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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일어나는 갈증

2025.01.21

by 김채미


사람들은 좌석을 찾으며 의자와 의자 사이에 놓인 좁은 길을 조심조심 걸어갔다. 열차 칸에는 여행을 가는 가족들과, 출장을 위해 노트북을 켜서 업무를 하고 있는 회사원, 휴가를 받아 집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군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와 M은 끝자리였기에 금방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열차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작은 목소리로 근황을 주고받았다. 요즘 무얼 했으며, 무얼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일수록 더 끊어지지 않는 법이었다.



"가끔 그럴 때 없어? 그냥 잘하고 있는데, 이게 잘 가고 있는 건지 아리송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고 싶을 때. 그럴 땐 어떻게 해?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이 안 오더라."

내가 M에게 물었다.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봐, 하고 덧붙이며 나는 어차피 결국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할 길임을 분명하게 아는데 가끔은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주변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겨울이면, 연말이 되면, 새해가 밝아오면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나는 어떤 방향성을 잡아야 할지 고민을 하면서 꼭 하는 생각이었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그 횟수는 기가 막히게도 겨울에만 이루어졌다. 코끝이 빨갛게 되는 계절이 오면, 낮보다 밤이 길어져서 하얀 숨을 내뱉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겨울이 올 때 잠을 못 이루고 알 수 없는 고민과 불안에 빠지는 날이 왔다.

"나도 오늘 새벽 4시에 잠들었어. 몸을 안 움직여서 그런가, 나도 이상하게 잠이 안 오더라."

겨울이 되면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M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대학원에 간 거잖아. 대학원에 가니까 정말 다양한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 오더라고. 영성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그래서 인문학도들이 과학과 수학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하잖아. 그런 것처럼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런 갈증이 해소되더라고."

"그렇지. 요즘 들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봐.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충족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또 어딘가 허전함이 들고, 결국 책을 보고, 영상을 찾고, 그 누군가를 찾고, 내가 해야 할 일인 걸 아는데, 가끔 그냥 찾게 돼."

"생각이 많아지는 겨울이지."

나는 그래서 작년에 쓴 일기들을 찾아보았다고, 이런 고민은 항상 1월이랑 2월에 일어난다고 했다. 작년에 쓴 일기의 첫 페이지와 두 번째 페이지에 지금 내가 M에게 하는 말이 그대로 적혀있었다고, 매번 반복하다가 겨울이 지나가면 까먹어 버린다고 그랬다.

"새해여서 그런가. 아직 정해진 게 없잖아. 원래 연초에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방향성이 잡히면 그 이후로는 그냥 해버리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고민했던 것도 까먹고, 실행하느라 바빠지고. 선택을 하는 달이어서 그런가 봐."

내가 말하자 M은 내가 메고 온 가방에 두 배가 되는 검은색 배낭 가방을 의자 앞 선반 위에 올려두며 나를 바라봤다.

"나 봐. 선택하고 나니 할 것밖에 안 남아서 지난 학기에 죽는 줄 알았잖아. 딱 학기 끝나자마자 엄청 아프더라고."



M이 피곤한 표정을 짓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M과 함께한 1박 2일 동안 여러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으며 정리한 것은 불안은 항상 반복될 것이라는 거였다. 아주 비슷하고 같은 주제로. 예술성이나 주제나 심도나 방향성이나 나의 진로나 하고 싶은 것이나 삶이나 이것저것. 일 년에 한두 번씩 또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것이다. 실행력을 앞세워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얻겠지만, 결국엔 내가 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옅은 한숨이 나왔다. 슬프거나 절망적인 게 아니라 그렇게 되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내 앞에 쌓인 과제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두려움이랄까. 이 많은 걸 결국 내가 풀어야 하는구나! 어렵고 재밌는 수많은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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