이 자유를 준다거나 네 것이 아닌 것이 네 것이라고 생각하면 좌절하고 비참해지고 화가 날 것이며 신과 사람 탓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네 것 만을 네 것이라 생각하고 네 것이 아닌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아무도 탓하지 않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내키지 않는 일을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며, 너는 적이 없고,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해치려 해도 너는 전혀 해를 입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말에 나는 자꾸만 반항하고 싶을까. 이 문장이 전달하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면서도, 심지어 삶 속에서 느끼고 살아감에도 의문이 든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에 그저 내 것이 아니라고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가. 내가 할 수 없는 일. 그걸 내 것이 아닌 일이라고 순응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건가. 그 모습이 꼿꼿하게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모습만 그려져서 나는 어쩐지 그 사람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동적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도처에 일어난다. 갓난아이들조차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음을 터득하고, 청년과 중년을 지나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며 회고하고 씁쓸하게 우물거린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시간에 고립하여 박제해야 하는 것일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품으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는 일에 집중하면 안 되는 걸까.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은 현재에 공존한다. 삶과 죽음이 현재에 공존하는 것처럼, 지금 내 눈에 보여서 잡을 수 있는 것과 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잡을 수 없는 것은 동시에 존재한다. 내 것이 아닌 일이라 판단하고 그것을 배제하고 치워버리고 만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우리 앞에 존재하기에 마음이 요동치는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인해 현실을 저항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 아닐까. 뿌리깊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분명 존재하기에, 계속 어쩔 수 없는 것 언저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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